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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라이프 ② 새누리 이명수 의원]“사할린아픔 진행중”

광복·분단 70년 맞아 강제동원 전시회 열고 지원법안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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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4호 최정숙 기자⁄ 2015.03.30 14:55:33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 사진 = 연합뉴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최정숙 기자) 사할린. 지리적으로 일본 홋카이도 북쪽, 오호츠크해와 동해에 둘러싸여 있는 섬이다. 역사적으로는 ‘사할린ㆍ치시마(千島) 교환 조약(1875년)’을 통해 러시아 영토가 됐다가 러ㆍ일전쟁 후 포츠머스 조약(1905년)에 따라 남사할린은 일본령이 됐다. 1945년 얄타협정 때 구 소련으로 영토가 반환되면서 현재는 러시아 땅이다.

그런데 이곳이 우리 민족의 ‘한(恨)이 서린 땅’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1910~45년)에서 벗어난 지 70년, 즉 광복(해방)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짧은 시간 동안 고성장을 달성했다. 하지만 여전히 조국 통일의 과제가 남아 있다. 기념 햇수가 늘어나면서 당시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점점 잊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1939년~45년) 중 일제는 조선인들을 사할린 섬으로 강제 징용했다. 사할린의 석탄채굴과 지역개발 등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가 이유였다. 끌려간 조선인들은 탄광 등에서 혹사당했다. 이들은 혹사당한 것도 모자라 종전을 맞이한 뒤에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현재 사할린에는 한인 1세와 그 후손 등 4만 3000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중 국내로 귀환을 바라는 사람은 7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곳 주민의 대부분은 러시아인이다. 한인은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소수민족으로 겪어야 할 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서 사할린의 슬픔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이 가운데 한 명이 새누리당 이명수(충남 아산) 의원이다.

▲2월 24일 국회의원회관 제2 로비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 사할린 강제동원 자료 전시회’에 전시된 자료들. 사할린주 역사기록보존소 소장 자료 및 대일항쟁기위원회 소장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 = CNB

이 의원은 지난달 국회 의원회관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사할린에서 최초로 입수한 자료, ‘일제강점하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희생자 한국유족회’ 국내 유족들의 소장 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했다. 전시회에는 ‘국립 사할린주 역사기록보존소’의 소장 자료와 ‘대일항쟁기위원회’ 소장 자료 등이 공개됐다.

일제 강점기 역사 점점 잊혀가는데…

이명수 의원은 현재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다. 외교통일위원회 소속도 아니고, 다른 일도 많은 그가 어떻게 ‘사할린 전시회’를 열게 됐을까 궁금했다. 이 의원과 CNB와의 인터뷰는 3월2일 진행됐다.

의원실에 들어섰을 때 서류철이 돼 있는 파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책장이 보였다. 한 눈에 봐도 굉장히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의원을 만났을 때 그의 손에는 국회도서관에서 대여한 ‘명성황후 최후의 날’ 책이 들려 있었다.

“역사는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저자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육부도 더 이상 역사 왜곡 교과서를 인정해줘서는 안 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이 의원의 말처럼 역사공부는 소홀히 할 수 없다. 특정 저자나 출판사의 잣대로 사실이 왜곡돼서도 안 된다. 실제 일부 교과서는 일제강점기에 대해 제대로 기술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일부 교과서가 일제강점기 때 유관순 열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외 또는 축소한 것을 지적했다. 

일제가 과거 우리 민족을 학대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학대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월 24~26일 한국갤럽이 일제강점기 주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도를 제대로 아는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일강제병합(경술국치)에 대해 성인의 19%만이 ‘1910년’으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 3ㆍ1운동(1919년)은 32%, 해방된 해(1945년)는 58%만이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 86%는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일제강점기를 ‘더 상세히 다뤄야 한다’고 봤다(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5명,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대다수가 역사 교육 강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얘기다.

이명수 의원은 한국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대일 과거청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사할린 전시회도 이 같은 그의 신념에 따라 개최됐다.

