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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시국선언 ①] 블랙리스트 작가들 "기억날 때까지 두들겨주마"

‘순실뎐’ 전시부터 광화문 칼 퍼포먼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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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3호 김금영⁄ 2016.12.09 15:32:08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에서 민중미술가 임옥상이 펼친 '백만백성' 퍼포먼스에 촛불시민들이 동참하고 있다. 임 화백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한문까지 천을 깔아 시민들의 발언을 붓으로 적는 대형 퍼포먼스를 펼쳤다.(사진=연합뉴스)

(CNB저널 = 김금영 기자) 10월. 한국일보의 보도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에 떠오르며 난리가 났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 문화예술인을 지원하지 않거나 제약을 주는 식으로, 이른바 ‘혼을 내’ 응징하겠다는 취지의 리스트였다. 이것만 해도 기가 막혔는데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은 정부가 온 국민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아니면 블랙아웃(black-out: 깜깜이로 만듦)시키려는 듯한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뒤에 숨어 있던 비선실세의 실체에 관한 의혹과 증거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기억이 안 난다’ ‘모른다’로 일관하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문화예술인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전시부터 토론회, 퍼포먼스, 토론회, 책 출판, 광화문 광장 캠핑 등 다양한 형태로 정부를 꾸짖는 문화예술인, 더 나아가서 국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순실뎐'에 전시된 황재형 작가의 '닭, 세월호 희생자'(위)와 '소가 넘어가다'.(사진=최형순 미술평론가)

리얼리즘 미술은 역사를 기록하거나 현실을 재현할 뿐 아니라, 민중의 삶의 진정한 면모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 왔다. 이 리얼리즘 성향 예술가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풍자하는 시국 전시회 ‘순실뎐’을 12월 5일까지 강원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선보였다. 황효창 강원민예총회장을 비롯해 권용택, 조문호, 김진열, 김대영, 신대엽, 서숙희, 김용철, 이광택, 백중기, 길종갑, 류정호, 전형근, 박은경, 박종혁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 16명이 100호 크기의 대작들을 공개했다.


특히 스스로 탄광촌의 삶을 선택해 광부의 애환을 제대로 그려냄은 물론, 더 나아가 민중의 애환까지 담아 온 ‘광부 화가’ 황재형은 ‘닭, 세월호 희생자(Business Oligarch)’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닭은 박 대통령을 풍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동물로, 수많은 닭들이 새장 안에 갇힌 모습과,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닭의 실루엣을 그렸다. 의미심장한 화면이다. 그리고 ‘소가 넘어가다(Burraloed)’를 통해서는 현재의 국정농단 실태에 국민들이 ‘속아 넘어갔다’는 의미를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전시를 기획한 최형순 미술평론가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시국선언이 쏟아질 때 리얼리즘 작가로서의 책임을 느꼈고, 이 뜻을 한데 모았다. 이 전시는 예술가들에게 시국선언과 같은 의미”라고 밝히기도 했다.


▲외압 논란에 휩싸인 홍성담 작가(사진)의 '세월오월'과 관련해 광주시립미술관이 내년 4월 재전시를 위해 홍 작가와 일정 등을 협의 중에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

앞서 공개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었던 강용면 작가 또한 이달 말부터 순창 섬진강미술관에서 시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대형 신작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도 전시된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2014년 8월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그리며 풍자한 홍 작가의 ‘세월오월’이 외압으로 비엔날레 전시에 그림이 걸리지 못했다는 의혹을 최근 보도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광주시립미술관이 ‘세월오월’의 내년 4월 재전시를 위해 홍 작가와 일정 등을 협의 중에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늘 전시와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는 재벌기업과 함께 구속되는 모습의 박 대통령 모형이 설치된 지 오래다. 더러운 정치판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똥 모양의 모형도 함께 세워졌고, 깊은 바다 속 아직까지도 구원받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기리는 의미에서 세월호와 노란리본으로 이뤄진 모형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2월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통무예인들이 시국선언을 앞두고 퍼포먼스를 펼쳤다.(사진=연합뉴스)

전통무예인들이 12월 7일 시국선언을 외치며 퍼포먼스를 펼쳤고, 민중미술가 임옥상은 제5차 촛불집회 때 ‘백만백성’ 퍼포먼스를 펼쳤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한문까지 천을 깔아 시민들의 발언을 붓으로 적은 대형 퍼포먼스였다. 가수 이승환은 촛불 집회에서 공연을 펼쳤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예술인의 발걸음이 광장에 이어지고 있다.


SNS도 전시의 장이다. 찰스장 작가는 자신의 SNS에 촛불을 든 그림을 그려서 올렸다. 이것을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으로도 쓰고 있는데, 현재 그림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료 배포 중이다. 찰스장 작가는 “촛불집회를 나가보니 가수들은 노래를 만들고, 예능인은 사회를 보는 등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해서 어지러운 시국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또한 조금이라도 도움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서 그림을 그렸다. 보통 이미지 저작권이 있는데, 현재 이 촛불 이미지는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곧 광화문 광장에 이번엔 배지를 만들어서 가려고 한다. 촛불집회를 찾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라며 “이전엔 정치에 관해 알게 모르게 서로 쉬쉬하고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워 하던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나는 작가로서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업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동참하려 한다”고 말했다.


▲찰스장 작가는 촛불집회를 응원하는 의미의 그림을 무료 배포했다.(사진=찰스장 SNS)

관련 책도 발간됐다. 10월 26일~11월 4일 동안 대학생, 교수, 종교인,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모두 81곳에서 발표된 시국선언을 원문 그대로 실은 ‘시국선언: 목놓아 통곡하노라’가 나왔다.


그리고 이 많은 활동들은 예술인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광장을 찾는 시민들 모두 이 예술 활동에 동참하며 시국선언을 외치고 있다. 앞서 언급된 임옥상 작가의 퍼포먼스도 시민들과 함께 이뤄졌고, 작가들이 만든 모형 옆에는 시민들의 바람을 담은 글과 그림이 함께 전시됐다. 이승환이 노래를 부를 땐 모두가 함께 따라 불렀다. SNS에서는 촛불을 상징하는 글과 그림이 서로를 거쳐 공유되며 퍼진다.


지금 국민들은 문화예술을 통해 시국을 비판하고 바라보고 있다. 과거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로 불렸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이화여대 학생들을 통해 진실이 고개를 드는 세상을 마주하고픈 ‘저항의 노래’로 다시 해석돼 불렸다. 갤러리AG에 걸린 김민영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뜨거워진다. 김 작가는 빛과 어둠의 존재를 함께 이야기하며, 빛을 토대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따뜻한 불빛을 가득 밝힌 집들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 걸렸는데, 이 작품을 보고 촛불집회의 불빛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김 작가는 “작품을 감상할 때는 지금 그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어지러운 시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 그림을 보고 함께 모인 불빛을 연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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