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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 '겁나 진지하고 가벼운' 인터넷세상 이야기들

댓글 문화-신격화-해킹 등 다루는 전시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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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5호 김금영 기자⁄ 2016.05.27 11:08:41

▲연극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 무대. 객석 곳곳에 컴퓨터가 설치돼 자신의 방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는 듯한 구성을 취했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참 빠르고 말 많은 세상


00월 00일 오전 9시. “A랑 B랑 사귄대.” 인터넷이 쑥덕거리기 시작한다. 몇 분 사이 A와 B의 과거 행적 및 커플 아이템으로 의심되는 물건까지 들쑤셔진다. 오전 9시 10분. 빠른 해명 기사가 떴다. “아니라네.” 하지만 그 몇 분 사이 A와 B는 인터넷 익명공간에서 결혼을 앞둔 사이로까지 발전돼 있다. 사실을 말해도, A와 B의 결혼은 이미 인터넷이 기정사실로 정해줬다. 그리고 이런 억지 스토리는 가십거리로서 SNS 및 커뮤니티 사이트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고, 진실로 여겨진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아닌,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시간의 의미와 속도가 달라지면서 일분일초의 의미는 과거와 같지 않다. 생생했던 뉴스가 5분 만에 벌써 식상한 주제로 전락해 버린다.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글씨를 쓰며 문서를 작성할 때와 달리, 지금은 키보드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으로 순식간에 글씨가 완성되고, 거의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전파된다. 앉은 자리에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세계 저 멀리 구석구석의 사진과 뉴스를 검색할 수 있다. 아마 슈퍼맨의 비행 속도보다 검색 속도가 더 빠를 것 같다. 댓글 등을 통해 여론이 생성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정보를 빠르게 검색하고 찾을 수 있는 현 시대의 삶의 질은 높아지고 편리해지기도 했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현대인은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고, 폭력적인 댓글 문화, 정보 왜곡, 해킹까지 등장했다. 정보가 넘쳐나지만, 그렇다보니 오히려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 정보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현상도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이 전시 및 공연을 파고들고 있다.


PART 1. 해커그룹 어나니머스와 룰즈섹의 실화
연극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


▲연극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는 2003년 결성된 해커 그룹 어나니머스와 룰즈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킹 이야기에 접근한다.(사진=두산아트센터)

공연장에 들어서면 다른 공연과는 다른 무대 구성이 우선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객석이 일렬로 나란히 배치돼 무대를 바라보지만, 여기서는 객석 중간 중간에 컴퓨터와 책상이 설치됐다. 그곳이 배우들이 앉는 자리다. 공연장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방 안에서 인터넷을 하면서 모니터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무대 구성이다.


연극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는 2003년 결성된 해커 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 익명을 뜻하며, 컴퓨터 해킹을 정치적·사회적 투쟁수단으로 사용하는 '핵티비스트'들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룰즈섹(LulzSec: 웃음을 뜻하는 온라인 용어 LOL과 보안-security의 합성어로 보안을 비웃는다는 뜻. 2011년 소니를 공격하며 이름을 알린 해커 그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킹 이야기에 접근하는 작품이다. 어나니머스의 행적을 따라가며 게시판, 채팅방, 해킹,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공연 제목은 무언가 투쟁 의식이 넘쳐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인터넷에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역설의 의미를 지녔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X나 심각한 인터넷’ 정도. 어나니머스와 룰즈섹의 탄생 및 붕괴 과정도 그렇다. ‘컴퓨터 해킹을 정치적·사회적 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핵티비스트(Hacktivist)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현 시대에 꾸준히 논의되는 이야기다. 익명성 뒤에서 활동하는 그들이 신격화 된 부분도 있다. 그런데 공연은 ‘심각한 투쟁’이 아닌 그저 가상세계에서 가벼운 ‘재미’로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런던에 사는 모범생 무스타파(16세)와 스코틀랜드 외곽에 사는 은둔형 외톨이 제이크(18세)는 포챈(4chan,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 해킹을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교 홈페이지를 뒤지던 중 정보를 찾기 어렵다고 느끼고 처음으로 해킹의 세계를 맛본다. 그렇게 대화가 맞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 사이트는 점차 해킹 범위를 확대하기 시작한다. 사이언톨로지교부터 FOX, 미군 방위업체에 대해서까지 점점 대범해진다. 해킹을 통해 수없이 많은 개인정보를 빼내 공개하기도 한다.


