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그림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다름 아닌 무대 위에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면? 그런 자리가 명동예술극장에서 10월 13일까지 펼쳐지는 연극 ‘광부화가들’에서 마련된다. 연극이라 해서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르지만 ‘광부화가들’에서 다루는 건 바로 미술과 화가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위치한 예술의 의미이다. ‘빌리 엘리어트’의 작가 리 홀은 탄광촌에서 탄생한 발레리노 이야기에 이어 광부화가들의 이야기를 무대화했다. 193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의 광부화가공동체인 애싱턴그룹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것이 눈길을 끈다. 작품에 나오듯 실제로 애싱턴 광부들은 런던에서 유명한 화가들과 교류하고, 1930~40년대 예술가, 미술애호가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뉴캐슬의 탄광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 리 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몰랐던 평범한 광부들이 생전 처음으로 그림을 배우면서 화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광부화가들’에 그려냈다. 작품 속 광부들인 올리버, 조지, 지미 등은 애싱턴그룹에서 활동했던 실제 광부들의 이름을 따서 그 인물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1934년, 120만 명의 광부들이 모여 사는 영국 북부 애싱턴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라이언은 애싱턴 노동자교육협회에서 마련한 미술 감상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난생 처음 애싱턴을 찾는다. 라이언은 애싱턴에서 광부들에게 미술의 역사를 가르치려 하지만, 미술관에 가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이다. 그림의 의미를 쉽게 알고 싶어 하는 광부들에게 ‘그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며 맞서던 라이언은 그들에게 직접 그림을 그려볼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여기서 광부들은 그림을 한 장씩 그리면서 창작의 즐거움을 깨닫고 서로 작품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는 등 미술 수업에 집중한다. 라이언의 소개로 광부들의 미술 교실을 방문한 미술애호가 헬렌은 심지어 그들의 그림을 사겠다고 나선다. 광부들의 작품은 점차 명성을 얻어 전시회를 열고, 화가가 된 광부들은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어리둥절해 한다. 그러면서 광부와 화가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실제 애싱턴그룹 명화 100여점 등장 관객에 미술의 의미에 대한 질문 던져 ‘광부화가들’ 무대에는 실제 애싱턴그룹의 그림을 비롯한 많은 명화들 100여점이 등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고흐의 그림들,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를 비롯해 많은 유명화가들의 그림들이 무대에 펼쳐진다. 우드혼 탄광박물관이 영구 소장하고 있는 실제 광부화가들의 직설적이면서 생동감 있는 작품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가운데, 이 극이 말하는 것 또한 미술을 포함한 예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연히 시작한 미술 감상 수업에서의 예술 체험을 통해 인생 자체가 변하게 된 광부들의 실화는 관객들에게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문화와 예술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 ‘예술은 특정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문화인가?’ 등 간단한 것부터 심오한 것까지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광부화가들’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실존 인물이기도 한 자본가 헬렌의 등장이다. 유명한 아트컬렉터인 헬렌은 제도화된 예술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주체가 예술가도 평론가도 아닌 소비능력을 가진 자본가임을 확인시키는 인물이다. 즉, 이 작품은 제도권 예술 안에서 예술가와 자본가의 관계까지도 문제를 제기한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예술은 누구나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미술 그리고 예술에 대해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 리 홀은 ‘광부화가들’을 통해 “예술은 특별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나누고 즐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올해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 강신일은 “사실 미술을 잘 모른다. 그런데 광부들이 이런 훌륭한 그림을 그렸다는 걸 알고 굉장히 놀랐다”며 “작품 전체에서 예술 얘기를 하면서 예술 대하는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 이야기 한다. 다른 작품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를 연기했다가 이번엔 광부로 돌아갔는데 예술이 내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계속 질문하고 찾아가는 과정은 같다”고 밝혔다. 연출을 맡은 이상우 연출가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버린 예술이 어떻게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에서 시작한다”며 “작가가 처음부터 얘기한 것은 ‘예술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술이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건지, 작품을 창작하고 즐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지, 판매가 돼야 예술작품인지 다양한 이야기를 던진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광부화가들’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