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세계뮤지엄 ⑥ 교토문화박물관] 1200년 문화수도 자존심을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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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일본 관서 지방의 중심 도시인 교토(京都) 시내 중심지에 있는 교토문화박물관(京都文化博物館, The Museum of Kyoto)은 교토 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간직하고 보여주는 곳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교토는 일본의 고도(古都)로서 8세기 말경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17세기 초 도쿄(東京)가 수도가 된 에도(江戶) 시대 전까지 약 800년가량(794~1603) 수도였으므로, 고대부터 근대까지 일본 역사와 문화의 핵심부였다고 할 수 있다.
도쿄가 에도 시대(1603~1868년)부터 지금까지 400년간 수도였던 것에 비해, 교토는 그 두 배 기간 동안 일본 역사와 문화에서 최고의 위상을 지녔던 곳이다. 그런 만큼 오늘날도 일본에서 강한 문화적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교토에는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일본의 문화예술에 관한 많은 소장품들을 보여주는 대규모 박물관인 국립박물관(Kyoto National Museum)이 있다. 교토문화박물관은 이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수도였던 800년과 그 후 400여 년을 포함해 1200년간 교토 시를 중심으로 하는 교토부(京都府)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박물관을 많이 관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는 대규모 박물관보다 오히려 작은 박물관에서 전시 주제와 전시물들에 더 집중하고 찬찬히 생각하며 볼 수 있다. 두세 시간만에 관람을 마칠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화려한 벽돌 건물은 과거 일본은행 건물
교토문화박물관의 위치는 찾기 쉽다. 전철로 가자면 대개 인근의 오사카나 고베에서 오는 전철의 종착역인 가와라마치(河原町)역에서 한 정거장 전인 가라스마(鳥丸)역에 내려 8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좀 덜 걷고 싶다면, 여기서 전철을 타고 북쪽으로 한 정거장 더 가서 가라스마오이스케(鳥丸御池)역에서 내려 5분만 걸으면 된다. 대로에서 주택가-상가 밀집 골목으로 접어들어 조금 더 걸어가면 갑자기 붉은 벽돌의 멋진 근대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여기가 교토문화박물관의 입구다.
▲교토문화박물관(별관)의 정문. 1906년 준공된 건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이 붉은 벽돌 건물(1906년 준공)은 전에는 일본은행의 교토지점 건물이었다고 한다. 호기심에 가득차 들어가보니 이 옛건물(별관)은 그다지 크지 않아 전시 기능은 없다. 내부 공간을 텅 비워놓고 멋지게 장식된 벽과 천정-나무 바닥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건물 자체가 구경거리인 셈이다. 가끔 여기서 특별전시와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박물관의 전시 공간은 이 건물 뒤에 있는 현대식 건물(본관)이다.
본관은 6층인데, 1층에는 매표소와 기념품점 등이 있고, 2~6층에 전시실이 있다. 이 중에서 2-3층이 테마 전시실(영화 상영 극장 포함)로 운영되고, 4층은 특별 전시실, 5-6층은 박물관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교토 시만을 위한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 작은 규모가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의 큰 박물관들이 대개 그렇듯, 한국어로 된 안내책자가 여기도 있어 간단한 정보를 읽고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전시 관람은 2층 테마 전시실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이 편하다. 오래된 역사부터 현대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먼저 2층 전시실의 에마키(繪卷: 두루마리 그림) 화랑에서는 1200년 교토의 긴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해 보여준다. 각 시대는 헤이안(平安), 가마쿠라(鎌倉), 무로마치(室町), 에도(江戶) 시대로 나뉘어져, 시대마다 그려진 교토 지도를 보여준다. 이런 그림 지도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문화의 단면이 포함돼 있다. 당시의 수묵화 방식으로 그려진 오래된 그림은 단색이고 탈색된 부분도 있지만 아주 옛날 교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껏 멋을 낸 교토문화박물관 별관의 내부. 건물 자체를 전시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 = 위키피디아
‘도시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그림들은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발전되고 확대돼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도시의 중심 부분을 위주로 궁과 사찰, 주민들의 가옥, 산과 강ㆍ다리 등이 간략하게 표현돼 주변의 풍광을 상상하게 해준다. 당시 사람들의 놀이문화 모습이 들어있는 그림도 있다. 과거의 경주나 부여ㆍ평양ㆍ개성의 모습과 풍속을 그린 비슷한 그림 지도가 한국에 있는지 모르겠다.
19세기 교토 거리를 재현시켜 놓은 식당
그 다음 전시실에는 각 시대별로 교토의 문화재들과 축제 행사들에 관한 자료가 있다. 그리고 테마 전시실이 이어지는 3층에는 교토의 미술 작품과 공예품들이 전시돼 있다. 일본 최고의 문화 도시였던 교토에는 회화와 목판화뿐 아니라, 목공ㆍ칠공예ㆍ수예 등 수공업적 예술과 음식 문화가 발달했었다. 지금도 이런 종류는 교토가 중심지라고 한다. 3층에는 영화 상영실도 있어 교토를 근거로 만들어진 영화들, 즉 교토가 무대이거나 교토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극영화들을 상영하고, 역사 다큐 영화도 돌아간다.
4층 특별 전시실은 교토에 관련된 역사 자료와 미술ㆍ공예 작품들을 전시한다. 현재는 교토 출신의 현대화가 오가와 센요(小川千甕, 1882-1971)의 회화 전시가 12월 8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교토의 옛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꽃구경 병풍도’(모모야마 시대, 1573~1615년).
마지막으로 5층과 6층에는 박물관이 운영하는 갤러리가 있다. 여기는 외부에 공간을 대여해줄 수 있는 공간으로 현재는 전시가 없다. 1층으로 내려가 기념품점에서 옛 그림 몇 점을 구입하고, 식당으로 가보았다. 식당 주변은 재미있게도 19세기 교토 거리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의 쌀가게와 술 가게, 숯 가게, 전통공예품점 등이 있고, 식당에서는 이들이 자랑하는 ‘교토 요리’가 있다. 우리도 잘 아는 양갱과 모찌(찹쌀떡), 알록달록 화려한 화과들이 교토의 전통문화였음을 이제 알게 됐다.
1층 로비 벽에는 이곳에서 내년 2월 근세 교토에 관한 고고학 학술대회가 열린다는 공고도 있다.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교토문화박물관은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박물관임에 틀림없다. 웹사이트는 www.bunpaku.or.jp.
(정리 = 최영태 기자)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