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30년 후 세계 2위 경제대국, 인도는 넓고 가봐야 할 곳은 많다
돌아서면 다시 가고 싶은 나라 인도여행을 마치며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타이완 인도 여행<7/7> - 인천 - 타이베이 - 방콕 - 인도 콜카타 - (항공) - 첸나이 - (항공) - 뭄바이 - (항공) (델리 경유) - 아그라 - (열차) - 자이푸르 - (열차) - 델리 - (항공) - 바라나시 - (항공) (델리, 방콕, 홍콩 경유) - 인천』
11일차 (델리 → 바라나시)
뉴델리에서 올드델리로
코넛플레이스(Connaught Place)는 뉴델리의 중심이다. 올드델리(Old Delhi)를 대체하기 위해 건설된 거리에는 풍부한 녹지와 함께 고급호텔, 항공사, 은행 등 고급 업무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는 사설 무장경비가 지키는 대저택이 즐비하다. 코넛플레이스 중심에 있는 라지브초크(Rajiv Chowk) 메트로역에서 지하철을 탑승했다. 지하철역 또한 경비가 삼엄하다. 지하철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신시설이다.
세 정거장을 북쪽으로 올라가 찬드니초크(Chandni Chowk)에 내리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역 부근 한 자선단체 앞에는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줄이 하염없이 길다. 달려드는 호객꾼과 걸인을 피해가며 자인교 사원을 지나 거대한 랄낄라(Lal Quila, 일명 Red Fort) 정문에 도달했다.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 자한이 1648년 건설했다. 웅장한 이슬람풍의 성이 대국 사람들의 스케일을 말해 준다.
호텔로 돌아와 여유 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나가려는데 폭우가 쏟아진다. 하수처리시설이 불량한 거리는 금세 발목까지 구정물이 차오른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택시가 신호등에 멈춰있는 동안 어린 소녀가 동냥하러 온다. 뒤에 보니 가족 모두가 줄지어 달려든다. 다음 인생에는 다른 카스트로 태어나기를 빌어 본다.
델리공항 터미널은 초현대식 시설이다. 푸드코트에는 값이 적지 않게 나가는 음식을 팔고 사람들은 풍족히 그것을 먹으며 항공기를 기다린다. 공항 바깥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별난 세계, 마법의 성이 여기 펼쳐져 있다. 델리에서의 짧은 일정을 아쉬워하며 바라나시행 Spice Jet 항공기를 기다린다.
인도의 저널리즘
공항에서 대기할 때마다 덜 지루했던 것은 신문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신문은 아직 가장 중요한 미디어다. 도시마다 수많은 신문이 발행된다. 신문은 저널리즘 기능은 물론 이 나라 방송이 아직 서툰 문화오락 기능까지 담당한다. 인도 저널리즘의 첫 인상은 꽤나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사건사고가 많은 후진국이라서 그런지 날마다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인도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만 하더라도 MBA 청년 의문의 사망, 뭄바이 폭우, Air India 정원초과 탑승 발각 해프닝, 철도예산 의회상정 갈등, 콜카타 하우라철교 버스 추락사고 등이 연일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다. 뉴스를 다루는 방식 또한 선정적이다. 뉴스 미디어의 상업성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끈질김이 부족한 것은 한국 미디어와 비슷하다. 매일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인도에서 지나간 사건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공기는 오후 3시 10분 델리 공항을 이륙해 4시 35분 바라나시공항에 도착했다. 시내에서 20Km 떨어진 공항은 보잘 것 없어도 이름은 국제공항이다. 네팔 카트만두와 방글라데시 지역으로 국제선이 취항하기 때문이다. 마침 시내로 들어가는 공항버스에 올라 찾아들어간 호텔은 썩 훌륭하다. 겨울철 성수기에 비해서 여름철 비수기는 반값에 가능하니까 날씨는 덥지만 해가 길고 호텔비와 항공료가 싼 여름철이 오히려 인도 여행에 더 적절한 시기인 듯하다.
▲찬드니초크,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줄로 올드델리에는 이런 모습이 많다.
