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윤하나 기자) 추위가 한창인 올해의 첫 달에는 새로 열리는 대형 전시가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많은 갤러리들이 작년 공모를 통해 선발한 신진 작가들의 기획 전시를 선보인다. 1월 셋째 주만 해도 서울에선 총 10여 군데 전시장이 공모를 통한 작가 전시를 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공모전이 열리고 선정 뒤 전시까지 비슷한 시기에 걸쳐 진행되는 독특한 풍경을 담아본다.
매년 신진 작가 발굴을 도모하기 위해 미술관, 각종 협회 및 갤러리 곳곳이 주최하는 공모전이 진행된다. 이들 공모전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 미술의 역사와 함께 했다. 작가들은 공모를 통해 미술계에 진입했거나, 재야 작가의 경우도 공모의 운영·심사위원으로라도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관, 협회 혹은 기업이 주최하는 대형 공모는 2000년대 들어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갤러리 및 미술관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그 열기는 식지 않았다. 많은 갤러리가 앞 다퉈 신진 작가 찾기에 노력하는 한편, 작가들은 작품 소개 기회를 잡고자 공모에 대거 응모하고 있다. 공모전 수만큼 기회가 늘었다면, 질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신진 작가 위한 인큐베이터의 요모조모
사회 전반에서 청년 취업난과 고용불안이 이슈다. 젊은 미술 작가들은 일반 취준생(취업준비생)보다 더 추운 미술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젊음을 저당 잡힌다. 대부분은 미대 졸업 이후 막막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신인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을 내보일 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모전은 이런 현실에 처한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 되어준다. 다수의 갤러리 공모전이 개인전 경험이 없는 작가들로 지원 자격을 한정짓는 이유다. 공모전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부상은 대부분 1회 개인전이 기본이다. 홍보와 인쇄물 비용을 부담해주는 갤러리도 있다. 서울의 크지 않은 갤러리 한 곳을 1주일간 대관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무료로 해당 갤러리의 전시 공간을 빌릴 수 있다는 건 메리트가 된다. 그 외에 선정 작가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무엇이 있을까.
▲갤러리 정미소의 조해나 작품 전시. 사진 = 갤러리 정미소
작년 공모전에서 선정한 작가의 전시를 1월 셋째 주에 진행하는 갤러리 및 미술관(금호미술관, 갤러리 도스, 갤러리 엘르, 갤러리 정미소, 독일문화원,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7곳과 막 공모를 통해 최종 작가를 선발한 신한갤러리, 워크숍을 열며 큐레이터 공모를 시작한 두산 갤러리 총 9곳에 공모전 전반을 물었다. 대부분 신진 작가(혹은 큐레이터) 발굴을 목표로 30대 중후반의 나이 제한이나 개인전 경험의 유무를 자격요건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1회의 기획 전시(개인전 혹은 단체전) 기회와 홍보 지원만을 지원한다. 이 외에 개별적으로 차이가 있는 답변들을 모아봤다.
다음은 “기존의 공모전과 다른 차별점은?”을 각 공모전 진행 갤러리에 묻고, 다른 점을 찾아 골라낸 결과다.
갤러리 정미소 “매해 기획을 달리한다. 신인 작가로 한정하거나, 주제로 선정하기도 한다. 올해 진행하는 지원전은 M.A.P(Media Art Platform)과 공동으로 기획해, 영상작가로 한정했다. 영상물의 경우 장비대여 비용을 제공한다.”
신한 갤러리 “기업의 사회공헌부가 메세나 사업의 일환으로 공모전을 운영한다. 월간지 지면 광고, 도록 디자인 및 제작, 작품 운송 및 설치, 오픈식 날 케이터링 등을 지원해준다.”
