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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페루 리마] 동양인 존중받는 남반구에서 북반구의 편견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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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5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10.17 09:23:01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4일차 (리마)

페루의 다양한 기후

쿠스코를 떠난 항공기는 1시간 45분 후 리마 공항에 닿는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로 들어가는 콜렉티보(중형 버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린다. 1993년 한국 아시아자동차 제작 중고 버스다.

한여름인 리마에 오니 다시금 페루의 다양한 기후에 놀란다. 페루 북동부 내륙 이키토스(Iquitos) 같은 아마존 열대 우림기후가 있는 반면, 훌리아카(Juliaca) 같은 안데스 고원 지역은 여름이지만 최저 기온이 0도에 가깝다. 리마는 온난 다습한 해안 기후에 속한다. 리마는 대중교통이 잘 갖춰졌다. 나 같은 외국인 여행자들은 이용하기 어렵지만 대형 버스, 콜렉티보 중형 버스, 미니 버스 등이 시내를 다양하게 연결한다. 미니 버스는 필리핀 마닐라의 지프니처럼 노선을 정해 놓고 다닌다.

리마의 강남 ‘미라플로레스’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는 리마의 강남이다. 상점, 음식점, 백화점, 오피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곳곳에 카지노가 성업 중이다. 마침 토요일 저녁을 맞아 많은 시민들이 여름밤을 즐기러 나와 있다. 오랜만에 대도시에 나오니 좋은 점도 많다. 평생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살아온 나는 어쩌면 대도시의 편리함에 쉽게 적응하는지도 모른다. 거리에는 동양인도 많다. 나도 금세 리마 시민이 돼 인파에 섞여 버리니 편안하다.

리마에는 남미 대륙 최대의 중국인 커뮤니티가 있다. 아직도 신대륙인 남미는 누구든 진출해서 주장하면 주인이 될 수 있는 땅이다. 세계 미인대회에서 본 미끈한 페루 여성들이 여기 다 모였다. 날씨마저 완벽하다. 추운 산악 지역을 돌다가 따뜻한 날씨를 만나니 좋기는 하지만 쉬지 않고 바뀌는 날씨와 물, 풍토에 몸이 견뎌줄까 걱정도 된다.

호텔에서 네 블록 걸으니 라르코마르(Larcomar) 해변 위락지구다. 호텔과 각종 식당, 쇼핑몰이 있는 해안 언덕이다. 태평양의 백사장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리마 신시가지의 야경이 펼쳐진다. 더 멀리 거대한 십자가상이 조명을 밝힌다. 가족, 연인 단위의 시민들이 모두 행복해 보인다. 여기 적도 지나 남반구의 여름 주말이 이렇게 펼쳐진다.

▲라르코마르(Larcomar) 해변에는 호텔과 각종 식당, 쇼핑몰이 있다. 태평양의 백사장도 내려다보인다. 사진 = 김현주

▲아르마스 광장에 사람들이 북적댄다. 피사로가 리마를 페루의 수도로 지정한 바로 그 자리다. 사진 = 김현주

세계인 만나는 리마 호스텔

호텔에서 일본계 브라질 청년 둘을 만나서 환담한다. 쿠리치바(Curitiba)에서 왔다고 한다. 한 청년은 토종 일본 얼굴이지만 또 다른 청년은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일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말하자면 이탈리아계 일본계 브라질인이다. 내일 마추픽추로 간다기에 쿠스코와 마추픽추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줬다.

두 청년 모두 가본 적은 없지만 조상의 나라 일본과 동아시아에 관심이 많다. 일본에서 건너온 이민 1세대 할아버지는 해마다 고국 방문을 꿈꿨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한다. 참으로 머나먼 곳이다. 남미에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묵은 엔조이 호스텔은 참 즐거운 곳이다. 라르코마르 해안 위락지구가 네 블록이고 미라플로레스 도심 복판이 두 블록인 좋은 위치는 물론이고 세계인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여기 머무는 동안 콜롬비아 청년 배낭 여행자들(백인), 남아공 백인청년과 캐나다 여대생, 그리고 아르헨티나 중년 여성 롤라와 그의 친구인 우루과이 여성 메르세데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온 롤라는 안과의사로, 한국과 아시아를 동경한다.

