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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⑮]400년 피침 슬픈 역사 한서린 인트라뮤로스, 아시아 민주화 선도했지만 저개발 문제 미해결

글로벌 공용 영어 영향력 새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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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0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4.12.24 09:01:0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싱가포르-마닐라 여행<3/3> 인천 - 홍콩 경유 - 싱가포르(2박) - 마닐라(2박) - 홍콩 경유 - 인천

4일차(마닐라)

나보타스 가는 길

노스애비뉴로 다시 나와 이번에는 버스로 마닐라 서북쪽 LRT 종점인 모누멘토(Monumento)로 향한다. 낡은 일제 버스는 요란한 경적음을 내며 빠르게 달린다. 그래도 에어컨은 시원하게 나온다.

모누멘토 LRT 근처는 참으로 복잡하다. 걸인, 어린이, 불구자, 행상들이 마구 뒤섞였다. 소음과 매연도 한 몫 하는 전형적인 후진국 모습이다. 그래도 광장 중앙에는 전승 기념비와 함께 대형 필리핀 국기가 나부껴서 국민의 자긍심을 불어 넣고 있다.

그곳에서 택시로 나보타스(Navotas)로 향한다. 마닐라 수산물의 50%를 공급하는 어촌이라길래 호기심에 찾아가는 것이다. 택시로 20분 정도 걸렸다.

나보타스, 가슴 저미는 가난

나보타스 어촌 마을은 내가 상상했던 낭만적인 어촌이 아니었다. 해변에는 빈민가 수상 가옥이 끝없이 늘어서 있고 거리는 판자집이 즐비한 찢어지게 가난한 어촌이다. 저 멀리까지 태평양은 탁 트였지만 시민들은 넓은 바다를 조망할 마음의 여유도 없어 보인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물이 매우 더러운 것은 당연하다. 아, 삶이 무엇인가?

▲마닐라 풍경.


한국인 봉사단이 이곳에서 활동을 한 듯 한국인들이 지어준 IT 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한인 봉사단은 대개 기독교와 관련있다. 그렇지 않아도 열심히 가톨릭을 믿는 이들에게 기독교 포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연한 분쟁이나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

모누멘토 LRT로 돌아와 지프니를 타고 산타크루즈(Santa Cruz)로 향한다. 누비는 골목골목마다 서민들의 질펀한 삶이 펼쳐진다. 분수 광장에는 산타크루즈 교회가 있다. 1768년 건립한 예수회(Jesuit) 교당이다. 차이나타운 한복판에 교회가 있는 것이 흥미롭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중국인들을 위해서 건립했다고 한다. 마침 일요일을 맞아 미사가 진행되고 있다. 미사는 타갈로그어와 영어로 진행한다.

아픈 역사 깃든 인트라뮤로스

파식강을 건너니 인트라뮤로스(Intramuros), 즉 성곽도시이다. 강변 성곽도시 북쪽 초입, 강건너 차이나타운을 바라보는 필리핀항 어구에 조성된 갈레온(Galleon) 범선 기념비가 눈길을 끈다. 필리핀 독립 100년과 멕시코-필리핀 항해 400년을 기념하여 1998년 건립했다.

▲노스 애비뉴의 지프니 터미널.


1565년부터 1815년 사이 350년간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 300회 이상 운항한 갈레온선은 당시 태평양 횡단 최장 노선이었다고 한다. 마닐라 주재 멕시코 대사관과 필리핀-멕시코 무역협회가 두 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유사성을 상징하기 위하여 건립했다는 기록이 이채롭다.

인트라뮤로스에는 우수(憂愁)가 깃들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래된 성곽일 뿐이지만 조금만 들여다 보면 필리핀의 아픈 역사가 온전히 배어 있다. 강에 가까운 쪽에는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가 필리핀 피침(被侵)의 역사를 지켜보며 400년의 풍상을 견디고 서있다. 350년간 스페인 군대가 주둔한 이후 영국, 미국, 일본 군대가 연이어 점령했고 2차 대전 중에는 수백명의 필리핀 우국지사들이 처형당한 비극의 장소이다.

