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마닐라 여행<2/3> 인천 - 홍콩 경유 - 싱가포르(2박) - 마닐라(2박) - 홍콩 경유 - 인천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3일차(싱가포르 → 마닐라)
공원과 녹지의 도시
오늘 마닐라행 항공기 출발은 늦은 오후라서 낮 시간을 활용하여 도시 외곽을 둘러본다. 호텔을 나와 쥬롱 이스트(Jurong East)행 버스에 오른다. 도시 곳곳에 녹지와 공원이 넓어 여유롭다. 토지는 좁지만 공공지를 많이 확보한 영국 통치 시절의 관리형 토지 정책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좁은 면적에 인구가 많아도 인구압을 느끼지 않는 것은 바로 녹지 때문이다. 답답한 서울에 사는 나로서는 부러운 점이 많다.
버스는 남서부 임해(臨海) 물류 지역을 지난다. 방대한 양의 컨테이너가 야적되어 있다. 항만지역이라서 대형트럭들도 많이 다닌다. 도시 외곽은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싱가포르에는 고속도로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동쪽 끝 창이공항에서 서쪽 끝 쥬롱(Jurong)을 연결하는 PIE(Pan Island Expressway)가 간선 동맥이다.
버스는 곧 도시 남서쪽 외곽 파시르 판장(Pasir Panjang) 지역에 들어선다. HDB(Housing Development Bureau)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아주 잘 가꾸어진 단독주택과 2-3층 콘도미니엄 단지가 나온다. 한눈에 고급 주택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백인들이 종종 눈에 띠고 국제 학교도 여럿 보인다. 서구를 능가하는 커뮤니티 시설도 곳곳에 있다.
분명 싱가포르는 선진국이다. 그러나 넓은 녹지와 공원, 좋은 학교와 커뮤니티 시설 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든다.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세금 부담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 복지국가, 선진국은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국경 CIQ와 리틀 인디아
쥬롱 이스트 MRT 역에서 버스를 내려 북쪽 우드랜즈(Woodlands)행 버스로 갈아탄다. 버스는 아파트 밀집 지역을 지나 30분 만에 우드랜즈 지역에 들어선다. 집집마다 싱가포르 독립(건국)일을 기념하여 국기를 걸어놓고 있다. 싱가포르는 1957년 말레이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중앙정부와의 불화로 1965년 내몰리듯 독립, 건국했다.
말레이시아 국경 체크포인트(CIQ, Custom, Immigration, Qurantine)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40분이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국경에는 두 지역간 연결 버스가 빈번히 다니고 열차를 비롯한 모든 육상 교통수단이 통하지만 분위기는 삼엄하다.
서구화된 아파트가 즐비한 싱가포르와 회교 모스크가 위용을 뽐내는 작은 강 너머 조호르 바루(Johor Bahru)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한 때 말레이시아 연방에 속해서 같은 나라였던 두 지역이 지금 국경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관리하는 것을 보니 아이러니컬하다.
우드랜즈에서 MRT로 시내로 향한다. 약 45분 걸려 리틀 인디아(Little India)에 도착하여 출구를 나오니 갑자기 딴 세계에 온 느낌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생김새는 물론 냄새와 소리까지도 여기가 남인도 타밀 나두(Tamil Nadu)의 작은 거리 어디쯤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거리에는 남인도 음식점, 북인도 음식점, 수공예품과 기념품 상점이 즐비하고 두리번거리는 관광객들이 오고 간다. 치킨과 양고기 케밥에 볶음밥, 그리고 인도의 명품 킹피셔(King Fisher) 맥주를 시켜서 양껏 먹고 모처럼 여유를 즐긴다.
