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이 일본의 역사왜곡 와중에 일본인 민예학자의 소장품을 덕수궁에 펼쳐놓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일본의 민예관을 설립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 대만 등에서 수집한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국가 전시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에서 5월 25일 막을 올렸다. 야나기는 3.1운동 직후 요미우리신문에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기고문을 실었고, 당시 일제의 무력 진압을 비판했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비판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방 이후 순수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야나기가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인지, '양의 탈을 쓴 일본 제국주의의 숨겨진 조력자'인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가 1940년을 전후로 일본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글을 쓰고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미의 특징에 대해 '무기교의 기교', '소박미',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주의'라는 표현으로 식민지 유산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야나기의 조선미학론에 대해 1970년대 미술평론가 최열 씨는 "조선에 애정을 갖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애정을 제대로 활용할 사상이 없었고,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비애의 미'에 대해서 시인 김지하는 한국의 미를 "비애보다는 약동이, 저항과 극복을 고취하는 남성미"라고 주장했다. 야나기는 1984년 5월 전두환 정권에서 '보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훈장 수여 사유는 '우리나라 미술품 문화재 연구와 보존에 기여한 공로'로 적혀 있다. 오는 7월 21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그가 일본 도쿄에 설립한 일본 민예관에서 가져온 139점의 소장품이 선보인다. 한국 관련 전시품은 30점 내외가 전부이다. 야나기기 평생 모은 2만 여점 가운데 한국 관련 작품은 2000여 점이다.
전시품 139점 중 한국 관련 작품은 30점 내외 한편, 이번 전시에 대해 국내 미술인들은 국가미술기관에서 한국 작가에 대한 조명은 하지 않고, 해외 작가들의 전시에 치중하는 것에 대해 볼멘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미술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전시 계획의 수립이 필요한 지적도 일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최은주 학예연구1팀장은 "서울관 개관에 맞추어 기획전시의 일환으로 마련된 전시다. 한국 근대미술사를 조명할 때 야나기에 대한 언급이 무수히 나온다. 한국미학자나 작가들과의 관계를 말하는데 있어 그에 대해 실질적 연구들의 제대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이 그의 업적과 이론 형성과정을 인물 중심으로 조명해 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술관측의 설명처럼 이번 전시를 국가 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그것도 대한제국의 본궁이 있었던 덕수궁에서 굳이 치룰 필요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게 된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