그렇다. 1521년 마젤란이 세부(Cebu) 막탄섬에 상륙하여 필리핀을 스페인 영토라고 선언한 이후 1898년까지 377년, 정식으로는 1571-1898년까지 327년 동안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미서(美西) 전쟁 패배로 스페인이 물러난 직후 시작된 미국의 통치 44년(1898-1942), 그리고 일본 통치 3년으로 이어진 필리핀 피침 역사는 가슴 아프다.

▲전승기념탑 모누멘토.


인트라뮤로스의 역사를 웅변하는 흔적이 또 있다. 지금은 자리만 남은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교회다. 1588년 건립한 이후 지진, 붕괴로 예닐곱 번 재건축을 거듭한 끝에 결국은 완전히 사라져 기록만 새겨진 옛 교회터가 서글프다.

성곽 도시에는 교회, 수도원, 이름모를 오래된 가옥이 즐비하다. 보통 300-400년 된 것들이다. 자랑스러울 것 없는 역사의 흔적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마구 버려진 채로 있다. 먹고 사는 것이 어렵다 보니 복구고 보존이고 신경쓰고 돌볼 겨를이 없어서일 것이다.

마닐라 대성당은 아름답고 웅장하다. 1571년 최초 건립 후 화재, 지진, 태풍, 전쟁 등으로 파괴될 때마다 재건축을 거듭했다. 마닐라 지역에 있던 수많은 성당 중에서 유일하게 원래 모습으로 복구해 놓은 곳이라고 한다. 대성당 옆 총독 관저(Governor’s Palace) 또한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멀지 않은 곳에는 성 어거스틴 교회(San Augustine Church)가 있다. 1587년 건축을 시작하여 1607년 완성했으니 400년도 넘은 교회다. 일찌감치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볼 것이 많은 교회다.

마닐라에 산재한 수많은 교회들이 수백년 세월동안 아예 사라졌거나 파괴, 붕괴와 재건축을 반복했지만 이 교회만은 태풍과 지진, 재해, 전쟁, 화재 등을 겪지 않은 채 원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어 ‘기적의 교회’라고 부른다.

▲가난한 어촌 마을 나보타스.


독립영웅 호세 리잘 기념 공원

바클라란(Baclaran)까지 가는 지프니가 있기에 잡아 탔다. 지프니는 리잘(Rizal) 공원을 돌아 마닐라만(Manila Bay)을 스친다. 마닐라만을 바라보는 넓은 광장에 조성된 리잘 공원은 필리핀의 독립 영웅, 비폭력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Jose Rizal)을 기념하여 조성됐다.

리잘은 스페인 유학에서 귀국한 후 필리핀 동맹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다 여러 번 추방당한 끝에 1896년 스페인 통치자들에 의해서 공개 총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필리핀 국민들로 하여금 독립 이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깨닫게 했다고 한다.

공원 중앙에는 라푸라푸(Rafu Rafu)의 동상이 있다. 세부 막탄섬의 추장인 그는 세계일주 항해길에 세부에 상륙하여 스페인 영토를 선언한 마젤란 일행과 싸워 마젤란을 죽인 영웅이다.

지금은 널찍하고 아름다운 공원이고 시민의 휴식처이지만 이처럼 마닐라 곳곳에는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나그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키노 상원의원 암살 추념일을 맞아 마닐라공항에 설치된 추모 플래카드와 꽃다발.


로하스 대로를 횡단한 지프니는 말라테(Malate)에 접어들어 골목길을 이리저리 굴곡 운행한다. 밖이 완전히 어두워진 시각인 만큼 마닐라 유흥 중심인 말라테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지프니는 비오는 낯선 골목 골목을 한참 돌아 바클라란에 도착했다. 어둡고 비까지 세차게 오지만 호텔이 지척이니 다행이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 여러 병과 스낵을 사들고 호텔방에 들어와 지난 나흘간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짧았지만 생각할 것이 많았던 의미있는 여정이었다.


5일차(마닐라 → 홍콩 경유 → 인천 도착)

성가신 출국 절차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마닐라 국제공항 출국장은 출국자와 환송객들로 매우 혼잡하다. 현지인에게는 2500페소(6만원)에 가까운 출국세를 징수하고 외국인들에게는 750페소(1만8000원)의 공항세를 징수하는 등 출국 과정은 외국인인 나에게도 성가신데 현지인들에게는 얼마나 부담을 줄까?

