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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낭독이 보여준 배우 김혜자의 힘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 제작 발표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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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5.10.13 15:38:14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이 11월 개막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배우 임예원, 송용태, 신혜옥, 류동민, 김혜자가 출연한다.(사진=극단 로뎀)

마치 배우 김혜자의 찬양 자리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혜자에 질문이 쏠렸고, 배우와 스태프는 모두 그녀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런데 급작스레 마련된 5분여의 대본 낭독 시간은 이런 찬양을 증명했다.


10월 12일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화암홀에서는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작/연출을 맡은 하상길 극단 로뎀 대표가 “이 극의 소정이란 인물은 처음부터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쓴 인물이다. 말투의 리듬부터 모두 김혜자에 맞췄다”고 말문을 열었다.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은 극단 로뎀이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1991) ‘셜리 발렌타인’(2001)에 이어 14년 만에 김혜자와 함께 선보이는 작품이다. 할 줄 아는 게 축구밖에 없었던 서진이 부상을 입은 뒤 자신을 치료하던 소정과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를 낳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히 그린다. 김혜자가 맡은 소정은 불치병을 겪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바라보는 인물이다. 부상으로 축구를 못하게 된 남편에겐 꽃 사진작가의 길을 알려주고, 가난한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딸에겐 따뜻한 사랑 이야기와 위로를 건넨다.


하 대표는 “1969년 연극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에서 김혜자의 연기를 보고 팬이 된 이후 그녀의 모든 출연 연극을 봤다. 그리고 연극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고, 극단 대표가 된 뒤 1991년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를 김혜자에 제안했다”며 “처음엔 팬과 배우의 관계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김혜자라는 배우를 믿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혜자가 출연하기까지는 많은 고충이 있었다고. 처음 이 작품의 대본을 보여준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으로, 당시엔 퇴짜를 맞았다. 김혜자는 “(내가) 작품을 고르는 게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는데, 선택 기준은 작품이 주는 영향이다. 힘든 상황 속 실낱같은 빛과 희망을 볼 수 있는 작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며 “당시엔 이야기가 너무 미화돼 있어 현실에서 붕 떠 있는,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생각에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약 1년 동안 출연한 1인극 ‘오스카’를 마지막 연극 작품으로 하려 했다. 당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나이도 있으니 이제 (연극을) 그만 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며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다시 대본을 받았는데, 많이 바뀌었더라. 어제 몰랐던 점을 내일 알게 되는 과정, 공연 마지막 날까지 공부하게 되는 연극 무대의 매력 또한 알기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혜자를 출연시키기 위해 몇 년 동안 작품 수정 과정을 반복했다고 하 대표는 밝혔다. 좀 더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했고, 따뜻함을 전해줄 매체로 ‘고운 우리말’을 내세웠다. 하 대표는 “요즘 우리말이 점점 독해지고 강해져, 그 말을 사용하는 우리의 심성도 거칠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래서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해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바람을 불게 하고 싶었다”며 “한 마디로 공연을 표현하자면 ‘어른이 만들어가는 판타스틱한 동화’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 배우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중간엔 잠시 대본 낭독 시간이 이어졌다. 극 중 불치병으로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소정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편 서진의 대화를 김혜자와 송용태가 낭독했다. “단순히 이 자리에서 읽는 거라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표하던 김혜자는 순식간에 역할에 몰입했고, 상대 배우 송용태는 목소리를 떨며 눈시울까지 붉히는 모습을 보였다. 혼자 남을 남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그리고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과 불안감, 슬픔의 혼돈에 빠진 남편의 모습이 단순 낭독임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무대화돼 펼쳐졌다.


낭독을 마친 김혜자는 “어떤 일이든 한 번 하면 그것만 집중해서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연극 하는 동안은 사람도 안 만난다. 연습할 때 만나자고 하면 싫더라(웃음). 본 공연까지 20여 일 남았는데, 연습 후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소녀 같은 면모를 지닌 여자이자 엄마인,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게 과제”라며 “김혜자가 출연하는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63년 KBS 공채 탤런트 1기로 데뷔해 올해 연기 경력 52년차인 베테랑 배우가 털어놓는 부담감의 무게는 상당했다. 하지만 그만큼 배우 김혜자가 가진 힘도 컸다. 본 공연에서 그녀의 매력이 어떻게 빛을 발할지 주목된다.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은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화암홀에서 11월 4일~12월 20일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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