8일 후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간다고 했더니 기꺼이 안내해 주겠다고 꼭 전화하라며 신신당부한다. 인사 표시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자기가 살아온 공간 너머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심,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여행자로서 만나면 몇 마디 대화 끝에 금방 마음이 통한다. 페루 리마는 이처럼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남미의 중심인 것이다. 

▲리마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미라플로레스’. 상점, 음식점, 백화점, 오피스 등이 몰려 있고, 카지노도 성업 중이다. 사진 = 김현주

▲잉카제국의 거대한 벽돌 무덤 우아카 푸클라나(Huaca Pucllana)를 찾았다. 규모도 규모지만 벽돌을 쌓은 것이 틈 하나 없이 조밀하고 정교하다. 사진 = 김현주

15일차 (리마 → 칠레 산티아고)

리마 일일 산책

오늘 칠레 산티아고행 항공기 출발은 밤 11시 45분이므로 리마에서의 길고 긴 하루가 기다린다. 호텔을 나와 어젯밤에 갔던 라르코마르 해변에 다시 갔다가 발길을 되돌려 걸으니 곧 미라플로레스 중심이다. 도시 이름처럼 공원마다 꽃이 만발했다. 마침 케네디공원 부근 성당에서 일요일 오전 미사가 열린다. 성당 앞에는 거리 미술가들이 가판을 차렸다. 공원 복판에는 케네디 사후 40주년을 맞아 2003년 건립한 케네디 흉상이 있다. 그는 세계 어디를 가도 존경받는 인물이다.

택시로 우아카 푸클라나(Huaca Pucllana)를 찾았다. 잉카제국의 거대한 벽돌 무덤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벽돌을 쌓은 것이 틈 하나 없이 조밀하고 정교하다. 이곳을 나와 마침 지나가는 티코 택시를 잡아타고 센트로(Centro)로 향한다. 낡은 티코 택시가 도심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니 꼭 초고속 썰매를 타는 기분이다. 고속도로 중앙은 넓은 차로 여러 개를 아예 메트로폴리탄 버스 전용차로로 지정해 버렸다.

그렇게 도착한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또는 Plaza Mayor)은 피사로(Pizaro)가 리마를 페루의 수도로 지정한 바로 그 자리다. 스페인 영향권에서는 어디를 가도 아르마스 광장이 그 도시의 중앙 광장인 경우가 많다. 군대 무기고가 있었던 곳이 언제나 중앙 광장이다. 정부 관저(대통령궁), 시청사, 리마 대성당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na) 부왕청(총독부)이 있었던 곳답게 콜로니얼 건축물들이 웅장하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은 안달루시아 무어 양식을 보여주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성당 내부 박물관에는 엄청난 양의 고서적이 보존돼 있다. 사진 = 김현주

산 프란시스코 성당

리마 대성당은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535년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을 본떠 최초로 건축했다가 1746년 대지진으로 파괴, 1758년 개축된 모습이 지금 그대로다. 성당 안에는 아기 예수 탄생 장식물과 스토리텔링이 이어져 시민들이 경청한다. 

건축 당시 스페인에서 수입한 청색 타일이 사방 벽을 장식한다. 이글레시아 산 프란시스코(Iglesia San Francisco) 성당은 안달루시아 무어 양식을 보여주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성당 내부 천장 무늬와 벽면 기둥, 발코니와 중앙 정원이 모두 스페인 코르도바 메스키타 사원에서 봤던 것과 흡사하다.

