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⑨]‘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인도 경제성장의 상징
영국 런던 닮은 포트지구, 부산 해운대 닮은 주후해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타이완 인도 여행<5/7>
인천 - 타이베이 - 방콕 - 인도 콜카타 -(항공)- 첸나이 -(항공)- 뭄바이 -(항공) (델리 경유)- 아그라 -(열차)- 자이푸르 -(열차)- 델리 -(항공)- 바라나시 -(항공) (델리, 방콕, 홍콩 경유)- 인천
7일차 (첸나이 → 뭄바이)
마린드라이브 해변
마하락스미 역에서 Marine Line 열차를 타고 남행하니 처치게이트(Churchgate) 역에 닿는다. 미국 마이애미나 브라질 코파카바나를 연상하게 하는 긴 해변을 따라 마린드라이브(Marine Drive)가 펼쳐진다. 제방 위에서 수많은 청춘 남녀들이 데이트를 즐긴다. 소박한 모습이다. 눈치 없지만 나도 그 틈에 끼어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제는 인도 동쪽 첸나이 벵골만에서, 오늘은 인도 서쪽 뭄바이 아라비아해에서 인도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감격스러운 일이다.
백베이 빈민가의 단상
시간이 한없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애석하게 여기며 꼴라바(Colaba) 지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버스는 꼴라바를 옆으로 스쳐서 백베이(Back Bay) 지역 종점으로 들어가 버린다. 백베이 지역 또한 거대한 빈민가가 있다. 항구가 가까이 있으니 하급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 빈민가가 형성됐을 것이다. 버스를 잘못 탄 덕분에 뭄바이의 또 다른 빈민가를 차창너머로 샅샅이 구경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바로 곁으로는 빈민가를 헐고 멋진 고층건물들이 올라가고 있어서 더욱 대조가 된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소재 타워팰리스 초고층 주상복합과 인근 구룡마을 무허가 판자촌이 공존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세계 어디든 그렇듯이 도시재개발 바람에 밀려 도심 빈민가가 사라지는 것이 여기서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한다. 가난한 자들은 몇 뼘 되지 않는 초라한 터전마저 잃고 다시 기약 없는 방랑의 길을 나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원래 목적했던 꼴라바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버스에 올랐다. 퇴근 승객 때문인지 버스는 갈수록 혼잡해진다. 버스가 봄베이대학 부근을 지나기에 재빨리 내렸다. 1857년 설립한 봄베이대학은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인도사라센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일과 후라 입장을 허락하지 않아 멀찌감치서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포트 지구
봄베이대학 부근은 포트 지구(Port Area)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거리 풍경이 영락없이 영국 런던 어딘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포트 지구의 중심은 후타트마초크(Hutatma Chowk)다. 중앙 분수대를 중심으로 사방에 고색창연한 공공건물들과 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뭄바이 최대의 업무상업지구(BCD, Business and Commercial Distrcit)가 펼쳐진다.
도심 공원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으려는데 중년 남성 하나가 인도식 엑센트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유창한 영어로 이것저것 말을 걸며 다가온다. 그러나 그에 친절히 대응해 주지 않고 공연히 부담을 느껴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인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인도에 관한 부정적인 얘기를 워낙 많이 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낯선 이방인 여행자에 대한 선의의 관심과 호감에 대한 배신은 아니었는지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온 후에도 두고두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Gateway of India와 타지마할호텔
후타트마초크에서 택시로 잠깐 이동하니 그 유명한 Gateway of India가 나온다. 1924년 영국 국왕 조지 5세의 인도 방문을 기념해 건립한 뭄바이의 절대적 상징물로서 타지마할호텔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대영제국 초전성기 건축물이라서 위용이 대단하다. 뭄바이(봄베이)가 한창이던 해양시절에는 이 상징물의 의미가 컸으나 지금은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 혹은 인근 엘레판타섬으로 떠나는 유람선 출발지로 기능이 축소됐다.