그들의 규칙: ‘진지 떠는 건 절대로 노(No)’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들이지만, 인터넷에선 익명성 뒤에 정체를 숨기고 전혀 다른 성격의 해커로 활동한다.(사진=두산아트센터)

외적으로만 보면 정보를 검열 및 삭제하고 감시하는 정부의 감시망에 반발해 고귀한 혁명을 시작한 것 같다. 어나니머스는 해킹으로 얻은 수많은 정보들을 "돈줄테니 넘겨라"는 수많은 유혹 속에서도 모든 걸 무료로 공개했다. 그런데 모니터 뒤에서 이들은 그저 재미를 맛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념, 가치관 등과 상관없이 보고 싶은 정보를 못 보게 하기에 열 받았을 뿐이다. 이들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하는 규칙이 있다. 그들이 정한 31개 규칙에서 스무 번째는, ‘진지 빠는 건 절대로 노(No)’. "진지 빨다"는 진지함을 비웃는 요즘 인터넷 속어다. 


해킹을 당해 당황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의 해킹 업적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들은 우월감과 재미를 맛본다. 실상 그들의 해킹은 통쾌하다. 목에 힘을 주고 잘못을 감추려 하던 정부 기관들이 그들의 해킹에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힘에 눌려 정의를 구현하기 힘든 세상에 진정한 영웅이 등장한 것도 같다. 마음속으로 이들이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게도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재미’가 아닌 ‘권력’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 사태가 새로운 권력 구조로 급변할 수 있음을 제시하며 극은 긴장감을 유지한다. 극 중 어나니머스의 한 구성원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따라 동료들에게 등을 돌리고 그간 해온 해킹으로 선동을 이끄는 장면은 실로 섬뜩하다.


그리고 익명성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사회 속의 조용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은 앞에 컴퓨터가 놓이는 순간 가면을 쓰고 돌변한다. 극에서도 실재의 인간은 평범한 모습이지만, 모니터 앞에 앉는 순간 과장된 가면 또는 슈퍼맨 같은 영웅 의상을 그들은 걸쳐 입는다. 그런데 끝까지 정의의 사도도 아니다. 가면이 벗겨지고 자신의 정체가 공개되는 순간, 이들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현실과의 타협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인터넷에서 센 소리를 내는 순간은 정체를 드러낸 떳떳한 상황이 아니라 익명성 뒤에 숨었을 때뿐이다.


이런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하다. 기사 하나가 올라오면 불과 몇 분 안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린다. 그런데 작성자의 정체는 알 수가 없다. 실재의 정체를 추적할 수 없는 ID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수위를 넘는 폭력적인 글을 마구 쏟아낸다. 극 중 어나니머스 그룹엔 청소년부터 아이가 달린 부모 등 다양한 인물이 속해 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 모여 전 세계를 뒤흔든다. 어나니머스 그룹의 그들 역시 가상공간에서는 친밀하지만 실재의 정체는 서로 모른다. 서로를 믿기 힘든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셈이다.