성당 내부 박물관에는 엄청난 양의 고서적이 보존돼 있고 이곳 또한 카탈루냐 왕자가 기증한 청색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에스파냐가 페루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간다. 1696년 작품인 최후의 만찬 벽화는 만찬 메뉴 등 페루의 문화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어서 독특하고, 필리핀을 통해서 가져온 상아로 만든 예수상도 눈길을 끈다. 성당 지하에는 거대한 지하묘지(Catacomb)가 있어 수천, 수만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시립 묘지를 폐쇄하면서 이장한 것이라고 한다. 교회에 묻히면 죽은 자가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근처 무라야(Muralla) 공원에는 위락 시설이 있고, 한켠에 피사로 기마상이 있다. 원래 아르마스 광장에 있던 것을 시민들이 불쾌하게 여겨 이곳으로 옮겼다. 아르마스 광장 피사로 기마상이 있던 자리에는 분수공원이 들어섰다. 이 도시의 건설자이자 잉카 문명의 파괴자, 정복자라는 여러 이름을 가진 그의 눈매가 사납다.

멀리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 언덕이 보인다. 언덕 정상을 향해 노랗고 파란 집들이 기어 올라가고 있고,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서 있다. 중앙시장과 차이나타운(바리오 치노, Barrio Chino) 가는 길에 의사당 건물이 있고 그 앞 공원에 ‘해방자(Libertador)’ 시몬볼리바르(Simon Bolivar)의 기마상이 서 있다.

▲리마 한복판에서 차이나타운을 발견했다. 중국풍 붉은 색과 노란 콜로니얼 건축물이 어색한 조화를 이룬다. 사진 = 김현주

리마 차이나타운

중앙시장 옆길로 들어서니 페루가 나타난다. 리마 한복판에 차이나타운….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것은 세계 여느 차이나타운과 다를 바 없지만 중국 거리라기보다는 중국풍 거리에 가깝다. 거리 바닥 타일에는 12지신 상이 새겨져 있다. 중국풍 붉은 색과 노란 콜로니얼 건축물이 어색한 조화를 이룬다.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와 산토도밍고 성당 앞을 지난다. 피사로가 직접 손으로 초석을 놓은 교회로서 대성당 유리 상자에 피사로의 유체가 안치돼 있다. 시내 탐방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주변엔 안개가 자욱하다. 오늘 더웠던 리마 공기와 태평양의 엘니뇨 찬 공기가 만나면서 안개가 생긴 것이다.

▲멀리 산 크리스토발 언덕이 보인다. 노랗고 파란 집들이 자리잡았고,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콜렉티보를 타고 리마공항 행

밤 11시 45분 항공기 출발 시각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굳이 택시를 타지 않고 마침 교통사정도 좋은 일요일 저녁이라 콜렉티보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겁나게 질주하는 낡은 토요타 미니버스 운전 솜씨가 예술이다. 그의 경험과 솜씨에 맡기고 나는 리마 시민들의 일상을 체험한다. 빨리 달릴수록 기사는 라틴 음악의 오디오 볼륨을 더 높여간다. 낡은 디젤 엔진의 소음과 매연, 고르지 않은 노면 등 리마를 오감으로 체험하며 감각기관의 기억에 입력한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드디어 공항이다. 페루 화폐가 좀 남아 이것저것 간식과 마실 것을 샀는데도 여전히 카페라떼 한 잔 값이 남는다. 리마 공항은 이상하게도 국제선 출발과 도착이 모두 밤늦은 시각에 집중돼 있다. 남미 인접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 내 주요 도시, 유럽 내 도시 등으로 가는 항공기들이 22시부터 24시 사이에 집중적으로 들어오고 나가니 공항 대합실은 밤늦게까지 붐빈다.

아름다운 자연, 친절한 사람들의 나라를 떠나려니 코끝이 찡하다. 부디 이 나라가 쑥쑥 자라서 보란 듯이 잉카제국의 영광으로 부활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동안 나는 남반구를 너무 몰랐다. 북반구에 갇혀 있던 세계관을 활짝 열어 주는 중남미 대장정이 오늘로서 보름 지났다. 

하루하루가 불확실성과 타협하는 고군분투의 여정이지만 반환점을 돌아 이제 열흘만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나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쌓이기 시작한다. 페루여 안녕, 리마여 안녕.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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