혼란 중에 만난 갠지스강
호텔에서 잠시 휴식 후 가트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자 릭샤왈라들이 벌떼처럼 모여든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거리를 달려 이름을 알 수 없는 외딴 가트에 도착했다. 가트는 강과 맞닿아 있는 계단을 뜻한다. 가트 주변의 골목들은 얽히고설킨 미로라서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니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의식이 열리는 곳이라며 릭샤왈라는 나를 그곳까지 데려 갔으나 기다리는 것은 1시간에 1600루피(4만원)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는 갠지스 뱃사공의 상혼이었다. 집요한 상술을 뿌리치느라고 갠지스 강가의 여유를 즐기려던 기대는 부서졌다.
해가 저물어 어쩔 수 없이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몰에 들러 패스트푸드로 저녁을 해결한다. 여기 또한 항공기 탑승 때처럼 경비가 삼엄하다. 몰 안에는 Reebok, Sony, Samsonite 등 다국적 브랜드 상품들이 즐비하고 LG, 삼성 광고가 가장 좋은 위치에 걸려 있다. 마침 금요일 저녁을 맞아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이 몰을 가득 채운다. 인도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하루가 다르게 상업화 돼가는 바라나시가 외부인들에게 과장돼 묘사된 경향마저 있는 것 같다. 바라나시에 있는 몰에서 맥도날드를 먹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이것 또한 엄연한 인도의 모습 중 하나다.
지금 시각 밤 10시 45분. 호텔 7층 객실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불빛이 음험하다. 보름을 향한 달은 여행자를 상념에 잠기게 한다. 길거리에서는 여전히 오토릭샤와 자동차 경적소리가 올라온다. 갠지스강 중류 어느 도시에서 보내는 인도여행의 마지막 밤에 정돈되지 않은 감회가 가득히 차오른다. 타이베이에서 2박, 방콕에서 1박, 그리고 인도에서 8박 중 마지막 밤이다. 두고두고 끄집어내야 할 수많은 기억들을 쌓은 여행이다.
12일차(바라나시 → 델리 경유 → 방콕)
호텔을 나와 오토릭샤를 타고 바나라스힌두대학교(BHU, Banaras Hindu Univeristy)로 향했다. 시외곽에 자리 잡은 캠퍼스까지 시간이 제법 걸린다. 1917년 건립했으니 100년 가까이 된 캠퍼스가 우아하다. 힌두문화와 산스크리트, 철학, 전통예술이 강하다고 한다. 캠퍼스 면적으로 인도에서 5위라는 명성에 걸맞게 넓은 녹지와 밝고 우아한 건물이 운치를 더한다. 학교 정문 바로 앞의 혼돈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는 여기가 학문의 전당임을 말해 준다. 캠퍼스 바깥 거리에는 실용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 포스터가 많다. 이미 영어를 상당히 잘하는 인도 젊은이들에게도 영어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도구인 것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에서 가장 큰 가트인 다샤시와메드(Dashashiwamedh)가트로 가기 위해 올드 바라나시 중심 고돌리아(Godowlia) 지역으로 오토릭샤를 재촉했다. 바라나시 거리는 혼돈의 극치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 존재를 주장하는 도시답다. 게다가 비가 오락가락하니 더욱 어수선하다. 고돌리아 지역에서 도보로 7∼8분 걸려 도착한 다샤시와메드가트 주변에는 마침 비도 오고해서 특별한 의식이 열리지 않는다.
다만 물가에 노는 아이들, 갠지스 강물에 목욕하는 사람들, 빨래하는 아낙네들, 인도 전역에서 들이닥치는 수행자들의 남루한 옷차림 등 내가 진정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에 와있음을 증명해 주는 모습들은 실컷 볼 수 있었다.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라는 마크 트웨인의 표현이 너무나 적절해 보인다.
