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사거리에 위치한 코너아트스페이스는 창가의 비교적 작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쇼윈도 갤러리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동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쇼윈도 내부가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심히 쇼윈도 안을 들여다보면, 전시장 바닥 위에 엄지손톱 크기의 사진 수천 장이 깔려있다. 전시 제목과 동명인 이 작품 ‘발 아래 먼지’는 흑백으로 출력된 태국 사람들 수천 명의 얼굴로 이뤄졌다. 그 옆으로 어떤 설명 없이 수천 개의 이름만이 하나씩 열거되는 비디오 ‘비연대기적 역사’가 상영 중이다. 바닥에는 이름 없는 얼굴들만 보이고, 영상에는 얼굴을 모르는 이의 이름만 드러내고 있어 이들의 정체가 이내 궁금해진다.
이번 전시는 쿠데타를 통해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1932년 이후의 태국 현대사를 주제로 한다. 이 시기의 태국 정치사에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작품의 주인공이다. 태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리디 바놈용을 비롯한 민주항쟁 운동가들의 사진 더미와 함께 수상, 시위자,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 대학살의 순교자, 군장성, 군인, 국왕 추대자, 탁신 지지자, 늘어난 왕족들과 의회의 의원들, 그리고 많은 태국 정치인 무리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분류한다. 확대경도 함께 비치돼 자그마한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관객은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굽히고 확대경을 사용해 손톱 크기의 사진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제안한 역사를 탐구하는 하나의 예술적 방식이다. 관객은 역사를 관망하기보다, 마치 탐정이 된 기분으로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을 사진과 확대경을 통해 직접 대면하고 더욱 구체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
코너아트스페이스 측은 “이 전시는 서울의 관객에게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며, “태국의 국지적 상황으로만 국한시켜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보다, 이 시대를 살다가 사라져버린 이들의 삶이 현재의 우리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