두산 갤러리 “매회 큐레이터 3명을 선정해 1년 동안 전문가들과 현대미술의 이론과 현장에 관한 강의, 워크숍, 세미나를 진행한다. 워크숍 종료 뒤 참가 큐레이터 3인이 공동 전시 기획을 진행해 연구 결과를 실현할 기회를 갖는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PT n Critic’은 공개모집(공모)이 아니라 기성 작가들의 추천 또는 기획자의 선발을 통해 진행한다. 이유는 포트폴리오만으로 작가와 작품을 판단하기보다 작가의 평소 작업태도를 보기 위해서다. 프로그램 참여 작가는 추천인, 지정 작가들과 함께 사전 크리틱을 1~2회 비공개로 가진 후 공개적인 PT n Critic 행사를 갖는다. 참여 패널은 대부분 작가다. 공개 PT n Critic은 녹취로 남겨진 후 도록에 수록된다.”
갤러리 도스 “매년 2회에 걸쳐 공모전을 진행한다. 신인 작가뿐 아니라 개인 사정으로 경력이 단절된 작가 등도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문화원 “공모를 통한 선발이 아니다, 일반적인 화이트큐브 전시 공간이 아니라 독일문화원의 건축적 특징인 ‘트러프’를 활용하고자 트러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큐레이터의 추천으로 선정된 작가들이 공간 특성에 맞춘 전시를 진행한다.”
▲두산갤러리 큐레이터 워크숍 기획전에 참가한 윤지영 작가의 작품. 사진 = 두산갤러리
▲주한독일문화원에 전시된 송민철의 작품. 사진 = 주한독일문화원
이런 차이가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공모전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작가를 선발하는 심사위원은 대부분 비공개다. 1회의 선정으로 3~6명의 작가를 선발하고 기간을 나눠 개인전을 열어주는 게 보통이다. 한편 많은 전문가들은 “공모전을 통한 소개 이후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모라는 경쟁을 통한 심사로 변별력을 인정받은 만큼 다음 행보에 더 주목하게 된다는 뜻이다.
▲갤러리 엘르는 김나래 작품을 전시했다. 사진 = 갤러리 엘르
공모전의 양적 팽창으로 작가들의 전시 기회는 늘었지만, 문제는 일회성에 그치는 작가 지원이 얼마나 인큐베이터 노릇을 할 수 있느냐이다. 각 갤러리가 자신만의 특수성을 선정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결국 대부분 비슷한 눈높이와 시대 경향 탓에 참신한 작가를 선발한다는 기준과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문제는 공모 주최측과 지원 작가 모두에게 적용된다. 현재 한국 현대미술시장에 유행하는 소재나 재료에 얽매여 유행을 타는 작업이 해마다 공통적으로 다수 나타난다고 한 갤러리스트는 지적했다. 변별력을 갖추려면 보다 확실한 기준과 주최 갤러리의 개성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작가가 되는 등용문? 아니면 그냥 취업 스펙?
또한 작가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공모전에 지원하면서, 신인 작가들이 사회 진출에만 너무 급급해 하는 것은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중복으로 선정되는 작가가 많아지는 경향도 문제다. 공모전이 지금보다 더 형식화되면, 작가에게 창작 기회를 부여한다기보다는 스펙 쌓기 과정의 하나로만 치부될 수 있기에 경시할 수 없는 지적이다.
▲갤러리도스가 선발한 신승주의 작품. 사진 = 갤러리도스
그렇다면 앞으로 공모전이 나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최근 공모전에 선정돼 전시를 연 한 작가를 만났다. 그는 “공모전이나 레지던시 등의 기회가 없었다면 작가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비록 넉넉하지 않은 지원(작품 제작비 및 기타 경비)뿐이었지만 작업을 지속하는 동기가 부여됐다”고 말했다. 미술 시장에서 작품이 잘 팔리는 소수의 작가를 제외한 모두에게 공모전 및 기타 지원 프로그램이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되는 사정을 엿볼 수 있다.
공모전은 분명 큰 장점을 가진 제도로 이미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하지만 재원을 더 늘려, 설치나 비디오 등의 작업의 작가에게도 지불 비용의 증가를 커버해줘야 할 때다. 공모에 참가하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공모전의 숫자도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보다 넓은 시각에서 다양한 작가를 소개한다는 의무감을 공모전들이 가질만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