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⑦]성인 테레사 수녀 삶에 감흥, 남인도 자존심 첸나이에 가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타이완 인도 여행<3/7>
인천 - 타이베이 - 방콕 - 인도 콜카타 -(항공)- 첸나이 -(항공)- 뭄바이 -(항공) (델리 경유)- 아그라 -(열차)- 자이푸르 -(열차)- 델리 -(항공)- 바라나시 -(항공) (델리, 방콕, 홍콩 경유)- 인천
4일차 (방콕 → 콜카타)
하우라 철교 부근
마침 근처에 트램이 하나 지나가기에 잡아타니 하우라(Howrah) 철교행이다. 콜카타에만 있는 교통수단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인력거이고 또 하나는 트램이다. 120년 넘은 트램은 경쾌한 경적을 올리며 수많은 상점들이 양쪽으로 즐비한 거리를 지나 하우라 철교 부근 종점에 도착했다. 콜카타 시민들은 거의 대부분 걸어서 퇴근하는 듯 거리는 차량이 아니라 인파로 가득 메워진다. 인구 11억이 결코 헛된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하우라 철교가 걸린 후글리(Hooghly) 강가로 내려가 앉아 멀리 철교를 조망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강에는 분주히 도선(渡船)이 오가고 인근에는 대형 하역장도 있어서 수운으로 도착한 물건을 실을 트럭들이 수십 대 장사진을 이루며 대기 중이다.
강가에서 여유를 부리기에는 빈민굴 지역이라 부담도 되고 곧 해가 지기 때문에 서둘러 하우라 철교 지역에서 벗어났다. 지나는 아무 트램이나 잡아타고 시내의 또 다른 길을 굽이굽이 누비며 지난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도시의 초저녁 풍경을 만끽한다. 여러 번 물어 버스를 갈아타며 파크스트리트 부근 호텔로 되돌아오니 저녁 8시가 가깝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지금 콜카타에서의 반나절을 기억하며 일기를 정리한다. 오늘 누비고 다닌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거리거리가 눈에 밟힌다.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오늘 마주친 수많은 얼굴들과 그들의 삶.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 일상에 복귀하더라도 두고두고 곰씹어야 할 것들이다. 인력거를 끄는 노인의 맨발에 콜카타의 여러 모습이 포개져 있는 것 같다.
인도 TV
호텔에는 위성을 통해 수십 개의 TV채널이 나온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콘텐츠가 풍부하고 특히 뉴스 채널이 많다. 요가와 종교 채널도 유독 많다. 아삼(Assam), 구자라트(Gujarat), 델리(Delhi), 펀잡(Punjab), 비하르(Bihar), 카시미르(Cashmir) 등 다른 주, 심지어 네팔의 TV방송까지 위성으로 수신된다. 방송 언어는 힌두어가 가장 많지만 영어 채널도 많고 다양한 소수 언어도 들린다.
5일차 (콜카타 → 첸나이)
성인 테레사
인력거를 타고 테레사하우스(Mother Theresa House)로 향한다. 한쪽 시력을 잃은 듯 한 늙은 릭샤왈라가 맨발로 끄는 인력거 위에 높이 앉아 있으려니 어색하고 미안하지만 그의 밥벌이에 보탬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리 풍경을 즐긴다. 서민들이 사는 골목골목을 돌아 테레사하우스에 도착했다. 테레사 수녀가 1953년 이곳에 정착한 이후 1997년 서거할 때까지 기도하고, 일하고, 묻힌 곳이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동유럽 발칸반도 남부 마케도니아에서 출생, 1928년 인도 다아질링에 교사로 부임, 그리고 1937년 콜카타로 옮겨왔다. 그의 사후인 2003년 로마 교황청은 그녀를 성인(聖人)으로 추대했다. 그녀가 세운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는 여전히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테레사 수녀의 대리석 무덤 앞에서 짧은 기도를 올리는 순간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50루피(1200원)를 벌겠다고 맨발로 땀 흘린 외눈 릭샤 노인의 모습과 겹쳐져서 더욱 그랬다.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옮은 것인지 나이가 들수록 답하기 더 어려워지는 질문들이 연이어 머릿속을 때린다.