바로 옆 타지마할(Taj Mahal)호텔을 보니 2008년 11월 테러가 떠오른다. 다행이 말끔히 복원돼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타지마할호텔은 2008년 11월 파키스탄이 배후로 의심되는 테러단이 겨냥했던 인도의 또 다른 상징물이다. 이것 또한 인도 사라센 양식의 건축물로 건립 100년이 넘는다. 서구식 골조에 무굴식 장식을 결합한 모습이 특이하다. Gateway of India와 CST를 오가는 버스를 잡아타니 금세 호텔 앞에 닿는다. 호텔 바로 옆 식당에서 아프간식 양고기로 저녁을 먹는다. 영락없이 이번에도 카레 소스를 베이스로 만든 음식이지만 아직은 견딜 만하다.
8일차 (뭄바이→델리 경유→아그라)
북쪽 해변 부촌 지역 아침 나들이
집을 나선지 일주일 째 되는 아침이다. 지난밤에는 잠을 잘 자서 몸이 한결 가볍다. 여행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제야 시차 적응이 돼가는 모양이다. 체크아웃 후 가방을 호텔에 맡기고 오전 나절 여유시간을 활용하러 나섰다. 호텔 부근에서 북쪽 산타크루즈(Santa Cruz)행 버스에 올라 시내를 남에서 북으로 종단하며 뭄바이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다다르(Dadar)를 지나 산타크루즈 지역에 들어서니 아라비아해가 가까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변에 가깝게 달리던 버스는 고급 주택가 골목을 누빈 후 산타크루즈역 부근에 닿는다. 뭄바이는 인도에서 가장 큰 도시답게 드넓은 도시면적과 많은 인구가 어수룩한 방문자를 질리게 만든다.
이제는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출근 시간이 지났지만 산타크루즈에서 CST로 가는 통근열차는 대혼잡이다. 교통체증이 극심한 뭄바이에서 혼잡하지만 빠른 열차는 지금 나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래도 그 안에서 부대끼면서 그들과 살을 맞대고 땀 냄새를 맡으며 인도 서민들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체험하는 것은 값진 경험이라고 위안하며 견딘다.
무사히 시내 호텔로 돌아와 맡겨 놓은 가방을 찾은 후 식사 때마다 들렀던 호텔 옆 무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주인은 그새 낯이 익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해온다. 맛은 물론이고 가격 또한 100루피(2500원)를 넘지 않는다. 식사 후 마신 커피는 오래도록 기억될 맛이다.
해운대 닮은 주후 해변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300루피, 한화 약 7500원). 택시는 멋진 주후(Juhu) 해변 길을 경유해 국내선 공항에 닿는다. 고급 주택가와 아파트, 고층빌딩이 즐비한 모습이 부산 해운대를 꼭 닮은 주후 해변은 뭄바이와 인도 경제성장의 상징이다. 어둡고 비좁았던 콜카타 공항과는 달리 뭄바이 공항은 넓고 밝고 쾌적하다. 지금 운영중인 터미널 옆에는 새로운 터미널 빌딩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인도의 모든 공항이 그렇지만 뭄바이 공항은 유독 보안검색이 엄격하다. 표가 없으면 아예 터미널 입장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터미널 출입문 앞에는 군인들이 사격자세로 거총 중이다. 승객들은 불편한 것을 조금만 참으면 에어컨이 잘 나오는데다가 안전한 터미널 안에서 편안하게 대기할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다.
뭄바이를 떠나며
인도의 양대 도시 뭄바이와 델리를 잇는 노선답게 승객들은 말쑥한 차림이다. 화려한 뭄바이 공항의 가장 위치가 좋은 벽면을 삼성과 LG 광고가 장식한 모습이 여행자의 피로를 덜어 준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유럽 세력이 몰려들었던 이 땅에 머나먼 아시아 동쪽 끝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동방의 등불’이 돼 여기 인도 경제성장 심장부에 자기 나라 기업의 상품을 자랑하고 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뭄바이라는 거대 도시를 나름대로 섭렵한 여정이 무사히 끝나가니 안도의 숨을 내쉰다.
