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호 김금영⁄ 2013.03.18 14:05:33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은 환자와 가족들을 인터뷰하면서 항상 그들이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호스피스 여정을 함께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은 환자와 가족이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런 조건도 따지지 않고 다가와 손을 건넸다. 윤혜숙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1월 29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윤 씨는 “나는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쑥스럽다”며 “나보다 더 대단하고 배울 점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많다”고 겸손해했다. 윤 씨는 세브란스병원 암센터에서 환자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2007년부터 봉사를 시작했으니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되기 전에도 윤 씨는 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용산구 협회에서 자매 결연을 맺은 장애아동시설에서도 한 달에 한 번씩 봉사 활동을 했었고,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없나 늘 살펴봤다. 윤 씨는 자원봉사를 ‘희생’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제가 원래 미용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용 자원봉사를 하는 일이 더 수월했어요. 현재 매주 화요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브란스병원에 와서 환자들 머리를 잘라주고 있죠. 예전에도 원래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호스피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죠. 그런데 하루는 미용실에 온 한 손님이 미용일을 배울 수 있냐고 제게 물어보더라고요. 알고 보니 세브란스 호스피스 봉사자였어요.” 그 호스피스 봉사자는 환자들의 머리를 관리해주고 싶은데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아 직접 미용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윤 씨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우연히 찾아온 인연이 신기하기도 하다. 미용 기술이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침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었기에 윤 씨는 대뜸 자신이 직접 병원에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호스피스와의 만남, 지금 생각하면 운명” 그렇게 찾아오게 된 세브란스병원의 호스피스실. 호스피스실에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있었다. 매년 3월부터 5월까지 이론 교육을 거치고, 실습과정을 거친 뒤 7월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된다. 교육을 통해 ‘세브란스 호스피스 소개 및 완화의료에 대한 이해’, ‘자원봉사자의 역할 및 자세’, ‘가족 및 사별가족 관리’ 등 꼭 알아둬야 할 사항을 배울 수 있었다.
윤 씨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을 땐 다른 봉사자 2명이 먼저 미용 봉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윤 씨가 암 병동 4층을 담당하고 있다. 매주 이어지는 봉사활동이 버거울 때도 있을 법 한데 윤 씨는 “오히려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물론 처음엔 자신이 봉사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결심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어요. 그래서 그런지 육체적으로 힘든 점은 전혀 없었어요. 남들은 힘들다고 할지 모르지만 전 제가 지금 가장 봉사하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이들도 다 자랐고, 미용실도 화요일이 휴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았어요.” 처음에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다가설 때는 긴장이 되기도 했다. 몸과 마음에 아픈 상처가 있는 그들은 머리 자르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제대로 자를 수나 있을까’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윤 씨가 전문 미용사라는 말을 듣고 조금씩 자신의 머리를 맡겼다. 그렇게 다가와주는 환자에게 윤 씨는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예쁘게 잘라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들은 윤 씨가 머리를 잘라주는 화요일을 기다리게 됐다. 이젠 “머리를 이런 스타일로 잘라 달라”며 웃으며 부탁하기도 한단다. 아픈 모습으로 바깥에 나가기를 꺼려하는 환자들에게 윤 씨의 봉사활동은 큰 힘과 위로가 됐다. 잠깐 퇴원했을 때도 동네 미용실에 가지 않고 굳이 계속 머리 상태를 유지하다 다시 입원하면 윤 씨를 부르는 환자도 있었다. 또 윤 씨가 찾아갈 때마다 미리 음료수를 준비해뒀다가 슬며시 꺼내주는 환자도 있다. 진심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점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윤 씨는 마냥 기쁘다. 머리를 자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 또한 어루만져 주는 일이다.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말을 할 때 신중을 기울여야 하지만 또 그렇다고 말 한 마디 잘못하다 혹여나 상처받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얼어있으면 서로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어요. 그래서 편안하게 분위기를 유도하려고 했어요. ‘사모님, 오늘부터 긴장하셔야 해요. 머리 자르고 젊어지실 거거든요’ ‘10년 젊어지게 해드릴게요’ 식으로 농담하며 같이 웃었어요. 머리 자른 모습을 보고 행복해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했어요.” “남편 사별하고 닫았던 마음, 봉사하며 열어” 이날도 윤 씨는 환자들의 머리를 잘라주기 위해 미용도구들을 모두 챙겨온 상태였다. 좀 더 세심하게 관리를 해주고 싶어 직접 자신의 미용실에서 도구들을 항상 가져온다. 그 도구들을 보니 윤 씨가 관리하는 환자들은 모두 멋쟁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이토록 환자들에게 애정을 쏟는 이유가 궁금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윤 씨는 남편의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198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 전부터 몸이 아프다고 하긴 했지만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 뒤 의궤양(위암) 진단을 받았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가족 모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3년 동안 병원에서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남편도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를 모두 밀게 됐었다. 좀 더 힘을 실어주고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지만 남편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하다가 간 것 같아서 윤 씨는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아리다. 그래서 암 병동의 환자들이 남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남편에게 미안했던 만큼, 더 많은 걸 해줄 걸 아쉬워했던 만큼 그들에게 다가서며 윤 씨는 남편을 기리고 있다. “환자들을 보면 남편이 많이 생각나요. 그래서 봉사활동 초반에는 눈물이 날 뻔한 적도 많아요. 하지만 슬퍼하기보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남편도 그걸 더 바랄 거라고 생각했고요. 저도 모르게 위축돼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저도 더 용기를 내서 봉사하고 싶어요.” 환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남편의 마음도 이랬을까’ 생각하게 될 때도 있다. 환자들은 자원봉사를 하는 것 자체를 부러워했다. “나도 몸이 건강해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앞으로도 ‘당연히’ 봉사하며 살 것” 그렇게 환자들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윤 씨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금 감사하게 됐다. 윤 씨는 “햇볕을 받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며 “항상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해야 한다는 걸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앞으로도 윤 씨는 자원봉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 씨는 “자원봉사자 중 일흔이 넘은 분들도 있다”며 “그런 분들을 보면 나도 10년은 더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환하게 웃었다. “다들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가슴 한켠에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제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며 계속 살아가고 싶네요. 남편도 아마 이런 제 모습을 기특해하지 않을까요?”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