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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 ‘細密可貴’전]한국美는 소박·투박이라고? ‘정밀 고려’는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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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0호 왕진오 기자⁄ 2015.07.20 11:36:04

▲세밀가귀 전의 ‘경전함’ 전시 모습. 사진 = 리움미술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두 신선과 날개가 달린 물고기와 사슴 등 26마리의 동물들이 조각됐다. 여의주를 끼고 있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아래 74개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다. 산속에는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을 비롯해 실재의 호랑이, 사슴, 코끼리, 원숭이 등 39마리 동물이 11 신선과 함께 살고 있다.

꼭대기 봉황 바로 밑에는 5인의 악사(樂士)가 각각 피리, 비파, 퉁소, 거문고, 북을 연주한다. 바닥에는 용 1마리가 우주의 삼라만상을 받들고 힘차게 승천하려는 기상으로 세 다리로는 바닥을 딛고 한 다리는 위로 추켜올린 채 목을 곧추 세우고 연꽃 줄기를 입으로 물어 떠받든다.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회랑 부근의 건물터 바닥 구덩이에서 진흙에 파묻힌 채 완전한 모습으로 출토된 높이 62.5cm, 최대 지름 19cm의 국보 287호 ‘금동 대향로’에 새겨진 문양들이다.

▲국보 287호 ‘백제 금동 대향로’. 6세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사진 = 리움미술관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 금동 대향로처럼 향로의 받침을 용이 실제로 역동적으로 용트림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이처럼 고대에서 조선까지 한국 미술의 화려함과 정교함을 보여주기 위해 금속공예, 나전, 회화, 불교 미술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 ‘세밀가귀(細密可貴) - 한국미술의 품격’전이 7월 2일∼9월 13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2011년 한국 회화사의 대표적인 예술가 집단이었던 화원 화가들을 집중 조명한 ‘조선화원대전’과 2013년 국보급 공예품들의 예술성을 살펴본 ‘금은보화’전에 이어 고미술 기획 전시의 완결편이다.

▲겸제 정선 ‘금강전도’ 전시 모습. 사진 = 리움미술관

전시 제목 ‘세밀가귀’는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온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1153년)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에서 고려의 나전칠기를 설명하면서 쓴 용어다. ‘정교하고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라는 뜻으로 섬세하고 정교하지만 사치스럽거나 요란하지 않은 고려 시대 미술을 형용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붓으로 풀어낸 미학의 세밀함 
국보급 고미술에 아로 새겨진 섬세함의 극치

전시를 위해 어렵사리 서울 나들이를 한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 금동 대향로’를 비롯해, 국내 19개 주요 기관의 대표 작품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등 해외 21개 소장처에서 대여한 국보·보물 47점을 포함해 140여 점이 관객의 눈을 홀린다.

그동안 한국 미술은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소박미’ 등으로 통칭돼 왔다. 이 같은 편향적 시각을 극복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고 마련된 이번 전시는 한국미의 또 다른 특징인 ‘세밀함’을 문양, 형태, 묘사의 세 부분으로 나눠 보여준다.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 고려 12세기 전반. 브루클린 박물관 소장. 사진 = 리움미술관

서긍이 극찬한 고려 나전은 조선의 그것보다 기형과 문양의 구성, 제작 기법 등에서 월등히 뛰어나다. 작고 단단하게 구축됐으며, 기하학적인 구조미와 비례가 빼어나다. 맵시 있게 빚어낸 귀한 보석을 연상케 하는 자태다. 거기에 미세하고 치밀하게 구축된 빈틈없는 문양은 상하 또는 좌우대칭으로 배치돼 균형감을 자랑한다.

전시품 중 고려 나전의 최전성기인 12∼13세기에 제작된 여섯 점의 경전함은 세계 곳곳에 흩어졌고, 지금까지 스무 점 남짓이 파악됐다. 그 대부분이 해외에 소장 중이다.

안료의 농담을 달리해 투명함과 실물감을 완성

국내 미술관에서 처음 전시되는 ‘청자 진사 연화문 표형주자’(독일 함부르크 미술공예 박물관 소장), ‘칠보산도병’(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동경계회도’(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는 별도의 입체 전시 공간에 모셔졌다. 기능적으로 우월한 공예품이 보석처럼 아름다움을 뽐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청자 진사 연화문 표형주자’. 함부르크 미술공예박물관 소장(왼쪽), 국보 133호 ‘청자 진사 연화문 표형주자’. 사진 = 리움미술관

입사, 투각, 상감, 감장 등 다채로운 기법을 통해 장인들이 정교한 미감을 뽐낸 상감청자는, 고려시대의 정교와 세밀함을 잘 보여준다.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고려청자는 소문·음각·양각·투각 등의 섬세하고 정밀하기 짝이 없는 수법으로 중국과는 다른 고려청자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주조법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치밀한 금속공예품과 불보살상 역시 형태의 섬세함을 보여준다.

고려 후기의 보살상은 이국적인 얼굴과 밀도 높은 세부적 세밀함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서 한 획을 그은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국보 219호 ‘청화백자매죽문 호’. 조선, 15세기. 사진 = 리움미술관

이전 시기에는 없었던 전각형 금동 불감(불상을 모셔 두는 방이나 집)은 고려시대 공예와 조각적 전통을 한껏 발휘해, 중국에도 없는 독자적 형식미를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려시대에 유행한 타출(打出: 금속판을 문양이 조각된 틀에 대고 안팎에서 두들기는 기법), 선각, 축조 기법 등을 동원해 선명한 기와골에서 수키와(목조 건축의 지붕을 덮는 반원통형의 기와)를 만들어냈다.

자기주장 강한 부분을 전체로 통합시키는 절묘함

붓을 통한 섬세함의 표현은 다양한 장르에서 나타난다. 고려 불화에 나타난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문양, 극도로 세밀한 선으로 묘사한 사경(불교 경전을 베껴 쓰는 일)의 선 등이 그렇다.

보물 926호 ‘수월관음보살도’는 고려 불화의 전형적 채색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흰색 안료로 베일 전면에 바탕무늬인 마엽문(麻葉文: 대마 잎사귀 문양)을 그려 넣었으며, 부분에 따라 안료의 농담을 달리해 베일의 투명함과 실물감을 느끼게 했다.

고려 불화는 △주(朱: 누런빛이 섞인 붉은빛), 녹청, 군청, 그리고 금니(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로 대표되는 채색법 △전면을 가득 메우는 각양각색의 문양 △장신구 등의 화면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자기주장이 강해 부분만을 보면 전체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색채의 단순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얇은 묘선으로 면을 작게 구분했고, 그 위에 다시 문양을 그려 넣음으로써 전체 화면에서 깊숙한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국보 138호 ‘금관’. 가야 5∼6세기. 사진 = 리움미술관

조선시대 초상화 역시 극한의 치밀함을 잘 드러낸다. 당시 초상화는 꼼꼼하고 정확한 묘사를 통해 그려지는 인물의 성격과 기질까지 보여주는 이른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추구했다.

초상화가들은 터럭 하나도 닮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인물을 더욱 정확하게 묘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세밀한 필치로 표현해 최고의 명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밖에 청화백자와 철화백자에서도 붓으로 대상을 꼼꼼하게 묘사한 그림을 볼 수 있다.

도자기 제작에 참여한 궁중 화원들은 표면에 단순한 문양을 그리는 단계를 뛰어넘어 최상의 회화적 기량을 발휘했다. 도자기 표면에서도 붓으로 이뤄낸 회화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이 전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물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시대를 대표하게 됐는지 알려준다. 한국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키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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