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아티스트 - 박형진·박소영 2인전]가을에 바치는 생명의 서시
(CNB저널 = 글 김윤섭(미술평론가)) 가을은 어김없이 온 생명들이 결실을 맺는 풍요로움과 사색하기 좋은 마음의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가을의 분위기와 안성맞춤인 전시가 대구의 미르치과병원(대표원장 권태경)이 사회공헌 문화공간으로 운영하는 미르갤러리(대표 박현진)에서 10월말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 ‘생명을 위한 서시 - 박형진ㆍ박소영 2인전’에서 짐작되듯, 이 전시는 자연의 생명주의를 연상시킨다. 같은 주제지만 서로 다른 조형 언어로 풀어낸 생명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 흥미롭다.
우선 박형진 작가는 흔히 ‘새싹을 키우는 아이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이번 그림들은 마치 봄에 정성들여 키운 새싹나무가 어느새 가을이 되어 주렁주렁 열매를 맺은 듯하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탐스런 사과를 가슴에 한 가득 품은 아이부터, 트레이드마크인 강아지와 어린 새들이 함께 등장한다. 보면 볼수록 담백하고 소담한 미감이 넘친다. 복잡한 세상에 휩쓸려 지친 우리에게 마음의 쉼표를 건넨다.
▲박형진, ‘상당히 커다란 열매’, 캔버스에 아크릴, 72.7 x 60.8cm, 2014.
▲박형진, ‘상당히 커다란 잎사귀’, 캔버스에 아크릴, 72.7 x 53.4cm, 2014.
왜 봄이면 새싹이 돋고, 죽은 듯 잠들었던 생명들이 새로 태어나는지 정확한 시작과 연유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특별히 알 필요도 없다. 자연의 섭리에 시작과 끝을 논하며 토를 다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다. 다만, 그 자연스러움에 얼마나 동화돼 내 몸을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중요하다.
박형진의 그림은 ‘우리 인간도 자연이 낳아 스스로 길러주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작품 제목은 ‘상당히 커다란 잎사귀’ 혹은 ‘생각보다 커다란 열매’다. 주인공들이 화면 중앙의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게 한 배려를 보면, 이들이 작가의 마음을 얼마나 크게 차지하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박소영, ‘The Lamp Night’, 캔버스에 오일, 50.7 X 40.5cm, 2009.
박형진의 작품 속 크고 둥근 잎사귀나 붉은 열매는 마치 모든 생명의 호흡을 관장하는 ‘자연의 심장’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식물은 모든 생물의 허파 아닌가. 단순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화면의 색채 하모니, 강아지보다 작은 천진난만한 아이들, 가족이 된 어린 병아리와 새들, 뭉글뭉글 양들과 흰 구름의 어울림 등 박형진의 그림들은 아이나 어른에게 똑같이 동화처럼 다가온다. 봄이면 어김없이 새싹을 틔우고, 가을이면 또 한 아름 열매를 선사하는 자연의 숭고한 섭리를 소소한 일상의 모습으로 담아낸 점은 박형진 그림이 지닌 매력이자 힘이다.
▲박형진, ‘소녀와 양떼’, 캔버스에 아크릴, 53 x 45.5cm, 2014.
박소영 작가 역시 주요 모티브를 자연에서 찾는다. 일상적 자연풍광에서 상상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만든다. 얼핏 실재하는 풍경 같지만, 볼수록 은유적이고 다중적인 면이 보인다. 가령 의인화된 나무라든가, 낮밤이 혼재돼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램프’ 시리즈, 잘려진 나무의 연출 등은 자연주의 화풍이면서도 지극히 사유적인 개념과 깊이를 지녔다.
아마도 박소영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창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관객과의 소통, 개인적 삶의 자세와 사회적 통념, 현실과 이상계 등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의 나와 집밖의 나는 전혀 다른 의미로 존재하듯, 천정이 없는 자연의 집에 비유된 ‘박소영의 방’은 온갖 생각을 생산해내는 사유의 저장고인 셈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흔히 말하는 중간적인 입장이다. 어떤 이는 이쪽만을, 또 다른 이는 저쪽만을 바라본다. 나 또한 이쪽만을 바라볼 때도, 저쪽만을 바라볼 때도 있다. 그러다가 좋기도 하고 가슴아파하기도, 또 오해가 생겨 화를 내기도 한다. 우리는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일까?”라는 작가 노트는 박소영 작가의 관심사가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박형진, ‘너에게’, 캔버스에 아크릴, 53 X 65cm, 2015.
그것은 관점의 경계, 즉 관찰자로서의 심리적 시각을 의인화된 자연 풍경에 담은 것이다. 하늘 풍선에 이끌려 떠오르는 발목이나 밑동이 잘려 하늘로 부상하는 나무들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순수한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본 박형진 작가나, 관찰자 입장에서 자연물들을 의인화한 박소영 작가의 작품은 닮은 듯 다르다. 하지만, 서로 방식은 달라도 생명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뗄 수 없는 공통점이다.
(정리 = 왕진오 기자)
김윤섭 미술평론가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