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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展 ⑨ 잠실창작스튜디오] 긴 작가활동 위해 잠시 머무는 ‘기항지’전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12월 7~13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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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3호 윤하나⁄ 2016.12.09 17:41:12

▲김명아, '소통, 관계'. 95 × 70 × 40cm, 우레탄 실, FRP, 철. 2016. (사진 = 잠실창작스튜디오)

 

북서울시립미술관 커뮤니티 갤러리에서 지난 127일부터 기항지: 어 포트 오브 콜(a port of call)’전이 개최됐다. 기항지란 항해 중인 배가 잠시 들를 수 있는 항구란 뜻으로,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을 말한다.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시의 특성을 잘 나타낸 제목이다. 길고 험난한 작가 활동 중에 잠시 머물며 작업을 점검하고 다시금 긴 호흡을 준비하는 기간인 셈이다. 이번 전시는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레지던시 입주 기간 동안의 과정과 경험을 되돌아보며, 그간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굿모닝 스튜디오’ 8기 입주 작가인 고홍석, 김경아, 김명아, 김은설, 김재호, 문승현, 이동엽, 이민희, 이영익, 이진솔, 전동민, 정도운 작가 12명이 전시에 참여했다.

 

소통과 관계 되짚는 각기 다른 개성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다양한 색감을 지닌 고홍석의 풍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풍선이란 소재는 손 감각만으로도 원하는 형태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잃어버린 시력으로 인한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팽창하려는 현대인의 마음에서 불안정성을 발견하고, 이를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을 풍선의 재료적 특성으로 표현한다.

 

▲고홍석, '훔치다'. 가변크기, 다중매체. 2016. (사진 = 잠실창작스튜디오)


전시장 내부에는 저마다 다른 개성의 작품들이 관람객을 반기고 있었다. 강렬하게 파란색을 띠며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화는 김경아의 작품이다. 코발트블루와 울트라 마린 블루를 주로 활용해 낭만적인 밤하늘을 그린 작가는, 작품을 통해 관객이 삶의 여유와 평온함을 찾길 바란다고 말한다.

 

김명아 작가는 인간관계와 소통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이를 조각으로 표현한다. 청각 장애로 인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사실상 모든 이들이 고민하는 관계 맺기에 관한 작업으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번 전시에는 인형극에서 배우가 인형을 조종하는 줄이 서로 간에 교감하는 신경세포처럼 이어진 조각을 선보였다. 작가 김은설은 사람 간 소통의 미묘함과 긴장감을 거미줄에 갇힌 사람의 신체를 통해 표현한다. 헐벗은 신체에 붙은 실들이 묘하게 섬뜩해 보이지만, 이내 아름다운 핑크색 선 드로잉으로 연상되는 태고의 이미지가 이 압박감을 중화시킨다.

 

▲이민희, '너와 나. 바라보다 달이 떴다'. 35 × 45cm, 피그먼트 프린트. 2016. (사진 = 잠실창작스튜디오)

 

작가 김재호의 작품에는 튜브 물감들이 많이 보인다. 김명아는 사람이 늙어가듯, 물감도 오래 쓸수록 몸집이 줄고 주름이 생기는 모습을 통해 물감을 그리며 인간에 대해 고민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물감 속에 숨은 여러 가지 색들이 서로 섞여 보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만들어가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문승현 작가는 사람의 영혼이 머무는 곳을 얼굴이라 여기며 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가 반복적으로 그려내는 얼굴은 존재인 동시에 삶의 흔적이 동굴의 벽화처럼 새겨진 장소를 의미한다.

 

이동엽 작가는 인간의 몸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적 통찰에 공감한다. 그는 신체를 이루는 뼈나 세포를 펜으로 드로잉하며 유기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신체적 이미지의 단서가 일부만 남은 그의 그림은 돌연변이나 변종, 존재 불가능한 비정형적 형태로 표현됐다. 이민희 작가의 사진에는 초점이 없지만, 대신 색의 온도가 모든 것을 표현한다. 병으로 겪은 인식의 경계에서 자연의 빛을 본 작가는 이를 토대로 자연의 어둠과 밝음을 포착하는데 주력한다. 이 여정을 통해 작가는 잃어버린 자신의 체온과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김은설, '지극히 개인적인'. 145.5 × 89.4cm, 캔버스에 색연필, 아크릴. 2016. (사진 = 잠실창작스튜디오)


이영익 작가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도시를 한국화로 옮긴다. 특히 이번에는 잠실과 노원이란 기묘한 공간을 골랐다. 현재 급격히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노원구와 수년 내 재개발될 종합운동장 주변 지역의 변화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이진솔 작가는 자신의 콤플렉스로 인한 경험을 글과 드로잉으로 남기고, 이를 수집한 이미지와 중첩시켜 재구성한다. 3m가 넘는 커다란 걸개에 드러난 대범한 콜라주 이미지가 특히 인상적이다.

 

전동민 작가는 분채를 활용해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의 야경을 그린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도시의 15세기 과거와 21세기 현재를 그림 한 폭에 담아 굴곡진 역사의 빛과 어둠, 그 속에 숨은 역동성을 드러낸다. 작가 정도운은 작가의 관심사에 따라 인물과 정보를 찾아 해당 인물을 섬세하게 펜으로 그린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큰아버지부터, 죽음에 대해 노래한 힙합 뮤지션, 세월호 집회에서 노래하는 이승환 등을 그린 작품을 통해 죽음에 관한 그의 관심을 느낄 수 있다.

 

▲이동엽, '오가닉 드로잉'. 45.5 × 45.5cm, 캔버스에 잉크, 펜, 인디언 잉크, 구타 방염. 2016. (사진 = 잠실창작스튜디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국내 최초의 장애인 입주예술가 창작공간으로. 매년 시각예술 분야의 장애예술가 12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2007년 개관해 2011년부터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시창작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올해는 미술계 전문가인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대표 김인선, 미술비평가 안소연,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황정인 3인이 멘토로 참여해 지난 7개월간 1:1 멘토링을 진행했다.

 

잠실창작스튜디오의 강득주 매니저는 기회의 불평등은 흙수저, 금수저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 적용된다. 거동의 불편함부터 여러 가지 제약으로 예술교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잠실창작스튜디오는 동시대 미술계로 진입할 전문적인 장애 시각예술작가를 지원하는 것 이외에 예술교육에서 소외된 장애아동에게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있다. 또한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음악, 공연 등 다른 예술 분야도 지원하고자 한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현재 잠실창작스튜디오를 거쳐간 여러 작가들이 작가와 교육자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이번 전시를 통해 앞으로는 또 어떤 작가들이 미술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지 기대감을 남겼다. 전시는 1213일까지.


▲정도운 작가는 요즘 말로 '먹방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요절한 빅 펀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한식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정도운, '빅 펀(Big Pun). 60 × 36cm, 종이에 마커, 콜라쥬. 2016. (사진 = 잠실창작스튜디오)

▲'기항지' 전시 포스터. (사진 = 잠실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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