권력 구조의 전복이 가능한 인터넷 세계


▲인터넷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 중 특히 '컴퓨터 해킹을 정치적·사회적 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핵티비스트(Hacktivist)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공연.(사진=두산아트센터)

건전한 비판 및 의견 교류가 댓글의 본래 목적이었겠지만, 인터넷의 익명성은 폭력적인 댓글 문화를 낳았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게 아니기에 심각히 고민할 것 없이 바로 키보드 두들기기로 말을 던진다. 댓글 문화 초기엔 묵묵히 참던 연예인도 이제 정식 고소 등의 방법으로 대응한다. 종이 지면을 통해 기사를 접하고 쑥덕거릴 때와는 차원이 달라진, 새로운 사회 현상이다. 그리고 해킹을 통해 개인정보가 누출되고 사기를 당하기까지, 인터넷이 가져온 현상은 어마어마하고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극은 이들의 행위와 현상이 ‘잘못됐다’ 또는 ‘잘했다’고 명확히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저 인터넷이 발전하고 새롭게 등장하게 된 여러 현상을 찬찬히 보여주고, 극이 끝난 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익명성 뒤에 숨은 네티즌부터 해킹까지, 모두 사회적 약자의 울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말을 하는 것조차 제대로 용납되지 않는 처절한 현실에서다. 하지만 가상세계 속에서는 정해진 권력 구조가 없다. 주일우 문학과 지성사 대표는 소개글을 통해 “현실의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힘으로 대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골방의 해커 한 명이 거대한 시스템을 쓰러뜨리고 천지개벽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 현상에는 그림자도 분명히 있다. 주 대표는 “창과 방패의 전쟁은 계속되겠지만 이런 공방 속에서 특수한 재능이나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소외되는 결과도 생긴다. 막는 쪽이든 뚫는 쪽이든 자유로운 사람들은 극소수로 줄어들고, 오히려 대다수 사람들은 가상공간의 말단에 연결된 채 감시받는 상황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고한 시스템과 해커들의 싸움은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지만 밖의 사람들은 구경꾼일 따름이다. 벌떼처럼 모인 구경꾼은 선동에 취약하고 모래알처럼 제 각각이기 십상이다.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들은 가상공간의 장벽과 규제가 낸 길 사이를 지나면서 모든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다. 전복의 가능성 때문에 더 제약이 커져버린 셈”이라고 짚었다. 또 “이제 무언가를 지키려면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고립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무엇을 원해서든, 네트워크의 끝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답답한 것은 이제 가상공간에서도 정해진 길, 정해진 움직임을 벗어날 방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세상 참 빡빡하다”고 덧붙였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는 자유로웠는데, 어디서나 노예가 돼 있다”고 말했다. 자유를 갈망하던 인간은 현 시대에 인터넷의 노예로서 충실히 노예의 길을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연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6월 24일까지.


PART 2. 한없이 가벼워진 정보의 무게
사비나미술관 ‘60초 아트’전


▲빠르게 돌아가는 지구본 앞에 스마트폰이 설치됐다. 손경환 작가의 '1.3초의 영역에 대한 오러리 모델'은 현대의 정보통신에서 실시간이라고 느끼는 짧은 시간을 표현한다.(사진=김금영 기자)

‘60초 아트’전. 전시명부터 회전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사비나미술관이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준비한 이번 전시는 시 단위에서 분 단위로, 그리고 마침내 초 단위로 하루를 계획하고 움직이는 시대를 반영한다. 초마다 인터넷에서 새로운 정보가 무한대로 생산되기에, 대중은 끊임없이 새로운 볼거리를 원한다. 생성이 빠른 만큼 소비의 무게 또한 가벼워졌다. 예술도 이런 사회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전시는 ‘스낵컬처(snack culture: 짧은 시간 동안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트렌드)’의 등장에 주목한다.


시각예술 8팀(강상우, 김가람, 방앤리, 손경환, 심래정, 이예승, 인세인박, 크로스디자인랩)이 참여하고, 영화 38편(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수상작 14편, SNS 3분 국제영화제 수상작 16편, 베니스70: 미래 재장전 참여감독 8인의 출품작), 애니메이션 80편(10초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출품작 80편), 웹툰-SNS시(웽-웹툰, 최대호-SNS시, 더 도슨트-온라인영상플랫폼) 등이 전시된다.