▲첸나이 통근열차, 대중교통망이 미흡한 인도에서 대도시 시민들의 발이다.
칼리지스트리트
테레사하우스 바로 옆에는 노동연맹본부 건물이 있어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다. 건물 벽에는 마침 선거철을 맞아 공산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는 선거 포스터가 붙어 있다. 혁명의 도시, 저항의 도시다운 모습이다.
큰길로 나가 지나는 트램에 올라타니 칼리지스트리트(College Street)를 지난다. 캘커타대학교가 있는 곳이다. 캠퍼스는 좁고 낡아서 볼품없지만 근처 책방마다 책이 넘쳐난다. 주로 영문서적들이다. 인도의 미래가 여기 보이는 것 같다. 길거리 곳곳에는 저널리즘, 디지털 영상제작, MBA, 공학 분야 등 교습학원 광고 포스터가 붙어있다. 와보고 싶었던 칼리지스트리트를 방문하게 된 것은 트램이 가져다 준 우연한 행운이었다.
캘커타대학에서 비비디바크, 에스플러네이드를 지나 인도박물관(Indian Museum)까지 걸어서 갔다. 온몸이 땀에 젖는다. 1814년 건립한 인도박물관은 인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박물관이다. 동양 문화와 역사, 자연과학, 인류학 등이 전시된 고색창연한 건물이지만 보관 상태와 관람 환경은 열악하다. 값진 힌두교 조각 예술품들이 아무렇게나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부탄 청년 도르지
박물관을 나와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볶음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에어컨이 잘 나오는 식당은 세계 각국 젊은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물론 한국어도 들린다. 우연히 동석한 청년과 말을 터보니 도르지(Dorji)라는 이름의 부탄(Bhutan) 출신 대학생이다. 인도 푸네(Pune)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다.
고국에 돌아가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는 이 청년은 영어가 매우 유창하다. 영어 솜씨를 칭찬했더니 부탄에서는 중학교부터 수업이 영어로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겸손해 한다. 바깥 세계와 연결돼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히말라야 산중의 소국 부탄의 교육정책에 마음속으로 동의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국적에 관계없이) 영어만큼 중요한 자산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짧은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콜카타의 구석구석을 땀 흘리며 누비고 다녔다. 선진국 기준으로 본다면 콜카타 시민들의 삶은 참혹할 수 있지만 조금만 사고의 틀을 벗어나면 이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정물로 목욕을 하는 사람들, 산더미로 쌓인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 냉장고도 없는 길거리 푸줏간에서 양고기를 팔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인도 사람들이기에 앞서 모두 인류라는 엄중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 거리에서 테레사 성인은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the poorest among the poor)를 위해서 일생을 바쳤다. 인류애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작은 일로도 미워하고 증오하는 저 멀리 고국의 땅에도 작은 깨달음이 있으면 좋겠다.
콜카타 공항 대합실 풍경
택시로 공항 가는 길은 오늘도 붐빈다. 국내선 항공기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콜카타 길거리에서 봤던 수많은 하층민들과 비교하면 일단 생김새부터 다르다. 공항 터미널에는 희고 잘 생긴 사람들이 많다. 인도에서는 피부색이 계층을 얘기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저가항공 보급으로 누구나 비행기를 탈 수 있다지만 근로자 두 달 임금에 가까운 국내선 구간요금은 하층민에게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돈이다. 최소한 인도에서는 항공기는 아직 특별한 계층의 여행 방법이다.
콜카타 공항 국내선 터미널은 협소하기 이를 데 없다. 여러 지역으로 떠나는 항공기가 한꺼번에 출발하는 오후 5∼6시 무렵은 더욱 혼잡하다. 게다가 보안검색이 매우 엄격해서 혼잡은 더하다. 2008년 11월 뭄바이 테러부터 각종 크고 작은 테러가 빈발하는 인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도에서 테러는 항상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소수 무슬림의 다수 힌두교도에 대한 저항이다. 인도는 알면 알수록 복잡해진다.
