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명성황후. 이 비극적인 황후의 인생은 역사에 길이 남아 있다. 명성황후를 소재로 한 소설, 드라마도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우리가 기억하는 명성황후의 얼굴은 어떤가? 명확히 떠오르는가?
과거 역사 교과서에 명성황후로 소개됐던 사진의 진상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일본에서 발행된 ‘전국사진화보’(1895)에서는 사진 속 여성을 명성황후가 아닌 ‘조선궁녀’로 소개했다. 또한 황후들의 복장에 있는 봉황문양이 없고, 사진 속 복장이 상궁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지밀상궁의 옷과 흡사함이 지적되며, 결국 역사교과서에서 사진이 삭제됐다. 학계에서는 아직 발견된 명성황후 사진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분명 존재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명성황후의 얼굴은 현재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가하면 역사의 흐름 속에 또 사라진 존재가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독도. 그곳을 중심으로 동해안에 걸쳐 실제 서식했던 토종 바다사자 강치가 있다. 독도는 한때 ‘강치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바다사자의 최대 번식지였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공연계는 이처럼 역사에 분명 존재했지만 잊히거나 사라진 존재들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을 보인다. 서울예술단은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를 2013년 초연, 2015년 재연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과수원뮤지컬컴퍼니는 창작뮤지컬 ‘리멤버 - 독도, 그리고 이야기’를 지난해에 이어 선보인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을 현재에 불러내 마음에 되새기려는 시도다.
① 명성황후의 사진은 왜 남아 있지 않을까?
한 여성,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명성황후에 접근 ‘잃어버린 얼굴 1895’
무대 위에 명성황후가 등장한다. 그는 늘 부채와 짙은 화장으로 얼굴을 가린다. 부채로 가린 틈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핏기가 없고, 미소도 없다. 늘 긴장감에 신경이 곤두선 모습이다. 조선에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 가운데 명성황후는 신문물은 반기면서도 자신의 사진을 남기길 격렬하게 거부하는 등 상반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고종의 사진은 남아 있는 반면 명성황후의 사진은 왜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미스터리한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무대 위 설치된 대형 액자 설치물에는 끊임없이 고종과 대원군 등의 실제 남아 있는 사진들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명성황후의 사진은 숨바꼭질하듯 찾아볼 수가 없다.
명성황후의 이야기는 그간 영웅적으로 다뤄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의 명성황후는 매우 신경질적이고, 불안해 보이며, 강한 듯 하면서도 약하다.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정치적 입장 차이로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그 가운데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갈팡질팡하는 남편 고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명성황후의 삶에 집중한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왜 명성황후는 사진을 찍지 않았는지’ 주변에 가공의 이야기를 더해 관객으로도 하여금 당시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명성황후는 늘 위협에 시달린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속에 조선왕조를 일으키고 싶었던 대원군에게는, 그저 정치적 도구로 세워놓으려고 했던 명성황후의 존재가 위협적이다. 말을 듣지 않는 인형은 치워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대원군을 따르는 세력에 의해 명성황후는 세 번의 장례식을 치르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공연은 더더욱 명성황후가 자신을 감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상황을 끌어간다. 대원군의 압박으로 남편인 고종은 자신을 폐위시키는 상황까지 이르니 누구 하나 믿거나 의지하기 힘들었을 상황이었을 터. 이 가운데 명성황후에 의해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뒤 앙심을 품은 사진관 조수 휘가 명성황후의 사진을 찍기 위해 접근하기 시작한다. 또 명성황후를 몰아내고 조선을 휘어잡으려는 일본군도 명성황후의 사진 찾기에 혈안이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추억을 남기는 용도의 사진 한 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판가름할 정도의 무게가 있었음이 느껴진다.
끊임없이 자신의 사진을 찍으려는 무리들 가운데서도 얼굴을 가리는 명성황후는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나라가 됐을 때 사진을 박겠다”고 꿋꿋하게 버틴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는 그의 이 바람 하나도 이뤄주지 못하고 극은 안타까운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지난 공연에서 차지연이 열연했던 명성황후를 올해 공연에서는 김선영이 맡았다. 출산과 육아로 잠시 무대를 떠났던 김선영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격동기 속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명성황후를 폭발적인 에너지로 연기한다. 목소리 톤은 시종일관 낮고, 그 가운데 한이 어렸다. 단순히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정도로 무게감이 있기에, 명성황후를 온전히 끝마치기 위해서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할 것 같다.
김선영은 “대부분이 명성황후를 강하고, 여장부적인 이미지로 생각할 거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 그렇다면 왜 명성황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관객을 설득하고 싶었다. 강한 모습을 연기하지만, 그 이면에 여자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등 당시 처한 상황 속 명성황후의 모습을 무대 위에 불러오려 했다”고 역할을 설명했다. 무대 위 명성황후가 왜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득력을 그의 연기를 통해 느껴볼 수 있다.
