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5호 김연수⁄ 2016.08.05 15:30:39
올해 더위가 정점을 찍고 있는 이번 주, 시민의 피서지로서 국‧공립 미술관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하다. 각종 전시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방문한 노원구의 북서울시립미술관 역시 평일임에도 더위도 피하고 전시도 감상할 겸 방문한 엄마와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현대 미술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큐레이션 등 가족 단위의 관람객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북서울시립미술관의 눈에 띄는 행보는 현재 진행되는 3개 전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1층에서 열리고 있는 ‘2016 타이틀 매치’전은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다양한 연령대가 쉽고 재밌게 접근할 수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빛나는 폭력, 눈감는 별빛'?
‘타이틀매치’전은 2014년 시작된 연례전이다.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원로작가와 젊은 작가를 한 명씩 초대해 한 자리에서 작품을 전시한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다른 세대가 바라보는 각각의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세대 차이에서 비롯한 다름을 다양성으로 이해하며, 그것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창조 및 상생의 가능성을 보는 전시다.
올해는 원로작가 진영에서 주재환 작가가, 젊은 작가 진영에서는 김동규 작가가 작업을 선보인다. 주재환은 민중 미술로 분류되는 원로 화가군 중에서도 오브제 등 혼합매체를 활용한 개념적 작업 방식, 그리고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김동규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되고 빠르게 잊히는 시각물과 함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의미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빛나는 폭력, 눈감는 별빛’이라는 전시 제목은 위트와 냉소가 섞여있는 이들의 작업과 성격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 전소록 역시 “두 작가를 한 자리에 초대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참여적인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위트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폭력은 멀게든 가깝게든 항상 있다
두 작가의 작품은 파티션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유로운 배치로 어우러져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맞이하는 작업은 김동규의 ‘각개전투’다. 고개 숙여 납작 엎드리고 있던 에어 간판(풍선 형태 광고물)들이 ‘펑’ 소리를 커다랗게 내며 바짝 솟아올라 귀엽게 춤을 춘다. 미사일 모양의 에어 간판들은 ‘사랑 편의점’ ‘나눔 핸드폰’ 등 일상과 희망이 함께 조합돼 있는 가게 이름들을 가슴에 달고 있지만, 왜 그런지 희망적인 제목과 삶의 터전의 조합이 모순적으로만 느껴진다. 김동규는 ‘먹고사는 것이 전쟁’이라는 생각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전한다.
주재환의 작업 중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2002년 제작된 ‘크기의 비교’다.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빈 라덴과,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 사용한 폭격기 B-52를 실제 크기의 1/10 비율로 축소해 그리고 만들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비행기와 빈 라덴의 물리적 크기 차이는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오늘의 국제 정치를 상징한다.
종이에 달리는 임산부의 모양으로 여기저기 구멍을 낸 작품 ‘도망가는 임산부’는 은유적으로도 느껴져 주재환 작가에게 임산부가 왜 도망가냐고 질문했더니 “왜 도망가겠어? 세상 살기 힘드니까 도망가지!”라고 대답했다. 사실 이 전시의 장점은 무엇보다 작품의 설명이 리플렛에 그리고 작품 옆에 친절히 설명돼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스님의 말을 빌려,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구아(求我) 즉, ‘나를 살려주오’로 풀이힌다. 생명경시 풍조와 삶의 양극화에 따른 저출산 현상 가속화와 생명의 순환이 멈춰가고 있음을 얘기하는 작품이다.
전 큐레이터는 “주재환 선생님의 작업이 전쟁과 같은 소재와 함께 거시적 시각에서 폭력을 다루고 있다면, 김동규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폭력을 미시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며, “진지한 주제지만, 마냥 심각하지만은 않다”고 설명했다. 김동규 역시 “블랙코미디 같은 작업들”이라며, “선생님과 내가 처음 만나자마자 일치했던 의견은 ‘어렵고 폼 재는 거 하지 말자’였다”고 전한다.
사실 이 전시에 등장한 작업들은 모두 다 유쾌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이 블랙 코미디라 했을 때, 영화 ‘왝더 독’류의 사회 현상 이야기라기보다는 ‘인생은 아름다워’에 가까워 보인다. 그들의 냉소적 재치로 유발된 웃음 뒤에 남은 감정은 씁쓸함을 넘어 슬픔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품 ‘시대정신’을 설명하며 “세상은 이미 깨져 버렸기 때문에 복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박살난 세상에 대한 재현의 욕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힌 김동규의 말처럼, 세대를 초월해 부조리한 폭력에 노출돼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 표현하는 끝나지 않는 작가들의 몸부림 또한 재밌지만, 재밌어서 슬프다. 전시는 10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