영국의 싱가포르 개발
싱가포르는 1819년 영국인 스탬포드(Stamford)가 가치를 발견하고 래플스(Raffles)가 개발하여 정글과 습지로 뒤덮인 지역을 자유무역항으로 키웠다. 영국은 이미 1786년부터 말래카 해협 북쪽 관문인 페낭(Penang)을 경영하고 있었으나 북쪽에 치우쳐 인도와 너무 가까워 불편하던 끝에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가치를 깨달아 획득한 것이다. 이로써 영국은 페낭(1786년), 말래카(네덜란드로부터 획득)와 함께 싱가포르까지 인도와 중국을 잇는 삼각점을 완성한다.
싱가포르는 노동 인력이 필요하여 중국 푸젠성(福建省) 샤먼(厦門) 지역과 남인도에서 이주자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날 다인종 사회를 만든 배경이다.
리틀 인디아 거리를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어느덧 MRT 페러 파크(Ferrer Park) 역이다. 어느새 거리와 사람들 모습은 남인도에서 북인도로 바뀌어 있다. 근처 모스크에서는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있다.
도시 탐방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찾아 공항으로 향한다. 마닐라행 세부 퍼시픽(Cebu Pacific) 항공기는 메인터미널에서 떨어진 저가항공사 터미널(Budget Terminal)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성가시지만 이곳 또한 쾌적하다.
▲인도 타밀 나두 주를 연상케하는 리틀 인디아
다양한 인종…선량한 필리핀 사람들
마닐라행 세부 퍼시픽 항공기는 1시간 20분 지연하여 저녁 7시에 출발해서 적도의 밤하늘을 난다. 항공기 탑승객들은 대부분 필리핀 사람들, 그리고 압도적으로 여성이다. 필리핀 사람들의 다양한 용모가 항공기에 탑승한 사람들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중국 북방인, 중국 남방인, 타이완 고산족, 태국인, 메스티조(mestizo), 스페인계 백인, 말레이인, 그리고 드물게는 파푸아인 등 세계 모든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다. 인구가 9천만명에 달하니 당연히 그 정도의 다양성은 존재할 것이다. 스페인 통치 330년, 미국 통치 50년이 남긴 흔적이다. 그래도 영어를 할줄 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싱가포르는 홍콩, 마카오처럼 훌륭한 일자리를 제공한다.
바로 이 항공기도 아시아 각 지역에 돈벌러 나가는 수많은 필리핀 국민들을 실어나를 것이다. 해외 송출 인력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필리핀의 국가 산업이 되지 않았는가? 언어가 다르고 용모가 다르고 기후가 다른 낯선 타국에서 오로지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서 가족과 헤어져 홀로 지내는 기다림과 인내와 서러움의 세월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싱가포르 이륙 후 3시간 30분, 마닐라 상공이다. 항공기는 활주로 착륙 목표 지점을 살짝 지나쳤는지 거친 경착륙 끝에 급격한 제동으로 속도를 줄인 후 터미널로 접근한다. 아까부터 싱가포르에서 1시간 20분 지연 출발이 마음에 걸렸던 나로서는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호텔로 가는 로하스 거리(Roxas Boulevard)는 중심 거리이지만 가로등이 없어 어둡다. 네온사인이 유혹하는 홍등가를 지나 도착한 호텔은 그래도 널찍한 방 두 개짜리 스위트룸이다.
필리핀 사람들을 벌써 여럿 마주쳤는데 한결같이 선량하고 친절하다. 호텔 체크인 후 방을 찾아가려는데 종업원이 굳이 방까지 가방을 들고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고마움의 표시로 한국돈 1000원을 주었더니 하염없이 고마워한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필리핀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다. ‘돈이 곧 힘’이다. 치안 문제만 아니라면 마닐라는 참 즐거운 곳인데 안타깝다. 밤 깊은 시간에는 짧은 거리도 걷기에 부담스러운 마닐라이다.
▲저가 항공사 터미널에서 마닐라로 가는 세부 퍼시픽 항공 비행기
4일차(마닐라)
마닐라 MRT
호텔에서 조식 후 9시 30분쯤 느긋하게 길을 나섰다. 어젯밤 인적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호텔 앞 도로가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 일단 타프트 에드사(Taft EDSA) MRT역으로 택시를 탔다.
