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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체스', 스토리 라인은 ↓ 켄-신우의 재발견은 ↑

미흡한 연기 보완하는 안정된 가창력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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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5.06.26 17:24:08

▲뮤지컬 '체스'로 뮤지컬 무대에 첫 도전을 한 B1A4의 신우(왼쪽)와 빅스의 켄.(사진=쇼홀릭)

솔직히 아이돌이 출연하는 뮤지컬은 관람 기피 1순위였다. 과거 한 공연 프레스콜에서 실력이 많이 부족한 아이돌이 주역을 꿰찬 무대를 보고 실망감에 날선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뮤지컬 ‘체스’는 이런 편견을 기분 좋게 깨줬다.


뮤지컬 ‘체스’는 초연 30년 만에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제가 된 건 주역으로 캐스팅 된 4인방이었다. 조권(2AM), 키(샤이니), 신우(B1A4), 켄(빅스)까지 러시아 체스 챔피언 ‘아나톨리’ 역에 모두 아이돌이 캐스팅된 것.


그간 흥행을 염두에 둬 아이돌을 캐스팅 하고, 실력이 부족한 아이돌을 뒷받침하기 위해 뮤지컬 배우를 같은 역할에 끼워 맞추는 식의 형태는 많이 봐왔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극장의 공연에, 그것도 조권과 키는 뮤지컬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이 첫 뮤지컬 도전인 신우와 켄까지 모두 주요 배역에 아이돌을 도배한 것은 무리수가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다른 배우가 아무리 잘하더라도 뮤지컬은 조화가 중요해 잘 섞이지 못하면 몰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편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일단 6월 23일 열린 뮤지컬 ‘체스’ 프레스콜에서였다. 뮤지컬 ‘체스’는 냉전 시기 체스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암묵적 이념 전쟁을 그린 작품으로, 이날 프레스콜에서는 러시아 체스 챔피언 아나톨리가 경쟁자로 만난 미국의 챔피언 프레디의 조수 플로렌스와 사랑에 빠져 미국으로 망명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졌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프리실라’ 등에서 이미 뛰어난 가창력과 안정된 연기력을 인정받은 조권은 이 작품에서 평소의 유쾌 발랄한 이미지를 벗고, 어두움과 상처를 가진 아나톨리를 소화하며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그런데 정작 더 눈길이 간 건 켄과 신우였다.


가요와 뮤지컬 발성은 엄연히 달라 자칫하면 생목으로만 노래를 해 고생을 하는 아이돌을 볼 때도 있었는데, 켄과 신우 모두 풍부한 성량으로 안정된 가창력을 보여줬다. 그래서 무대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켄의 공연을 다시 찾았다.


▲뮤지컬 '체스'의 한 장면. 냉전 시기 체스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암묵적 이념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무대 위에 체스판을 구현한 형식이 눈길을 끈다.(사진=쇼홀릭)

연기는 살짝 오글거리는 면이 있었다. 대본상 아나톨리는 40대의 나이에 공산주의라는 시대 상황에 억눌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고, 적대국이지만 동시에 자유를 상징하는 미국을 동경하며 플로렌스와 사랑에 빠지는 등 다사다난한 캐릭터다. 아무래도 20대 초반의 젊은 켄이 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첫 뮤지컬이라 긴장했는지 다소의 떨림도 느껴졌다. 상대역 플로렌스와 등장할 때도 듬직한 연인이라기보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연상연하 커플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노래만 하면 확 달라졌다. 바들바들 떨던 아나톨리는 사라지고,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조국 러시아에 대한 애정 또한 버리지 못하는 갈등이 노래에서 느껴졌다. 그 매력이 폭발한 장면이 1막의 마지막 곡 ‘앤섬(Anthem)’이다. 가사도 명확하게 들렸고, 고음이 시원하게 뻗어 올라갔다. 최근 ‘복면가왕’에서도 뛰어난 가창력으로 주목받았는데, 뮤지컬 무대에서 이런 매력이 제대로 만개했다. 공연 중 가장 많은 박수가 나온 장면도 그가 부른 ‘앤섬’이었다.


앞으로의 가능성이 기대되는 배우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즐거웠지만 뮤지컬 ‘체스’ 자체의 스토리 라인은 아쉬웠다. 1막에서 아나톨리와 플로렌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에서 다소 개연성이 부족했고, 갑자기 미국으로 망명을 결정하는 아나톨리의 모습도 중간 과정이 생략된 느낌이었다.


주요 소재가 체스이지만 체스는 뒤로 빠지고 아나톨리와 그의 부인 스베틀라나, 그리고 플로렌스의 삼각관계에 치우친 점도 아쉬웠다. 2막에서 아나톨리와 플로렌스가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은 갑자기 모든 상황을 끝내려는 듯한 어색한 전개가 느껴졌다.


어렸을 때 헝가리에서 아버지를 잃은 플로렌스와 천재적이지만 오만한 프레디, 새로운 세계와 사랑을 꿈꾸는 아나톨리에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러시아 대표단 단장 몰로코프와 프레디의 에이전트 월터까지, 각각의 사연이 넘치는 캐릭터가 약 2시간여 펼쳐지는 무대에 한 데 모이다보니 빠른 전개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토리 라인은 아쉽지만 무대 위에 체스판을 재현하고, 그 위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체스의 말처럼 움직이도록 보이는 조명과 안무 등 무대 구성은 흥미로웠다. 아나톨리는 자유, 플로렌스는 사랑, 프레디는 승리, 월터는 돈 등 각자 아등바등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거대한 냉전 시대의 이념 싸움 아래 “우리는 어쩌면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조종당하는 말에 지나지 않을까” 묻게 되는 인물들의 고민을 함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무대를 통해 켄이 도전할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뮤지컬 ‘체스’를 이끄는 왕용범 연출은 뮤지컬에 재능 있는 아이돌을 발굴하는 연출가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가 올해 1월 선보인 뮤지컬 ‘로빈훗’에서 철없던 왕세자에서 성숙한 왕으로 변모하는 필립 역을 연기했으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다음엔 좀 더 나이에 맞는 역할을 맡아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한편 뮤지컬 ‘체스’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요셉 어메이징’ 등을 작업한 뮤지컬 작사가 팀 라이스가 가사와 극본을 썼고,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슈퍼밴드 아바(ABBA)의 비요른 울바에우스, 베니 앤더슨이 오페라부터 록까지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었다. 국내 초연엔 왕용범 연출을 비롯해, 이성준 음악감독, 김선미 프로듀서가 참여했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7월 19일까지.


▲극 중 러시아 체스 챔피언 아나톨리 역의 켄(맨 앞)이 열연 중이다. 아나톨리는 공산주의 체제 속 자유와 진정한 사랑을 갈망하는 인물이다.(사진=쇼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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