7월부터 9월 몬순 계절에는 뭄바이 여행을 자제하라는 관광안내 책자의 강력한 충고도 있었고, 마침 뭄바이 입성 며칠 전부터 뭄바이 폭우가 연일 저녁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었기에 크게 걱정했다. 다행이 예보는 빗나갔고 나는 비를 피하면서 젖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항공기 연발착 같은 불편이 없었던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할 일 아닌가?
인도 영어
헐리우드 영화에 희화적으로 묘사되는 인도인 특유의 영어 억양을 계속 들으며 여행을 한다. 억양의 정도는 출신 및 성장 지역, 계층, 학력, 직업, 성별 등에 따라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다. 콜카타에서 첸나이로 내려가니 타밀어의 영향을 받은 현지인들의 영어는 경음이 심하고 말이 빨라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여러 지역 출신들이 섞인 뭄바이에서도 다양한 영어가 들린다.
길거리에서 빈둥대는 중년이 우아한 영어를 구사하는가 하면 장관이 전형적인 인도 영어를 사용한다. 지금 타고 가는 에어인디아 여승무원은 거의 유럽인 얼굴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엑센트가 없는 영어를 구사한다. 공용어를 넘어 모국어에 가까울 정도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인구가 수천만 명 있는 인도는 막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인도통치
영국은 인도를 300년 동안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통치했다. 300년이라는 긴 시간은 인도 곳곳에 무형과 유형으로 영국의 흔적을 많이 남겼다. 각 도시마다 흩어져 있는 건축물은 물론 총 연장 세계 2위의 철도를 비롯해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까지 영국이 남긴 것 아닌가? 복잡하고 혼란한 가운데 규율이 있는 것도 영국 시스템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이 큰 나라, 이 잘난 사람들이 300년 동안이나 영국의 통치를 받았단 말인가?
당시 3억 명이던 인도 인구를 1000명에 불과한 영국 행정관이 통치했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훗날 이 어처구니없는 역사를 자손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인도도 인도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 거대한 나라를 마음대로 요리했던 영국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델리 공항에서 곧장 아그라행
맛있는 기내식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인 사이 항공기는 델리 상공에 접어든다. 항공기는 뭄바이 출발 2시간 20분이 지난 저녁 7시 20분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바깥기온은 39도라는 기내 방송을 확인해 주듯 항공기에서 내리니 열풍이 불어 닥친다. 터미널을 나와 택시로 니자무딘(Nizamuddin)역으로 향한다. 컴컴한 거리이지만 대국 인도의 기품이 느껴지는 도시 모습이 힐끗힐끗 느껴진다.
약 40분후 도착한 니자무딘역은 우리나라 영등포역이나 청량리역쯤 되는 위치와 기능을 갖고 있다. 승차할 플랫폼을 찾아 들어가니 지정 차량 및 좌석번호와 함께 내 이름이 승객명단에 게시돼 있다. 열차는 낡아 보이지만 인도의 IT시스템에 놀란다. 한국에서 한 달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 결제, 발권한 결과가 이역만리 인도 델리 외곽 니자무딘역에 승객 명단으로 게시돼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아그라행 열차는 무척 쾌적하다. 칠흑 같은 밤길을 열차는 속도를 내 달린다. 니자무딘역에서 밤 9시 반에 출발한 열차는 세 시간 남짓 결려서 아그라역에 자정 넘어 도착했다. 역 플랫폼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을 자고 있다. 마치 피난 열차를 기다리는 것 같은 이 장면은 처음 온 외국 관광객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오토릭샤로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푼다. 역에서 타지마할 가는 방향 중간쯤에 있는 꽤 수준 있어 보이는 호텔이다.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