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파리기후체제가 출범했고, 앞으로 10~15년 이내에 유럽 몇몇 국가는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규 등록을 금지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발맞춰 자동차 기술은 빠르게 발전,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최첨단 친환경 차들을 속속 소개하고 있다. CNB저널은 앞으로 내연기관 자동차들을 박물관 유물 창고로 내몰고자 하는 여러 친환경차들의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 첫 순서는 전기차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하는 질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국내의 전기자동차 등록대수는 8168대로 지난해보다 2401대나 늘었다. 미세먼지 종합대책으로 올해 1만 대를 보급하겠다고 큰소리 친 환경부의 목표는 9월이 지난 현재 4분의 1도 달성되지 못한 셈이다.
반면 세계 전기차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2015년 중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88%로 수직 성장한 12만 1000대에 달했다. 같은 기간 유럽에서도 전년 대비 50.4% 늘어난 10만 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런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 전기차 시장만 주춤대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 및 자동차 회사들의 책임”을 묻는다. 충전 인프라 설치는 지지부진하고, 정부 및 지자체의 보조금도 부족하다.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가 경쟁적으로 내놓는 신형 전기차에 비해 국산 전기차는 주행거리 등 실용적인 면에서 아직 부족하다.
전기차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지대하다. 연료비가 획기적으로 절약하고, 소음과 진동도 없고, 엔진오일을 교체할 필요가 없는 등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전기차의 제로-에미션(Zero-Emission), 즉 주행 중 어떠한 오염 물질도 배출하지 않는다는 친환경적 특징은 환경오염에 대해 규제를 받는 21세기의 정부-기업-소비자 모두에게 큰 장점이다.
“전기차가 환경 더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기차를 ‘병든 지구를 치료할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풍조에 대해 그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전기차의 친환경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내연기관에서 연료를 직접 에너지로 바꾸는 재래식 자동차와 달리 전기차는 발전소가 만든 전기 에너지를 받아 쓰는 구조다. 따라서 전기차의 친환경성 평가는 발전 시스템의 친환경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통환경연구소의 권상일 연구사는 “일반적인 얘기로는 석탄발전 비율이 높을수록 전기차의 친환경성이 감소하고, 원자력-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에 의한 전기 발전이 많을수록 전기차의 친환경성이 높아진다고 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전과정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08년 IEA 보고서의 화석연료 사용 부문별 CO2 배출 비율 통계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세계 온실가스(CO2) 배출량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발전 부문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큰 차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수송 부문은 22%로서, 두 번째로 나쁜 영향을 끼친다. 지구 온난화의 1등 주범은 자동차 배기가스가 아니라, 발전소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내연기관 자동차를 모두 전기차로 대체한다 하더라도 그 많은 전기차가 발전소에서 생산해내는 전기에 의존해야 한다면, 발전소가 내뿜는 CO2 배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새 발전소를 모두 친환경 발전소로 짓는다고 기존 석탄화력발전소의 CO2 배출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에너지 효율과 발전소의 에너지 효율에 따라 전기차보다 휘발유차의 환경성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다른 모든 제품과 마찬가지로 전기차 역시 생산과 이용(주행)에 사용되는 자원과 기술이 친환경적이어야 한다. 다만 전기차는 특히 이용(주행) 단계에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친환경 발전 기술의 요인이 더 큰 비중을 가질 뿐이다.
전기차의 유해성에 주목한 대표적인 연구는 2012년 미국 환경보건국과 노르웨이 공과대학 연구팀 등이 수행한 적이 있다. 이들은 발전 기술보다 전기차 제조에 쓰이는 자원의 재생 가능성 등 제품 생산 단계의 환경성에 주목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노르웨이 공과대학의 ‘재래식 자동차와 전기 자동차의 환경성 비교를 위한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 연구는 전기차와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코발트와 니켈 등 중금속의 악영향을 강조하고, 생산 단계에서 비롯되는 자원 고갈, 지구 온난화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전기차가 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악영향은 재래식 자동차의 두 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발표와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전기차에 불리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여러 편파적이고 과장된 가정 아래 이루어진 연구라는 지적들이었다. 영국의 전기차 전문 인터넷 매체인 ‘풀리 차지드(Fully Charg’d: 완전충전)’는, 이 연구팀이 전기자동차의 모터 무게를 1000kg으로 가정한 뒤 각종 계산을 했지만 사실은 닛산 리프 모델의 경우 모터 무게가 53kg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또한 “연구 대상으로 채택한 배터리 종류는 당시 시판되는 전기차 중 어떤 모델에도 쓰이지 않는 것이었다”고 고발했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의 비영리단체 ‘걱정하는 과학자 연맹(UCS: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은 같은 해 4월 ‘충전의 나라: 미국 전역에 걸친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 및 연료비 절감 효과’라는 전과정평가 보고서를 내놓았다. 노르웨이 공과대학과는 정반대 견해를 내놓아 이 대학 연구를 비판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됐다.
또 노르웨이 공과대학은 전기차 전과정평가에서 주의해야 할 21개 조건을 무시했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노르웨이 공과대학과 석유 재벌기업 ‘스태트오일(Statoil)’의 오랜 파트너십에 근거한 음모론, 즉 부적절한 근거로 전기차를 모략하려 든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산유국 노르웨이는 왜 전기차 천국 됐나?
