제285-286호 박현준⁄ 2012.08.11 17:06:03
나는 3년간 공군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했으며 그 중 2년은 대전의 항공의전대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공군에 지원하는 사병, 장교의 신검을 담당했다. 육군보다 좋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랬는지 당시 공군에 사병으로 입대하는 데도 경쟁률이 있었다. 그래서 공군 사병 신검은 떨어뜨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몸에 문신, 담배로 지진 자국 등이 있어도 안 됐다. 당시 우리는 소규모 병원 급이어서, 일반군의관 4명과 외과 전문의, 안과 전문의 그리고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근무하고 있었다. 사병 신검을 할 때 가장 힘든 과가 이비인후과였다. 군의관 한 명이 수백 명의 귀를 좌, 우 다 들여다봐야 하니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이비인후과 군의관은 필자의 학교 선배로 매우 재미있는 분이었다. 신병 신검을 할 때 이 선배는 책상에 올라가 앉아 귀보는 기계를 들고 있고, 신병들은 기구를 오른쪽 귀에 댔다가 재빨리 왼쪽 귀에 대도록 시켰다. 이 동작이 늦거나 기계를 건드리면 기합을 줬다. 그러자 이비인후과 담당 사병이 진료실 밖에서 작대기를 들고 이비인후과의 기계를 사용하는 것처럼 신병들이 귀에다 재빨리 갖다 대는 연습을 미리 시키는 우스운 장면이 펼쳐졌다. 어느 날 사령관실에서 연락이 왔다. ‘귀한 분’이 공군 입대 신검을 받으니 공군 작전사령관의 의뢰로 정규 신검일이 아닌 날에 따로 검사를 해주라는 지시였다. 한 사람을 위해 신체검사 시스템 전체를 가동하라는 말에 우리는 불쾌했지만 상부의 지시라 그대로 시행하기로 했다. 신검 당일 오전에 양복을 차려 입고 나타난 피신검인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유명 가수였다. 신검 날도 아닌데 윗선에 부탁해 ‘1인 단독 신검’을 펼쳤으니 그가 병원에 들어서는데 사방에서 군 간호사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난리였다. 그때 이비인후과 군의관이 “뭐 하는 거야, 물러서! 그리고 자네 신체검사를 하러 왔는데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어? 당장 다 벗어”라고 호통을 쳤다. 이비인후과 군의관에게 악수를 청하려던 이 가수는 군의관의 난데없는 호통에 멈칫하면서 우물쭈물했다. 넓은 공간에 마련된 신검장의 가운데에 그가 서고 우리 군의관들은 그를 중심으로 책상과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그는 주섬주섬 옷을 벗고 팬티만 입게 됐다. 그러자 군의관은 “너 지금은 연예인이 아니고 피신검자일 뿐이야! 건방떨지 말고 유명했던 일은 다 잊어”라면서 “가수라면 우선 노래 한 곡 불러봐라”고 지시했다. 그가 우물쭈물거리자 “노래 못하겠으면 그냥 돌아가라”고 또 호통을 치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속옷만 입고 유명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모양은 정말 가관이었다. 차라리 꼼수를 쓰지 말고 정식으로 들어왔다면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텐데….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됐다. 그 가수, 아마 이곳에서의 팬티 리사이틀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경찰이 매맞아 불구 되는 나라 누구를 위해서 이들은 싸우고 얻어맞아야 하나 전투경찰. 이름을 보면 그럴듯하지만 우리나라 전경들은 여러 가지로 수난 시대에 처해 있다. 내무반에서의 구타 사건으로 여러 번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이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연일 계속되는 데모대와의 씨름일 것이다. 버스 속에서 잠을 자고 길가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나는 광화문 근처에 살고 있는데 가끔 시청 방향으로 산책을 한다. 대로나 골목길을 막론하고 경찰 버스에 기대어 식사를 하는 전경들이 자주 눈에 띈다. 우리 자식 또래 나이인데 잠도 모자라 보이고 초췌한 모습이 안쓰럽다. 대부분 OECD 국가의 경찰력은 막강하다. 국민을 위협하는 부분이 아니라 질서를 잡고 시민의 안위를 지키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데모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시청 앞을 꽉 메워서 교통을 완전 두절시키고 주위 상가의 문을 닫게 하는 등 민간인들에게 막대한 불편을 끼치면서 하는 데모는 거의 없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제한선을 넘어 경찰들에게 육체적 위해를 가하면 경고 후 발포를 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다. 폭력 시위를 막으려던 기마경찰을 죽이고 범인이 캐나다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뉴욕 경찰의 묵인 아래 경찰관 2명이 캐나다에 입국해 범인을 잡아 오다가 일부로 놓친 척 하고는 달아나는 범인을 살해했다. 경찰을 죽인 범인을 살아 있는 채 감옥에 보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복수심의 발로였다. 그런데 우리는 경찰 버스를 밀어제치고 두들겨 부수는데도 이를 방지한다고 물대포를 쏘면 언론은 경찰을 비난하고, 공영방송조차도 공공의 적이 되는 이상한 나라다. 내 친구가 보내준 메일에 있던 말이 생각난다. “데모대를 막다가 경찰관이 500명이나 부상을 당했는데도 폭행한 가해자는 15명만 구속한 세계 유일의 나라 대한민국.” 우리 병원이 서울시청, 서울광장에 가까이 있다 보니 부상당한 전경들을 자주 보게 된다. 언젠가 부상당한 경찰들이 여러 명 응급실로 온 일이 있었다. 이들은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질서 유지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대가 마치 원수를 대하듯이 침을 뱉고 쌍욕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전경과 데모대가 격투를 벌이다 형제지간에 싸우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이 있었다. 우리의 형제고 자식들인데 질서를 지키려는 전경들을 왜 원수 취급하는 걸까? “시위대가 죽으면 열사, 경찰이 죽으면 기사 한줄 안 나” 사람인 이상 욕을 먹고 폭력을 당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격양되고 같이 맞대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과잉 대응을 하지 말라는 지시 때문에 일방적으로 맞는 게 보통이라는 소리였다. 경찰에 대항하는 시위대의 맨앞 선두는 폭력배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경찰을 때리면서 어떤 친구는 “나를 죽여라. 열사로 이름을 날리게”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전경 말이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이 죽으면 열사가 되고 경찰이 죽으면 신문에조차 보도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기는 술 취한 민간인을 파출소로 연행하면 파출소를 두들겨 부수는 사건도 비일비재하니 할 말이 없다. 부상당해 들어왔던 전경 중 1명이 하반신 불구자가 됐다. 이 청년은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재활을 받아야 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사는 것에 오랜 기간 적응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된 것이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는 사망하거나 뇌에 손상을 당해서 식물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도 있다. 부상을 당해 병실에 누워 있는 전경들은 말한다. 우리가 왜, 누구를 위해서 형제, 자매, 부모 같은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지, 어떤 때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마저 든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의 배상도 별로 많지 않다면서 한숨짓던 부모의 얼굴. 이제 막 성인이 된 청년의 앞날을 막아버린 사람들은 어느 나라 국민일까?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