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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 이희욱 '구원의 이미지'전] 각자도생 아닌 연대로 구원 찾는 현대의 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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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1호 김연수⁄ 2016.11.25 15:40:27

▲작업실의 이희욱 작가. (사진=오제성)


드라마 시청률보다 뉴스 시청률이 더 높다는 요즘의 이례적인 사례는 그만큼 최근에 밝혀지는 사건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하는 팩트의 전개에 “난 더 이상 창의적일 수 없다”며 자조 섞인 비판을 하는 드라마 작가들이나 개그맨 같은 대중 예술인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분야의 예술인들에게도 자신의 작업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회참여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온 작가 이희욱이 연희동의 전시 공간 플레이스 막에서 선보이는 개인전 ‘구원의 이미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예술가가 그가 속한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 혹은 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예술언어로서 치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이희욱,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Martydom of Catharina)'. 193.9 x 130.3cm, 리넨에 유채. 2015~2016.


순교: 구원의 길


인물은 화면 속 설정되지 않은 공간에 서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의 모습이 독특한 힘을 가지는 이유는 독특한 포즈와 소품들 때문이다. 칼, 총, 화살 같은 무기류를 들고 꽃, 화관, 책, 수레바퀴 등의 소품들과 함께 화면 속 인물들이 취한 포즈는 마치 중세시대 회화에 나타나는 과장된 동작들 같다. 이희욱은 이러한 포즈들이 순교도(Martyrdom)*에서 차용된 것이라고 했다. 순교는 믿음의 증거이자 구원에 이르는 길로서 행해지곤 했다. 순교도는 수많은 순교에 관한 전설들이 그림으로 옮겨진 것이다. 전설상의 성인(聖人)들이 믿음의 증거로서 고통 속에 죽어가는 혹은 거룩하거나 의롭게 그려진 모습은 이희욱의 화폭에서 현대의 인물들에 의해 재현됐다. 


또한, 순교도에는 고문에 사용된 물건들이나 성인들을 상징하는 물건이 같이 등장하곤 한다.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불교 용어로는 ‘지물’이라고 하는데, 십자가와 백합 등은 천주교의 대표적인 지물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나타난 지물들은 검, 화살, 부서진 수레바퀴, 화관, 꽃, 소비에트 문양, 총, 책 등이 있다. 그는 “무기류는 구원의 힘을 말하며 부서진 수레바퀴는 자본, 화관은 승리, 꽃은 숭고함, 소비에트(soviet: 평의회·대표자회의를 의미) 문양이 들어간 깃발은 평등, 책은 힘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순교도(殉敎圖): 순교자의 순교 장면을 그린 그림.


▲이희욱, 'vox populi, vox dei'.130.3 x 97cm, 캔버스에 유채. 2016.


자유개인의 자구책은?


이희욱은 종교 회화의 내용이 아닌 그 숭고한 성격만을 차용한다. 이 작품들에 대체된 내용은 현실에서의 사건과 재난-재앙들이 전제가 된다. 그가 말하는 사건과 재앙은 국가적 단위에서 오는 폭력적 상황이다. 예를 들면 세월호나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진압 사건과 같은 것들이다. 작가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한 방법은 대략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 첫째는 각자도생이며, 두 번째는 연대다. 


작가가 작품 연구 과정 중 차용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나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의 ‘몫이 없는 자들(part of no-part)’, 즉 자유로운 개인이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서 작가는 연대를 택한다. 각자도생의 방법은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무기를 들고 있는 인물들이 지물들과 함께 그려진 캔버스는 전시 공간 안에서 일렬로 배열되며, 연대의 형상화가 이뤄진다. 


▲이희욱, '루크레티아(Martyrdom of Lucretia)'.162.2 x 130.3cm, 리넨에 유채. 2016.


오늘의 성인(聖人)


한편, 이희욱의 그림은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와 처절함과 숭고함으로 점철돼있는 종교화의 전형적인 무게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유화임에도 수채화처럼 보이는 맑고 투명한 표현과 더불어 자유로운 개인이 된 모델은 작가의 지인들이다. 가슴을 짓누르지 않고 다가오며 표현된 지물들이 가지는 은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여유를 만들어낸다. 


많은 지물들 중에서도 부서진 수레바퀴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 역사, 혹은 순환의 흐름에 따라 살아야 하는 개인의 도발을 상징하는 듯하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구주희는 “작가는 종교화 속 성인을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 대치하여 그림으로써, 자유로운 한 개인을 잠정적 성인으로 세탁한다”고 해석했다. 또한 “종교화 속 순교자들의 탄생과 그 과정은 오늘날의 사회면 신문과 뉴스를 통해서도 읽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성인은 더 이상 숭배의 대상이 아닌, 그림 속 대상이자 관람자로 오늘날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12월 11일까지. 


▲이희욱, '도로테아(martydom og dorothea)'. 130.3 x 130.3cm, 리넨에 유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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