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 ‘오기사 건축’전]건축가 오영욱의 또다른 ‘건축학개론’
▲오영욱 건축가가 오기사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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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왕진오 기자) “감동을 줄 수 있는 건물, 변화를 꾀하는 공간을 만들어보렵니다.”
말끔한 외모에 조근조근한 말투로 자신이 걸어온 10여 년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첫 인상만으로는 안전모를 쓰고 건설 현장을 누볐을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얼핏 보면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며 논문을 쓸 것 같은 말쑥한 모습이지만, 필명 ‘오기사’로 화제를 모았고, 여배우 엄지원과 결혼하며 유명세를 치른 이가 건축가 오영욱(39)이다.
그가 건축학과 재학 시절부터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해 몸부림 쳤던 궤적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를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서 9월 4일부터 마련한다. ‘오 기사’는 잘 다니던 건설회사를 홀연히 그만두고 떠난 여행을 정리하는 에세이집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건설회사에 근무하면 호칭을 기사라고 하더라고요. 기사라는 직함을 가진 직종이 많지만 저만의 캐릭터로 삼고 싶다는 생각에 영문 ‘ogisa’를 등록하고 제가 쓰는 책자나 작품에 사용했습니다.”
▲오영욱 건축가의 공공프로젝트 모형이 설치된 진화랑 전시장. 사진 = 진화랑
‘오기사’는 최근까지 펴낸 책 7권에 등장한다. 건축학을 전공한 그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다니며 책을 낸 데 대해 그는 “모든 것이 건축에서 시작됐다. 건축을 잘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여정들”이라고 말했다.
“그림과 글 모두가 좋은 건축 하기 위한 시도들”
그는 건축을 “어느 사안에 대해 콘셉트를 잡고 설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답이 없다는 의미다. 자신의 생각으로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데, 자신은 말 주변이 없으니 글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소리다.
▲오영욱, ‘베란다와 캔틸레버’. 종이에 프린트, 36 x 45cm, 2010.
그런 오 건축가가 일러스트와 사진 그리고 공모전에 출품했던 건물 이미지를 들고 전시장에 등장했다. “건축을 하고 있는 이들, 여배우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저의 그동안의 모든 과정이 ‘건축을 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답사를 다니며 스케치하고, 몸에 체득한 뒤 저도 모르게 건축 도면으로 작품이 나오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전시라는 형태로 이 흔적들을 세상에 소개한다는 차원에서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전시장으로 선택된 진화랑 건물이 지어진 지 30년 넘은 오래된 건물이라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식어버린 커피와 오후 두시’. 종이에 펜, 29.7 x 21cm, 2007.
▲‘존재의 자각’. 종이에 펜, 29.7 x 21cm, 2011.
전시 타이틀은 ‘작은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다. 하지만 오 건축가는 ‘실패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숨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 사무실을 꾸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5억 원 이상 손해를 본 것 같다고 말한다. 허름한 카페를 만들거나, 기존 건물을 리노베이션 하는 일은 자신보다 잘 하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도 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현재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그는 신사동의 오피스 건물, 역삼동의 카페 건물 리모델링, 안성과 영주의 주택 등에 흔적을 남겼다. 그의 대표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중에는 내곡동 LH 보금자리 단지에 설치한 ‘그 많던 반딧불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작품이 있다. 작은 모형을 만들어 공모에 제출한 것이 당선돼 공공 설치 조각가들을 놀라게 했다.
“감동을 주는 공간으로 건축 목표를 달성하고파”
연세대 건축학과 재학 시절 그의 꿈은 ‘건축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 그런 공간이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건축은 건축가의 신념을 전개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건물주가 욕망을 발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좋은 건축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망상주의’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결승전’. 종이에 펜, 29.7 x 21cm, 2007.
그래서일까, 전시장 한편에는 건축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이 나란히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오 건축가는 “건축이 세상을 좋게 하려면 건축만 갖고는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사진과 유토피아라는 작품을 통해, 건축으로 만들 좋은 세상에는 정치가 해결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며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의미에서 서로 가장 미워하는 대상을 배치했다. 하지만 얼굴을 이루는 수많은 픽셀 이미지에는 상대방의 얼굴을 집어넣었다. 서로 좋은 것만 바라보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형 작품 ‘인생의 지도’는, 세상이 좋아지려면 개인의 책임과 함께 사회적인 책임이 따라야 하며, “나부터 우선 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를 지도라는 모티브로 풀어냈다.
▲오영욱, ‘인생의 지도’. 종이에 펜, 219 x 290cm, 2014.
오 건축가가 꿈꾸는 건축은 수많은 건물 중 0.1%에 해당하는 가치있는 건물이다.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다.
“한 가지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건물,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러한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도면을 그릴 수 있는 앞으로 20∼30년 동안 3개 정도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고 말했다.
오영욱은 “가볍고 재미나게 살고 싶습니다. 작업 과정 모두를 즐기고 싶은 생각이 큽니다. 글 쓰는 것도 심각해져서는 안 되고, 깊이감을 빼놓을 수는 없지만, 세상을 어퍼커트 한 방으로 KO시키기보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잽을 날리며 잔잔한 재미를 세상에 주고 싶다”고 미래의 목표를 말했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