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왕진오 기자) 내밀하면서 사회적인 공중목욕탕 속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관음과 프라이버시, 오리엔탈리즘을 둘러싼 여성성의 역사와 신화, 이데올로기를 표현한 작품들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마치 몰래카메라로 촬영된 탈의실의 모습을 보는 듯 은밀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펼치는 작품들은 스코틀랜드 출신 화가 캐롤라인 워커(33)가 9월 17일∼11월 12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스페이스K 서울에서 진행하는 '배스하우스(Bathhouse)'에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건축 공간과 정체성 이행, 회화라는 가상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서구 회화가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을 꾸준히 고찰했다.
감추기와 은폐, 감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를 주시하거나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를 기다리거나 화면 바깥의 관객을 바라보기도 한다.
주로 고급 주택이나 정원과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진 전작과 달리 이번 개인전에는 내밀하고 사회적인 공중목욕탕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목욕탕이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을 위한 공공시설이었다는 역설적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의 작품은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어떤 미지의 공간, 마치 영화 세트장이나 비현실적인 환상의 공간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번 작업에서 캐롤라인은 관음성과 여성의 전형에 대한 관심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이나 인어, 물의 요정 같은 신화적 존재를 포함해 물의 상징성을 여성과 연관지었다.
워커의 그림들은 목욕탕 문화의 개별적 역사성을 제거해 단순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주의를 역설적으로 환기시킨다.
강렬한 진홍색부터 진흙빛에 이르기까지 각 작품마다 독특한 색채와 드라마틱한 조명을 부여해 미묘함을 강화시킨 그의 작품은 마치 여러 장면을 잘라 붙여 도입부를 구성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처럼 혼란스럽고 불길함마저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