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아트 상품] ‘미술 들어간 물건’ 소비하는 아티젠의 출현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요즘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작품의 이미지를 활용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아트 샵(art shop)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날은 전시장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며 다양한 아트 상품들에 감탄하기도 한다. 또한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도 유명 미술가의 작품 이미지가 활용된 다양한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예술과 소비 상품의 결합은 단어 그대로 일상의 삶 속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협업을 의미하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중에서 아트 컬래버레이션은 예술 작품이 갖고 있는 독창성과 미적 아우라를 토대로 차별화되는 특별한 상품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앤디 워홀(Andy Warhol), 키스 헤링(Keith Haring) 등은 오래 전부터 아트 컬래버레이션에서 단골로 볼 수 있었던 미술가들이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예술과 상품 사이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제일 큰 원인으로 장르 간 경계 해체와 융합, 퓨전(fusion)의 일반화,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이라는 위계적 가치의 약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예술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동시대의 태도도 이러한 변화에 일조했다. 권위 있는 대형 미술관에서 적극적으로 아트 상품을 개발하고, 디자인 관련 전시를 기획하는 것도 이러한 인식 변화의 증거이다.
작가가 주도하는 아트상품 컬래버레이션
대부분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은 작품의 이미지를 재가공하여 활용하거나, 미술가가 아트 디렉터가 되어 제품 개발, 생산, 판매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특히 작가가 독립적으로 아트 상품을 제작, 판매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미술가로 다카시 무라카미 (Takashi Murakami)를 들 수 있다. 무라카미의 카이카이키키(Kaikaikiki) 주식회사는 적극적으로 다양한 아트 상품을 개발, 제작하고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서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Takashi in Superflat Wonderland)’(2013) 전시가 열리는 동안 무라카미의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된 다양한 쿠션과 인형, 서류 파일, 엽서, 배지(badge) 등이 판매되었다.
▲‘롯데 아토마우스 이동기 아트 초콜릿’(2016). 사진 제공 = 롯데백화점
우리나라 작가로는 육심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채색화 양식으로 새침하면서도 정감가는 여성들을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육심원은 문구류에서부터 화장품, 의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아트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주식회사 육심원 디자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독립된 매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백화점에도 입점해 있다. 또한 2009년에는 육심원 빌딩을 세워 갤러리와 아트샵,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6년 현재 갤러리와 호텔, 카페 등이 들어가는 복합문화 공간 건축을 준비 중에 있다.
앞선 칼럼에서 스타 미술가로 언급했던 나얼 역시 자신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아트 상품들을 꾸준히 제작해왔다. 지난 2015년 열린 개인전 ‘COLLAGEARL - 나얼의 방’ 당시 나얼은 전시 도록, 포스터, 엽서 등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전시가 끝나기 전에 동이 날 정도로 인기였다.
조금 더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것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오늘날의 대중에게 예술 작품과 결합된 상품은 남다른 만족감을 주게 된다. 그것이 대량생산된 것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이미지가 들어가거나 미술가의 손길이 닿는 순간 특별한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구매하는 상품이 가진 객관적 기능성뿐 아니라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독창성과 예술성을 중요시하는 아티젠(Arty Generation)의 등장도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건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행위도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처럼 주관적이고 감성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기업이 주도하는 아트상품 컬래버레이션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또 다른 형태는 기업의 주도 아래 미술가와 협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무한 경쟁시대에 대처하는 기업의 차별화 전략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오늘날의 소비문화 속에서 주목받고 장기간 지속가능한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아트 컬래버레이션에서 성공적인 사례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2003년 진행된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무라카미의 협업이다. 고전적이고 중후한 느낌의 루이비통은 무라카미 작품 이미지와의 결합으로 경쾌하고 젊은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으며 더 넓은 소비자 계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루이비통은 이후 꾸준히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고, 2012년에는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와 함께 했다. 사실 쿠사마는 이미 2008년 페라가모(Ferragamo), 2010년 랑콤(Lancôme), 2012년 와콜(Wacoal) 등과도 협업을 진행했다.
잔혹한 이미지의 작품으로 유명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도 예상과 달리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다수 진행했다. 그 중 리바이스 (Levi’s)의 한정판 티셔츠와 데님,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스카프는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나탈리 레테, ‘시의 시간(L’heure de poésie)’, 종이에 아크릴릭, 43 x 32cm, (2014). 사진 제공 = 롯데백화점
한국 미술가의 경우에는 이동기가 대표적이다. 문화적 혼종성의 시대를 대변하기 위해 ‘미키 마우스(Mickey Mouse)’와 ‘철완 아톰(Mighty Atom)’을 결합시켜 만든 아이콘인 아토마우스(Atomaus)는 오즈세컨(O’2nd), 모리(Maury) 와인, 하이트(Hite) 맥주, 헤라(Hera) 등의 한정판 상품으로 대중들과 만났다. 2016년에는 롯데백화점과의 협업을 통해 아트 초콜릿을 선보였다. 이동기의 아트 초콜릿은 수차례의 캐스팅과 수작업으로 제작되어 조각 작품과도 유사한 가치를 갖는다. 한편 롯데백화점은 올 봄,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대표 미술가인 나탈리 레테(Nathalie Lété)의 개인전을 진행하여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전시에는 레테의 작품뿐 아니라 컬래버레이션 제품도 다수 전시되었다.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단순히 예술의 상업화, 고가의 제품을 통한 이윤 창출, 기업의 이미지 쇄신 같은 논리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은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며, 예술은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는 레테의 인터뷰는 미술가들이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것은 일상에서도 미술을 경험하고 차별화된 예술적 만족과 감동을 얻고자 하는 대중들의 요구에 부흥하는 것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예술의 영역을 넓혀가기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