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조선시대는 뭐든 담박했다고? 조선 나전 보면 생각 달라질걸
호림박물관 ‘조선의 나전, 오색찬란(五色燦爛)’전
▲나전화조문빗접, 19세기, 23.3×23.0×22.2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꽃의 꽃술과 잎맥, 줄기에 모조법(자개를 머리털 같은 가는 선으로 새기는 방법)으로 세부표현을 해 입체감이 살아날 수 있도록 만든 화살을 담은 기다란 통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영롱한 색을 반짝이며 눈길을 모은다. 바닥과 뚜껑은 금속으로 된 거북형 붙박이 자물쇠로 마무리했다.
몸통 전체에 나전으로 모란당초문을 가득 베풀어 놓은 나전 모란당초문 화살통은 조선중기에서 후기로 가는 중간단계에 만들어진 것으로, 1968년 개인 소장가로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이 구입했다.
이들 작품들은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 신사분관이 3월 14일∼6월 30일 진행하는 ‘조선의 나전 - 오색찬란’전에 공개되고 있다.
전시장에는 △영롱한 빛이 아름다운 나전 △화려한 채색이 강조돼 여성의 공예품으로 사랑받은 화각(華角, 쇠뿔을 얇게 펴서 채색 그림을 그린 후 이를 목기물 위에 붙여 장식하는 한국 특유의 각질 공예기법) △바다거북의 등껍질과 상어의 가죽으로 제작한 대모(玳瑁, 거문고와 향비파 담괘 안 복판에 붙인 노란 빛깔의 쇠가죽) △어피(魚皮) 등 조선시대의 화려한 공예문화가 ‘오색찬란’이라는 프레임으로 새롭게 조명된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천년을 이어 온 빛 나전칠기’전 이후 거의 10년만의 나전칠기 특별전이자 처음으로 조선시대 나전칠기에 집중한 전시이다.
▲나전포도문옷상자, 19세기, 70.8×45.3×18.0,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 있는 미의식을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미술은 그동안 문인화와 백자·분청사기를 중심으로 담박(淡泊)하고 간결한 면이 주로 강조돼 왔으나, 이번 나전 전시회를 통해 ‘오색찬란함’을 추구했던 조선 시대 미의식의 또 다른 일면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더 넓어진 향수층의 취향을 반영
고려시대 나전칠기에 밀려 있던 조선 후기 나전칠기는 이전 시대의 것만큼 희소하지도, 정교하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하지만 일부 지배층의 취향이 아닌 대다수의 취향을 담고 있고, 많은 수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오색찬란한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과, 절제미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예술의 이면을 엿보게 해준다.
검은 색 옻칠을 입힌 나무 표면에 새긴 무늬대로 전복이나 자개 패를 오려내 붙이거나 박아 넣는 나전(螺鈿)으로 장식한 목공예품들의 자태가 멋스럽다. 우리나라에서 이 기법은 늦어도 고려 초기에 시작해 지금까지 오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나전은 우리 전통공예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고 널리 사랑받았다. 검은 옻칠 바탕에 새겨진 자개의 영롱하고도 오색찬란한 빛깔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시물들은 고려와 조선 전기의 나전 전통을 계승해 발전시킨 조선 중-후기의 작품들이다. 이 시기는 나전이 성행하며 장식 기법과 소재가 더욱 다양해졌다.
▲나전매죽조문상자, 18세기, 27.7×27.7×10.0
줄음질, 끊음질, 모조법, 타발법 등 나전 제작 방법으로 완성된 사군자(四君子), 화조(花鳥), 길상문자(吉祥文字), 장생(長生), 산수인물(山水人物) 등 다양한 문양에서 나전의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여성-안방에는 화려한 나전, 사대부 공간에는 소박한 문양
조선의 목공예는 자연스런 나뭇결의 아름다움과 이상적인 비례미(比例美)에 조형 기반을 두고 있어 예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아울러 다채로운 색과 다양한 장식기법을 시도한 목공예는 고유의 자연미뿐 아니라 화려한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나전은 검은 칠과 붉은 칠 바탕에 자개를 꾸며 영롱한 빛깔이 화려한 장식미를 드러낸다. 바다거북 등껍질과 상어 가죽을 사용해 장식하는 대모와 어피는 이색적인 장식기법으로, 두 가지 재료는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 나전 장식의 보조로 활용됐다.
조선 시대의 목공예품은 배치되는 공간에 따라 장식의 성격이 달라지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안방의 경우는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보다 색이 밝고 화사한 것을 선호했다. 이에 따라 나전의 문양도 한층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사대부의 학문 공간인 사랑방은 학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화려한 장식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소뿔을 얇게 켜 다양한 문양을 화려하게 채색한 화각은 부드럽고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 여성용품에 애용됐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