MRT역 주변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어렸을 적, 가뜩이나 좁은 인도에 노점상까지 늘어서서 걷기조차 불편했던 바로 그 모습을 기억하기에 불평하지 않는다. 다만 소매치기는 조심해야 한다.
동북쪽 노스 애브뉴(North Avenue)행 표를 끊어 MRT에 승차했다. MRT는 지상으로 가기 때문에 볼거리가 있고 마닐라의 심각한 교통 체증을 겪지 않으므로 매우 빠르다.
앞 두 칸은 여성, 노약자, 장애인 전용으로 아예 차량을 구분해 놓았다. 사는 것이 넉넉지 않지만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인상적이다. 문화적, 정신적으로 서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MRT는 화려한 마카티(Makati) 지구를 왼쪽에 두고 빈민가가 즐비한 파식(Pasig)강을 건너 북행한다. 이전보다 도시가 많이 정돈되고 화려해졌다. 슬럼가도 최소한 도심에서는 많이 사라졌다. 아시아가 모두 발전하는데 이 나라가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도 대형 주상복합 건물은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빈 곳이 많은지 임대 광고가 곳곳에 붙어 있다.
노스애브뉴 MRT 종점에서 내렸다. 역 부근의 빈민가 또한 재개발로 헐리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갈 곳 없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땅에는 대형 쇼핑몰과 프로젝트 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글로벌 신자유주의 경제금융 질서의 여파는 여기에도 영락없이 영향을 미쳤다.
수다스런 필리핀 사람들
인근 쇼핑몰에 들어갔다. 땅이 넓은 마닐라에는 곳곳에 몰이 많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 개별 스토어마다 사설 경비원을 두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수다스럽다. 혼자서는 조용하다가도 여럿이 모이면 어김없이 수다스러워진다. 가는 곳마다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흥겨워한다. 참 낙천적인 백성이다. 그러니 가난해도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훨씬 높은가 보다.
▲지프니와 오토바이가 바삐 오가는 마닐라 거리
몰에서 나와 택시로 케손 서클(Quezon Circle)로 이동한다. 노스 애브뉴 MRT역에는 인근 각 지역으로 가는 지프니(Jeepney) 환승 터미널이 있다. 지프니는 우리나라 마을버스처럼 대형버스나 전철이 닿지 않는 골목 구석구석을 누빈다. 체계적인 노선 번호만 없을 뿐 정해진 노선을 다니는 시민의 편리한 발이다. 내부는 보기보다 승차감이 좋고 생각보다 덥지 않다. 디젤 엔진과 기어 변속음 소리가 오히려 경쾌하기까지 하다.
노스 애브뉴에서 택시로 10분 이내에 도착한 케손 서클은 케손시티(Quezon City) 초입에 자리잡은 공원이다. 널찍하고 녹지가 잘 가꾸어진 공원 중앙에는 케손 기념탑과 그를 기리는 사당(shrine)이 있다.
케손(Manuel Quezon)은 1935-1942년 미국 통치시절 미국 보호아래 수립된 필리핀 연방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분이다. 필리핀 독립의 유일한 방법은 미국과 협상하는 방법이라고 믿은 그는 조국 독립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추앙받고 있다.
낙천적인 필리핀 사람들
공원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모임장소이다. 마침 학교에서 발표할 무용을 연습하는 학생들은 외국인인 내가 필리핀 연예인 누구를 닮았다고 수근거린다. 이곳 사람들의 용모가 아무리 다양해도 외국인인 나의 모습은 금세 눈에 띠는가 보다.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기아나(Guianna)라는 이름의 여성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다. 삶이 고달프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유쾌하기만 하다. 고단함만이 삶의 기준이라면 필리핀 사람들의 삶은 참혹할 것이다. 그러나 낙천적인 이곳 사람들은 내일을 기다리며, 가족을 키우며,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며, 구원을 바라며 오늘의 고단함을 잊는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 불만과 불평에 가득한 나를 책망한다.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정의식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