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듯 속 시원한 말을 요즘엔 '사이다'라고 부른다. 누군가 내 답답한 심경을 에두르지 않고 몇 마디 말로 직언하면 "사이다 들이킨 줄" "OOO의 사이다 발언" 등의 첨언과 함께 온라인의 바다에 금새 전파되곤 한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전 세계는 충격과 혼란에 잠식됐고, 그의 원색적이고 폭력적인 혐오발언이 숨어있던 다수의 누군가(샤이 트럼프)에게 '사이다‘였다는 사실도 덩달아 드러났다.
질문이 사라진 시대, “미술로 이야기 만들어내는 힘 찾아야”
조은비 독립 큐레이터가 기획한 ‘복행술(The art of not landing)'은 사물의 본질과 사건의 진상은 실종되고, 압축된 키워드와 수사, 선동만이 남은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복행은 항공기가 착륙 직전에 행로를 뒤집어 다시 날아오르는 조작을 의미한다. 조 큐레이터는 이 전시에서 안착하지 않고 우회하는 기술이란 의미로 ‘복행술’이란 조어를 만들었다. 언어 권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혐오의 시대에 ‘복행술’을 통해 미술이 지닌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터넷 및 SNS 의존도가 높아진 요즘, 말은 생산되기가 무섭게 빨리 유포되고 전파된다. 조 큐레이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장은 짧아지고, 단어는 ‘우물가(井)’를 맴도”는 시대다. 완전한 문장보다 파편적인 단어가 더 많은 검색 결과를 이끌 듯, 이런 언어 분절화 현상은 SNS 해쉬태그 현상부터 뉴스 제목, 나아가 대통령의 연설(박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연설을 예로 들 수 있다)에까지 미치고 있다. 자극적으로 재단된 짧은 말들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범람하면서, 결국엔 단순하고 획일화된 사고로 향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OO녀, OO충과 같은 언어적 낙인,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몇 개의 키워드는 지금 이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환원이며 본질적인 실종이다. … 대상과 사건을 환원, 편견, 혐오와 같은 언어적 손때가 묻어있는 하나의 ‘키워드’로 대체해 그 이면을 쉽게 망각으로 이끈다.” 짧고 단순한 몇 가지의 키워드로 인해 애초의 질문은 시간과 함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질문이 사라져버린 지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야기를 만들어야하는 때이기도 하다. 조 기획자는 미술에서도 되풀이되는 수사에서 벗어나 “이야기 만들어내는 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이 전시는 이렇게 키워드에 흡착해버려 그 이면에 숨어버리는 진실, 또는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시도다. 이를 위해 각 작업을 설명하는 명료한 키워드는 배제하고, 본래의 미술 언어를 드러내며 불투명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럼으로써 복행술을 통해 “어떤 언어에 안착하지 않고, 기표와 기의 사이를 끊임없이 배회함으로써 말의 어리석음 또는 오류를 포착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는 “일식을 육안으로 관찰하기 위해 필름으로 눈앞을 가리듯, 때론 키워드와 대상 사이에 얇은 '막(veil)'을 둬서 무언가를 직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황학동에 위치한 케이크 갤러리에는 작가 5인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낯설고 모호하기에 질문할 수 있는 달의 이면
황학동에 위치한 케이크 갤러리에는 작가 5인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전시장 입구를 통과하는 즉시 기묘하게 움직이는 이미래의 키네틱 작업 2점과 마주친다. 두 작품은 비교적 단순한 철골 구조를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밝은 연어색의 피부가 얇게 덮여있다. 사람을 연상시키는 골조와 가죽을 가졌지만, 형상을 모호할 뿐이다. 전시장 높이에 가깝게 키가 큰 작품 ‘뼈가 있는 것의 케이크 갤러리 운동’의 팔에 해당하는 기둥이 가로방향으로 전시장 한쪽 벽면에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회전한다. 또 다른 작품 ‘뼈가 있는 것의 운동’은 두 개의 바퀴가 세로로 회전하면서 자전거 페달 운동을 연상시킨다. 두 작품이 각각 만들어내는 움직이는 그림자와 규칙적인 소리가 전시 공간에 깊숙이 개입한다.
회전하는 작품 너머로 정희승의 가위 사진이 보인다. 그가 이번 전시에 선보인 연작 ‘텐더 버튼스(Tender Buttons)’는 복행술의 묘미를 가장 잘 나타낸다. 가위 외에도 벌집, 고목 등을 찍은 흑백 사진은 사물을 온전히 내보이지만, 정작 사진에서 사물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사물의 정체 너머로 사진 전체가 내포한 저 너머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평범할 수 있는 대상을 포착한 사진이지만 그래서 더욱 낯설고 모호하다.
이제의 그림은 도상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던 의미를 과감하게 벗어던진다. 흔히 임신한 여성의 나체를 담은 이미지는 성스럽고 평온하게 표현되는 반면, 이제의 ‘웃는 여자’는 기묘하게 웃고 있는 임신한 여성이 전면에 드러난다. 봉긋하게 솟은 그녀의 배처럼, 옆방에 걸린 공사장의 폐허 더미도 부풀어 있다. 치열한 남성의 세계로 묘사되는 개발 현장에서 이제는 생명을 품은 요람을 발견한 듯하다. 정희승의 벌집 사진과 ‘웃는 여자’ 사이 한 구석에는 저마다 다른 크기의 동그란 토기가 나뭇가지들과 함께 쌓여있는데, 모두 부푼 배를 닮았다.
김영글의 비디오 작품 '해마 찾기'도 전시장 한편에 상영된다. 영상의 시작부터 잃어버린 ‘해마’를 찾지만, 정작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해마의 정체는 모호해진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관을 말하는가 하면 바다 생물 해마의 도상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상 속에는 역사적인 사실을 포함한 기록 사진과 작가 개인의 사적인 이미지가 병합되면서 결국 집단적인 기억으로서의 언어가 망각되는 현상을 짚어낸다.
양윤화+이준용은 이번 전시에서 독특한 협업을 진행했다. (작품 제목과 동일한) ‘무엇이 무겁고 무엇이 가벼울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이메일을 교환하며, 첫 서신의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도려내 이를 동그란 종이 조각으로 만들었다. 이후 서신교환과 함께 동그란 종이 조각을 교환하며 변형해나간다. 종이 조각은 각자의 오브제 작업의 실루엣으로 작동한다. 협업의 과정이 완전히 끝나서야 드디어 종이 조각이란 실루엣 너머 서로의 오브제를 서로에게 공개했다. 결과물로서의 오브제(실루엣을 공유하는) 두 점과 함께 그들이 주고받은 서신과 종이 조각 기록들을 모은 책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물음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끝나는 서신들을 준비된 쿠션에 앉아 곱씹어 읽어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숨겨진 재미다. 11월 26일에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이현재 여성철학자(서울시립대 HK 교수)의 강연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이 4시부터 열린다. 전시는 12월 1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