▲전시장 입구 벽쪽에 최대호의 시가 적혀 있다. 인터넷과 SNS에서 특히 인기를 끈 시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 입구 쪽에는 귀여운 웽 웹툰, 그리고 최대호의 시가 자리를 지킨다. 손으로 책을 넘겨보는 건 어느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인터넷으로 보는 짤막한 웹툰이 대세다. 시 또한 무게가 가벼워졌다. 철학적인 문구보다, 일상 속 소소한 상황과 감정을 공감하게 하는 짧고 경쾌한 시가 더 사랑받는다. 수많은 정보로 머리가 아픈 현대인의 심리를 반영한 걸까. 이밖에 기존 영화제들과 달리 SNS에 특화된 영화제 ‘SNS 3분 영화제’,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 디지털의 발전과 빨라진 시간의 흐름 속에 등장한 새로운 예술 경향을 짚는다.


이 중 특히 지하 1층에 전시된 김가람과 인세인박의 작업이 눈길을 끈다. 두 작업 모두 방대한 정보를 지닌 인터넷, 그리고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들과 관련된 작업을 보여준다. 김가람은 댓글 문화, 인세인박은 정보 왜곡의 과정에 집중했다. 점점 짧고 압축된 콘텐츠를 요구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원하는 사회를 꼬집는다.


김가람의 공간은 처음엔 암흑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내 벽에 전시된 다양한 포스터 중 하나로 조명이 집중된다. 꼭 간담회에서 질문 세례를 받는 주인공의 모습 같다. 그리고 벽에는 헤드폰이 걸려 있다. 이 헤드폰을 끼면 기계음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더 무서운 건 계속 발전한다는 거” “정치도 인공지능이 하자” “1등 아니면 X 된다” “공부하지 마라, 어차피 기계가 다 해줄 거다” 등. 길지 않고 짤막한 문장들이다. 이 모두는 김가람의 수많은 인터넷 댓글 중 골라 뽑은 것을 사이버 걸그룹이 읽어주는 형태다. 일명 ‘사운드 프로젝트’다. 매달 음원을 발매하는 식으로 올해까지 3년차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 뒤 날것의 댓글 모아 음원 발매


▲김가람의 '사운드 프로젝트'.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댓글을 모은 작업이다.(사진=김금영 기자)

김가람은 “실제로 음원 유통사와 계약해 매달 유통사에 음원을 발매하고 있다. 월간 음원 프로젝트로, 전시 기간 중에는 홈페이지(www.garakim.com)에서도 들을 수 있게 공개한다. 현재까지 총 25개를 발매했다. 지난해에는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각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가수가 주요 콘셉트를 내세우듯이 김가람도 앨범의 주요 이슈를 정한다. 앨범을 발매하는 달 가장 이슈가 되는 사건을 하나 정하고, 관련된 기사와 댓글을 수집한다. 그리고 그 이슈를 상징하는 함축적인 용어를 앨범의 제목으로 정한다. “이 앨범은 이 이슈에 대해 다룬다”는 소개 멘트로 시작되지는 않지만, 들리는 댓글을 통해 어떤 이슈임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한 예로 ‘피노키오’는 총선 전날 발매했다. 무분별한 공약이 판치는 세태에 관한 솔직한 댓글이 귀를 파고든다.


가장 최근에 발매한 앨범 ‘포이즌’은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서울대 보고서에 연관된 의견들을 모았다. “역시 서울대 교수는 뭘하든 최고군요” “즐즐즐” “저딴 게 교수라네” “배운 놈들이 더 무섭다” “교수가 아니라 괴수” 등. 자극적인 멘트가 헤드폰으로 줄줄 흘러나온다. 각 앨범은 약 1분~1분 30초 정도의 길이다. 너무 길면 지루하게 느끼니까.