연출은 최근 ‘도리안 그레이’를 올린 이지나가 맡았다. 이 연출은 ‘잃어버린 얼굴 1895’ 프레스콜에서 “국가적인 이야기보다는 명성황후 개인의 고뇌에 초점을 맞췄다. 역사를 바라보는 공식화된 해석을 벗어나 명성황후라는 인물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한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공연에서는 끝까지 명성황후의 실제 외형적인 얼굴은 볼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영웅화 됐던 명성황후의 여러 이면에 접근하는 시도가 이뤄진다.
이 연출은 최근 다른 공연 프레스콜에서 “공연이 단순히 가벼워서는 안 되고 진중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 의도를 반영한 듯 ‘잃어버린 얼굴 1895’는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기 힘들다.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노력도 필요하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 역사적 사건들이 명확한 해설 없이 상징적으로 빠르게 펼쳐진다. 그래서 공연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역사에 접근하기 위해서 이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대는 화려한 가운데 어둡다. 조명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고, 이 가운데 배우들이 입은 의상은 화려해 극이 비극으로 치달았을 때 더욱 잔혹함이 부각된다. 서울예술단 단원들의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된 춤사위는 이 공연의 백미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그리고 을미사변까지 시대를 흔들었던 사건이 무대 위에 격렬한 춤사위로 펼쳐진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10월 23일까지.
② 그 많던 강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뮤지컬 ‘리멤버 독도, 그리고 이야기’
그 많던 강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뮤지컬 ‘리멤버 독도, 그리고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이다. 토종 바다사자 강치는 절정기에는 3~5만 개체가 독도를 중심으로 서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독도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현재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준다. 먼 미래에는 아예 강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뮤지컬 ‘리멤버 독도, 그리고 이야기’는 이 강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와 관련해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측은 “공연을 준비하며 역사를 조사하던 중 100여 년 전 일제 강점기 때 당시 고가에 팔리던 강치의 가죽을 얻기 위해 일본인이 무자비하게 남획을 해 강치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다가 결국엔 사라지게 됐다는 정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야욕도 깔려 있었다. 독도 바다사자 강치의 가죽이 필요했던 일본의 어부, 그리고 독도에 망루를 설치해 러시아 군대를 감시하려던 일본 정부의 계략으로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라는 괴상한 합작품이 만들어졌다. 이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는 일본이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지금까지도 이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강치를 무대 위에 되살리고, 이를 통해 역사를 바로잡는 데 작은 노력이나마 보태겠다는 것이 공연의 취지다.
공연을 올리는 허강녕 과수원뮤지컬컴퍼니 대표는 “지난해 공연의 부족했던 점을 수정해 좀 더 완성도를 높였다. 단순히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명제에만 기대지 않고 실제 역사를 소재로,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구성으로 공연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극 속에는 잊힌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로 강치,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 철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또 여기에 강치와 철수를 위협하는 존재로 ‘검은 발’이 있다. 잘못된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잘나가는 인기가요 프로그램 PD였던 철수는 울릉도로 오징어 취재를 위해 배를 탔다가 갑작스런 풍랑에 조난을 당한다. 낯선 곳에서 눈을 떴는데 섬의 주민들은 철수를 검은 발이라 부르며 죽이려 한다. 하지만 섬의 공주는 철수가 검은 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줄 ‘예언의 용사’일지도 모른다며, 바닷속 대왕의 눈물을 찾아오라고 청한다. 물을 무서워하는 철수는 처음엔 거부하지만, 마법 같은 힘에 이끌려 바다로 들어가고, 대왕의 눈물도 찾는다. 이를 계기로 섬 주민들과도 가까워지지만 곧 검은 발의 습격으로 섬은 혼돈에 빠지고, 섬 주민들은 검은 발과 죽기를 각오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국내 창작 뮤지컬의 배우이자 연출가인 추정화가 작/연출을 맡았고, 제2회 더뮤지컬 어워즈에서 작곡상을 수상한 허수현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해 ‘휴먼프로젝트 2’(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고민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는지를 심리학적∙행동학적 관점으로 접근해 무용수의 몸과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공연)의 안무가이자 현대무용가 신종철이 안무감독으로 참여했다.
허 대표는 “주인공 철수와 함께 관객들은 그동안 몰랐던 독도의 역사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본 공연은 우리의 소중한 섬 독도에 살았던 독도 바다사자 강치에게 벌어진 잔혹한 일들이 바로 그 시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겪은 가슴 아픈 역사이며, 멀고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역사라고 말한다”며 “또한 우리의 영토와 자연을 보존해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라는 것도 함께 전한다”고 밝혔다. 공연은 성수아트홀에서 10월 13~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