인도에서 가장 인도다운 곳, ‘인도’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있는 곳. 바라나시가 바로 이런 곳이지만 갠지스 강가에 앉아 명상을 즐길 만큼 한가하지는 않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해서 부풀려지거나 부분적으로만 경험된 바라나시 얘기는 이 도시를 다녀간 사람만큼이나 많은 버전이 있는 것 같다. 겨우 1박 2일 이 도시를 거쳐 가는 나도 거기에 하나 보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침 빗줄기가 굵어지니 두어 개의 가트를 더 보려던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질척거리는 시장 거리를 한참 걸어 나오는 동안 갠지스의 낭만 같은 것들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그래도 세계에 다시는 없을 인도의 결정체 바라나시를 경험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오토릭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오토릭샤 연비는 휘발유 1리터당 25Km로서 의외로 생각보다 낮다. 나를 태우고 간 릭샤왈라는 영어, 스페인어, 불어,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자랑한다. 유쾌한 드라이브 끝에 공항에 도착해 오후 4시 35분 바라나시를 출발해 저녁 6시 델리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방콕행 Jet Airways 출발까지는 무려 6시간 30분이 남아있다. 출발 3시간 이전에는 터미널로 입장시키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로 건너편 라운지에서 버텨보기로 했다. 30루피를 내고 입장한 라운지에는 다행이 휴게공간이 여유가 있고 푸드코트도 있다. 밤늦은 시각 델리공항 국제선 터미널에서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미주, 중동 등 세계 각 지역으로 수많은 여객기들이 출발한다. 방콕행 여객기는 만석이다. 승객들은 그야말로 다인종 다국적이다. 동서양의 교차로인 인도와 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짐작케 한다.
13일차 (방콕 → 홍콩 경유 → 인천)
항공기는 델리를 이륙한지 4시간 30분 걸려 방콕에 도착하니 아침 6시 45분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나를 맞이한다. 붐비는 인파와 요란한 경적소리는 온데간데없다. 나는 통과여객이므로 입국 심사 없이 공항 터미널에 머문다. 홍콩행 항공기 출발까지 4시간 이상을 또 기다려야 한다. 인도 항공기의 정시율을 확신할 수 없어서 연결 시간을 넉넉히 뒀으나 Jet Airways가 정시에 도착하는 바람에 환승대기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화장실에서 양치질과 간단한 세면을 마친 후 탑승을 기다린다. 대합실에 설치된 TV 모니터는 모두 LG 혹은 삼성이고 게다가 신동엽이 진행하는 한국 오락프로그램이 태국어 자막과 함께 나온다. 적어도 태국까지는 용모와 문화가 비슷하므로 한국 방송콘텐츠가 경쟁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까지 한국 상품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방콕 국제공항에서 항공기를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지 않았다.
오전 11시 30분에 방콕공항을 이륙한 항공기는 2시간 40분 비행 끝에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환승해서 오른 인천행 항공기 또한 만석이다. 홍콩 이륙 3시간 20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13일간의 여정이 무사히 막을 내렸다. 다시 돌아온 아시아 동쪽 끝에 자리 잡은 나의 터전이 오늘따라 화려해 보인다.
에필로그 = 남한 면적의 33배, 인구 11억의 거대한 나라에 갔다 왔다. 넓디넓은 땅을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해서 작은 오차도 없이 무사히 여정을 마친 것을 절대자께 감사드린다. 나의 세계관이 다시 한 번 확장했음을 느낀다. 세상에는 일찍부터 알려졌으나 그동안 나에게는 미지의 땅이었던 인도를 다녀온 감회는 간단히 표현하기 어렵다. 아직도 경적소리, 인도의 냄새, 인도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이 나의 오감에 남아있다. ‘세상은 넓고 가봐야 할 곳은 많다’ 이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호기심과 두려움, 기대와 환상, 감동과 흥분, 긴장과 안도. 이런 것들이 지금 내 느낌을 요약하는 단어들이다. 한 순간 인간이 밉다가도 그 다음 순간 인간에 대한 애정이 솟구치는 나라, 진절머리 나게 싫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가고 싶은 나라 인도에 다녀 온 것이다.
아직은 1인당 소득 1300달러(2012, World Bank)의 나라이지만 훗날 인도가 오늘 한국의 모습을 닮아 있을지 모른다. 세상은 넓지만 뚫고 들어갈 틈이 좁은 ‘꽉 찬’ 선진국보다 오직 발전할 것만 남아있는 인도에서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많을 것이다. 2040년에 인도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심지어는 2060년이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예측이 과연 현실로 나타날지 지켜 볼 일이다. 500년 전 서구 열강이 그랬듯이 21세기 세계는 인도를 놓고 다시 한 번 각축을 벌이고 있는지 모른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버젓이 그 대열에 끼어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자신감을 얻은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보람 있었다.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