마침 내 앞에 서있던 필리핀인 선원 출국자는 서류 뭉치를 한 아름 들고 출국 심사를 받는다. 안에서 기회가 적으니 밖으로 나가야 먹고 살 수 있는 백성들에게 밖으로 나가는 길이 이렇게 복잡해서야…. 위장 취업자나 범죄자의 출국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이해는 하지만 1970년대 독재 시절 한국도 내국인들의 출국을 매우 까다롭게 통제, 관리했던 것이 생각난다.

어쨌거나 재주많고 유쾌하고 영어 잘하는 필리핀 사람들은 자꾸만 밖으로 나가 스스로의 삶을 개선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성곽도시 인트라뮤로스.


아키노 상원의원의 추억

공항 터미널 앞에는 1983년 오늘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암살된 필리핀 민주주의 지도자 아키노(Aquino) 상원의원을 추모하는 플랭카드가 노란 풍선, 꽃다발과 함께 걸려 있다.

아키노 상원의원은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추방당하여 미국 보스턴으로 망명했다. 그러던 그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결행하다 마닐라 공항에 내린 직후 암살당했다.

그렇게 촉발된 민주화 운동의 결과 그의 아내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가 대통령이 되어 필리핀 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결국 그의 아들 노이노이 아키노(Noynoy Aquino, 아키노 3세)가 현재 필리핀의 대통령이다.

이렇듯 일찍 민주화에 성공했고 그로 인하여 한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 민주화 물결을 몰고 왔지만 필리핀은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하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홍콩의 더빙 산업

마닐라에서 두 시간을 날아 홍콩에 도착한 후 환승한 인천행 항공기 내에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가 있어 반갑게 읽던 중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홍콩의 더빙·자막(dubbing·susbtitle) 산업에 관한 것이다.

중국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수출을 위해서 영어 더빙이 필요한데 그 일을 홍콩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홍콩의 다언어, 다문화, 기업친화적 환경 덕분에 중국의 콘텐츠 상품이 전세계로 나가는 마지막 가공이 홍콩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아름답고 웅장한 마닐라 대성당.


중국 뿐만 아니라 일본 NHK 등 콘텐츠 사업자들 또한 홍콩 더빙산업의 고객이다. 수출용 콘텐츠의 영어 더빙 이외에도 수입 콘텐츠를 만다린, 말레이어, 타갈로그어, 우르드어 등 지역 언어로 번역, 더빙하는 작업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경제가 세계의 파워하우스가 되어서 중국을 드나드는 금융 자본의 허브로 홍콩이 한 몫 챙기더니 이번에는 콘텐츠 허브까지 선점하려는 것이다. 중국인(홍콩인)들의 사업 능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글로벌 시대는 영어의 시대

영어의 세계적 영향력도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중국이 위안화를 기축 통화로 세우고 문화상품을 통하여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안되는 것은 언어일 것이다. 전 싱가포르 수상 리콴유(李光耀)는 중국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인 중국어를 꼽았을 정도이다.

영어가 지배하는 세계 언어 질서는 설령 영어 종주국(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이 쇠퇴하더라도 이후 오랫동안 존속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영어의 보편성과 침투성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는 곧 영어의 시대라는 등식도 억지는 아닐 듯 싶다.

4박 5일 여행을 되새기는 사이 항공기는 제주 상공에 들어오더니 삽시간에 목포 상공을 스쳐 인천공항 착륙 준비를 한다. 참 좁은 나라다.

자유여행의 매력

언제부터인가 나는 솔로 자유여행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저가항공과 2-3성급 수준 호텔의 불편함은 있지만 발 닿는 대로 현지인과 살을 맞대며 냄새를 느끼는 여행의 매력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번 여행길에 스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싱가포르 카지노에서, 겔랑 거리에서, 마닐라 지프니에서, 인트라뮤로스에서, 그리고 이름모를 거리에서.. 여행도 매력적이지만 아시아는 더욱 사랑스럽다. 다니면 다닐수록 더욱 깊숙이, 더 도전적으로, 더 낯선 곳으로 다니고 싶은 충동을 붙들어 매야 할 지경이다.

나에게 아직은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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