▲첸나이 고등법원, 대표적인 인도사라센 양식 건물이다
첸나이 vs 마드라스
콜카타를 정시에 출발한 Air India 항공기는 2시간 비행 끝에 밤 8시 반 인도 남부 타밀나두(Tamil Nadu)주의 주도인 첸나이(Chennai)에 도착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캘커타(calcutta)가 콜카타(Kolkata)로, 봄베이(Bombay)가 뭄바이(Mumbai)로 바뀐 것처럼 첸나이 또한 과거 영어식 이름인 마드라스(Madras)를 버리고 새로 채택한 이름이다. 낙후한 콜카타에 비하면 첸나이는 길이 널찍하고 반듯하다는 것을 하늘에서 봐도 알 수 있다.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현대 자동차의 도시’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반갑게 맞아 준다. 입국장에서 운 좋게 호텔 픽업차량을 만나 쉽게 호텔에 도착했다. 깨끗한 호텔이 맘에 든다. 인근에 기차역이 있어서 시내 나들이가 편하게 돼서 좋다. 위치와 숙박료가 적절한 호텔을 찾느라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한 보람이 있다.
6일차 (첸나이)
남인도의 자존심
호텔에서 조식 후 인근 St. Thomas Mount Station에서 열차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사정을 모르고 보통칸 표를 샀으나 도저히 탈 수 없을 만큼 혼잡하다. 도시통근열차는 매우 혼잡하지만 다행이 자주 다니므로 일등석 표로 바꿔 곧 뒤따라온 다음 열차를 타고 시내로 향하다. 일등석이라고 해봤자 우리나라 시내버스 요금 정도도 안 된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짙어지고 문자가 타밀(Tamil) 문자로 바뀐 것이 남인도에 왔음을 말해 준다.
첸나이의 웬만한 표지나 안내판은 타밀어, 힌두어, 영어의 세 가지로 표기돼 있다. 타밀어를 소중히 여기는 이 지역 사람들의 반대로 인도정부는 아직 힌두어 국어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수백 년 외세의 침입을 겪은 북인도와는 달리 200년 남짓 영국 지배를 제외하면 줄곧 독립을 유지해온 타밀나두는 인도색이 가장 짙은 곳이다.
St. George Fort
포트(Fort) 역에서 도시통근 열차를 내렸다. 길을 물어 성조지요새(St. George Fort)를 찾아갔다. 이곳은 1640년 동인도회사가 건립, 이후 1746년 프랑스와 대격전으로 성이 모조리 훼손됐으나 재건축해 오늘에 이른다. 요새 안에는 성마리교회(St. Mary Church)와 포트박물관(Fort Museum)이 있다. 1678년 건립해 1759년 재건축한 성마리교회는 아시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영국 성공회 교회이다.
첸나이 시내 풍경
포트박물관 관람까지 마치고 시내 조지타운(George Town) 지역으로 이동했다. 현대식 건축물과 대규모 재래시장이 어우러진 곳이다. 첸나이는 콜카타와 많이 다르다. 넓은 도로와 현대식 건물이 세련된 현대도시임을 말해 준다. 심지어 일부 시내버스는 냉방 완비된 볼보(Volvo) 버스이고 버스 도착시간을 알리는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공기오염에도 관심을 기울인 듯 한결 상쾌한 공기가 바닷바람과 어우러져 남인도의 여름 더위를 달랜다. 조지타운 지역의 랜드마크인 고등법원(High Court)은 인도 사라센 양식 건축의 백미라지만 휴일이라서 들어갈 수 없다. 멀리서 담 너머로 보이는 양파 모양의 크고 작은 돔(Dome)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인도 교회
남인도에는 예수 제자 도마가 기독교를 전파했고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등 서양세력이 일찍 진출한 곳이어서 북부와는 달리 기독교 신자가 많고 그중에는 성공회와 감리교 등 여러 종파를 합치고 토착화시킨 남인도 연합교회가 특히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마침 주일 예배중인 교회가 하나 있어서 들여다보았다. 요란한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며 환희에 넘치는 격정적인 방식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은 미국 남부 흑인교회 방식과 닮은 것이 이채롭다.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정의식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