노르웨이는 세계 8위의 원유 수출국, 9위의 정제유 수출국이며, 천연가스 3위 수출국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로 교체되는 변화를 달갑지 않게 여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고,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에 따른 결과다.
노르웨이에서 전기차에 대한 소비세와 부가가치세는 면제고 주행세도 감면된다. 버스 전용차로 통행이 허가되며, 고속도로 요금과 공영주차장 주차비도 공짜다. 보조금 규모도 커서 테슬라의 '모델 S'를 이웃나라 스웨덴보다 1만 7천 유로나 더 싸게 살 수 있다. 그 결과 노르웨이의 2015년 전기차 판매량은 전체 자동차 판매의 17.1%를 차지했다. 인구수 대비 전기차 보유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르웨이는 산유국인데도 전기 총생산의 95%를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기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노르웨이의 대기 질은 급격히 개선될 전망이다. 국가의 주 수입원인 석유 산업 보호보다 환경을 더 중요한 국가 과제로 여긴 결과다. 아마도 기름 팔아 버는 돈이 줄더라도 환경 개선으로 야기되는 경제 효과가 더 클 거라는 계산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전기차의 친환경성에 관한 노르웨이 공과대학의 2012년 연구보다 다른 여러 연구 결과들이 더욱 신뢰할만한 점은 확실한 듯하다.
국내 연구는 “전기차 친환경성이 최고”
서울대 연구팀은 2011년 5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원유 생산부터 차량 운행까지(WTW: Well-to-Wheel)의 전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CO2, CH4, N2O)의 양을 연료별로 구분한 차량에 따라 평가한 데이터를 발표했다. 연료의 WTW 전과정이란 유전에서 바퀴까지, 즉 각 연료의 시추(생산)부터 수입, 석유 정제, 국내 분배, 저장 및 자동차 주유 후 주행을 위해 연소될 때까지의 모든 단계를 말한다.
전기차의 전 과정은 연료의 국내 분배 단계까지 동일하고, 이후 발전소에서의 전기 생산, 생산된 전기의 송전, 충전 과정을 거쳐 자동차 운행에 쓰일 때까지를 포함했다. 특히 발전에 사용되는 다양한 연료별로 시추 후 각각의 발전소에 도착할 때까지의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을 모두 따로 수행한 후, 1GJ(기가줄)의 전기를 발전할 때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각각 측정해 적용했다.
2012년의 한전 통계에 따른 우리나라의 발전 믹스(mix)는 석탄(39%), 원자력(29%), 천연가스(23%)가 합계 91%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할 때의 온실가스 배출계수(Emission Factor)는 국내산 석탄이 1077.7gCO2/kWh, 수입 석탄이 946.6gCO2/kWh으로, 407.8gCO2/kWh인 천연가스나 온실가스 배출과 무관한 원자력에 비해 월등히 높다. 연료가 발전소에 도달하기까지의 수송, 처리, 저장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천연가스가 석탄보다 많았지만,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여전히 석탄이 많았다.
서울대 연구팀은 2014년 국내에서 판매된 모든 차종(388개)을 대상으로 차량별 운행 중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구했다. 차종별 에너지관리공단의 자동차 표시연비를 기준으로 삼았고, 자동차의 에너지 소비 효율 및 등급표시에 관한 규정에 따른 배출계수를 이용해서 계산했다. EV/PHEV/FCEV 차량의 경우 우리나라에 충분히 많은 차량이 없어서 미국 EPA의 연비를 이용했다.
전 과정의 모든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차종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기차가 ㎞당 94g으로 가장 적었고 하이브리드차는 141g, 디젤차는 189g, 휘발유차는 192g으로 나타났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발전 믹스를 반영했을 때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디젤차와 휘발유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기차의 친환경성이 다른 친환경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한 평가 결과다. 전기차 보급률을 늘여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충분한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차도 km당 94g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결론이기도 하다. 전기차의 최대 장점으로 알던 ‘제로-에미션(Zero-Emission)’은 차량 판매를 위한 광고 문구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건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무의미한 것이, 전기차의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수치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감소하려면 근본적으로 발전 믹스가 바뀌어야 하는데, 기존의 발전소 하나를 새로운 발전소로 교체하는 데만 족히 5년은 소요된다. 게다가 석탄은 원자력 다음으로 발전 단가가 싼 자원이기 때문에, 발전소 건설비 외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수반된다. 또한, 서울대 연구팀은 산업통상자원부가 2015년 7월 발표한 7차 전력 수급계획을 반영했을 때 현재의 발전 믹스가 2030년까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를 사는 사람은 “나는 환경보호에 기여하는 착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휘발유 차보다 훨씬 비싼 전기차 값을 부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봐야 전기차 소비자가 ‘전 과정’에서 내뿜는 온실가스는 재래식 휘발유 차의 절반에 불과할 뿐이다. 고로, 전기차를 많이 몰고 다니면 환경에 절반의 피해를 계속 주게 된다. 결론은? 감당이 가능하면 전기차 같은 친환경 차를 이용하되, 진정으로 지구가 걱정된다면,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