“제가 역사 전문가는 아닙니다. 우연한 기회에 신윤순 사할린 희생자 유족회장께서 올해 광복 70주년이니까 자료전시회를 하자고 해 열게 됐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 강제동원의 참혹한 실태를 국민에게 알리고, 미해결 대일 과거청산 문제 해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할린 이산가족은 광복 70년 돼도 진행 중

광복 70년. 우리는 거주이전과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사할린 동포들에게는 아직 먼 얘기다.

“우리 지역구에도 사할린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할린으로 강제로 이주당해 거기서 노동을 한 분 중 일부는 돌아가셨고, 살아계신 분 중 일부는 국내에 귀국했습니다. 그분들은 사할린을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가지 못합니다. 자식들은 사할린에 살고 있지만 데리고 올 수도 없습니다. 러시아 정부와 협조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이곳에 살고, 아들은 사할린 살고….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는 비극의 출발이 바로 사할린 강제동원입니다.”

당시 사할린으로는 3만 명 정도가 동원된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정부는 1905년 남사할린 점령 이후 조선인을 대거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조선인 강제동원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사할린은 일본과 한반도를 제외한 지역 중 강제동원 된 조선인 노무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됐습니다.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사할린섬에 끌려가 정당한 대가 없이 강제 노역을 당했고, 현재까지 강제 징용에 대한 피해 보상도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들은 일본 대기업들이 운영한 탄광 등으로 동원됐다.

▲이명수 의원이 2월 24일 국회의원회관 제2 로비에서 열린 ‘사할린 강제동원 자료 전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이명수 의원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사할린 노무 동원 피해자로 인정된 6120명을 조사 분석한 결과 1469명(24%)이 미쓰비시ㆍ미쓰이ㆍ닛테쓰광업(현 신일철주금) 등 대기업 운영 탄광과 공장 등으로 동원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로 접수된 7187건 중 현지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는 2577건(35.9%)에 이릅니다. 생존할 확률이 낮은 편입니다. 당시 남사할린 14개 탄광에 동원된 조선인 3191명의 경우 1944년 11월 일본으로 전환 배치되면서 가족과 떨어진 채 사망한 이들도 많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명수 의원은 이번 전시가 역사적 교훈을 남기고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사할린 강제동원이 어떤 것인지 젊은 세대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혀야할 책무를 느꼈습니다. 전시회를 통해 역사적 교훈을 남기고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동안 희생자 지원위원회가 일본에 끌려간 분들 위주로 보상했는데 이제는 사할린 등에 강제동원된 분들도 보상해줘야 합니다.”

이 의원은 정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유골봉환 사업 추진을 촉구했다.

“남사할린 공동묘지에 묻혀 귀향길을 기다리는 한인 유해는 3만 2173기입니다. 최근까지 한국 정부가 모셔온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유골은 극소수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행정-재정 절차와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해 소극적이었습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2~3년 전부터 사할린 한인 유해를 모셔오자고 해 유해 보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천안 ‘망향의 동산’에 사할린 한인 유골을 19위만 모셨습니다. 앞으로 정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유골봉환 사업 추진으로 더 많은 유해를 모셨으면 합니다.”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도 보상해야”

이번 전시회는 우연히 하게 됐지만 이 의원은 18대 국회의원 때부터 사할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19대 때인 지난 2003년 2월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 지원 확대 등을 골자로 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인터뷰를 한 날도 그는 관동대지진 피살자 등 일제에 의한 반(反)인도주의 만행의 진상규명과 추도사업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현재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조사하고 피해자에 대한 부분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 국외로 강제동원된 사람으로 한정됩니다. 국내로 강제동원된 사람들은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강제동원 생환자 중 생존자에게도 위로금이 지급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도 국외 강제동원자와 같은 지원을 해주고 지원금액도 확대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습니다. 피해자와 그 유족들을 위로하고 지원해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국민화합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사할린의 아픔은 언제쯤 끝날까. 이 의원은 지금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고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할린의 아픔은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은 기억하지만 나쁜 일은 기억하지 않으려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픔의 자취가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제동원된 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역사 속에 묻힐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밝힐 것은 밝히고 후속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위로하고 보상하고, 일본과 러시아에도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다시는 이런 역사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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