▲'사운드 프로젝트'로 댓글 문화에 관한 토론을 제시하는 김가람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김가람은 “한국의 인터넷 댓글 문화는 독특하게 발달했다. 외국의 뉴스 사이트에선 실명을 공개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ID를 사용해 익명성을 보장한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날것의 반응들을 수집할 수 있다. 댓글이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도 한다”며 “댓글 선정은 호감순으로 했다. 그리고 길어도 2분을 넘지 않게 제작했다. 요즘 대부분의 사이트가 ‘미리 듣기’를 제공한다. 앞부분 조금만 듣고 내용을 다 짐작하고, 판단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댓글을 모은 이 작업에도 여러 댓글이 달렸다. 김가람은 “속 시원하다는 반응도 있었고, 뭐 하는 거냐는 악플도 있다. 댓글이 또 댓글을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 작업은 대중이 전시에 직접 참여하며, 현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댓글 문화가 이렇게 가야 한다’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는 토론의 장으로 만들고 싶어 시작했다”고 작업 의도를 밝혔다.


인세인박의 작업 ‘예수처럼 죽다’ ‘학습된 옐로우(Yellow)’의 색깔은 화사하다. 하지만 그 무게는 가볍지 않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의 이야기를 다룬다. 충격적인 사건의 주인공 조승희는 처음엔 범죄자로 불렸다. 그런데 인터넷 상에서 이야기가 부풀려지고, 정보가 확산되고 변질되면서 나중엔 오히려 영웅, 신격화 돼가는 상황을 추적했다.


범죄자→갓(god) 되는 인터넷 상 정보변질 과정을 추적


▲인세인박 작가가 자신의 '예수처럼 죽다' '학습된 옐로우' 작업을 공개했다. 오른쪽 아래 작은 기기에서는 왜곡된 예수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등장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인세인박은 “평소 인터넷 댓글과 커뮤니티 사이트를 잘 찾아보고 수집한다. 그런데 특히 조승희에 관한 댓글은 충격적이었다. 안 좋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신격화 돼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갓승희(god+승희 합성어)’ 또는 ‘조 장군’ 등으로 부르며 칭송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단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알려졌다가 인종차별 문제 등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서 댓글 여론이 조금씩 바뀌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살인을 잘 한 일인 양 신격화 하는 댓글도 무수히 등장했다. 여기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되더라. 첫 정보가 인터넷 상에서 계속 변형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런 단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로 그는 ‘짤방(전체 영상 중 일부만 잘라서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을 들었다. 특히 연령층이 어려질수록 전체 영상을 보기보다 재미있는 부분만 엮은 짤방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인세인박은 “짤방의 경우도 앞뒤를 자르고 부분만 보여준다. 그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정보의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결국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된다. 나는 여기에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업은 전반적으로 노란색을 띠고 있다. 노란색은 원래는 밝고 경쾌한 색이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죽음, 애도의 이미지도 담게 됐다. 인세인박은 “세월호 사건과 조승희 사건 날짜도 같다. 복합적인 의미에서 노란색을 전체 이미지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처럼 죽는다’ ‘나는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백성들을 이끌 것이다’ 등 성경 문구와 같은 말들이 노란 화면에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승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공개한 영상에서 직접 말한 문구들이다. 인세인박은 “이 문구들이 인터넷 상 많은 사람들이 조승희를 신격화 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인세인박은 인터넷에서 계속 정보가 왜곡되고 변질되는 현상에 주목한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화면 앞에 설치된 작은 TV에 인터넷에서 수집한 예수의 일반적이지 않은, 왜곡된 이미지가 연속해서 나온다. 입 부분엔 실제 사람의 입이 등장해 계속해서 움직이는데, 영상 끝 무렵에 결국 이 입의 주인공이 조승희였음이 살짝 드러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20년 전만 해도 미술관이 별로 없어 주제를 차별화 시키지 않아도 주목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술관도 경쟁 시대라, 주제 선별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사비나미술관이 2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더디긴 하지만 변해가는 흐름에 따라 조금씩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시각 예술가들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각을 현재진행형으로 보여주는 자리”라고 말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 시대의 흐름은 ‘1초 전 다르고 1초 후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 문화 콘텐츠는 또 어떤 변화를 거칠 것인가. 전시는 사비나미술관에서 7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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