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미대 추천작가 ㉒ 인하대 오현경] 잃어버린 것에서 뻗어가는 ‘스핀오프’ 세상

  •  

cnbnews 제519-520호 김연수⁄ 2017.01.20 16:43:34


▲2016년 열린 'Home Sweet Home(홈 스위트 홈)'전에서 작품 '팔이 두 개 달린 포크레인' '러버콘' '남은 새'를 설치한 장면.(사진=오현경)


작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아무래도 기사 작성을 쉽게 하기 위해 작품의 캡션처럼 주제, 기법 및 재료 순으로 질문을 하게 된다. 물론 재료가 주제가 되고, 방법도 주제가 될 수 있는 요즘의 미술이지만. 하지만 그런 습관화 된 질문 순서를 버리고 작가 오현경에게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언제부터 드로잉을 했는가?’였다. 

▲오현경, '드로잉 일기'. 종이에 색연필, 연필, 볼펜, 마카, 119.5 × 27cm. 2017.


그의 드로잉

그만큼 드로잉에서 받은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드로잉의 가치가 온전한 하나의 장르로 미술사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 스케치로 존재하던 드로잉은 작가의 무의식이 그 선에 솔직하게 드러나며, 그 작가가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표현하려 노력했는지 거짓 없이 드러나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오현경은 드로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라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더 정확히 알기 위해 빠른 시간 생각을 담아내는 스케치 작업을 수없이 해왔다는 것. 

언뜻 보면 유치원생의 그림인 듯 서툴러 보이지만, 어떤 곳에서는 거친 선으로, 어떤 곳에서는 빈약하고 신경증적인 선으로, 또 다른 어떤 곳에서는 숙련된 손길이 느껴지며, 감정 아니면 주제에 맞춰 의도됐을지도 모르는 섬세하고 다양한 표현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에게 이런 드로잉 작업들은 매체와 영역을 가리지 않는 작업 방식의 근간이 되는 것들이다.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찾는 과정은 드로잉을 비롯해 조각, 설치, 영상, 글, 북아트 등의 다양한 매체가 혼용돼 나타난다. 그것은 재료의 사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재료와 매체에 천착하지 않는 오현경의 특징은 작가 본인에게는 지난한 연구과정과도 같은 작업에 흥미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보는 이에게 오래 훈련된 손의 숙련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숨겨진 작가의 모습을 보게 하는 기능도 있는 것이다. 그 역시 미대에 들어오려 오랜 기간 교과서적인 소묘 기술을 습득했기에 그 색을 빼내려 많은 노력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현경, '드로잉 일기 - 곰들과 제트기'. 볼펜, 19.5×13.5cm. 2016.


‘나무 呻(신)’이 되어

숙련도에 대한 부담을 옆으로 미뤄놓은 것처럼 툭툭 던지듯 내려놓는 드로잉, 종이를 자르고 이어 붙인 설치 작업, 드로잉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핸드폰으로 찍어 만들어 낸 애니메이션 작품 등이 전달하는 주제들은 매우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그 주제에 따라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몰입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그가 살고 있는 동네로부터 시작한다. 그린벨트 지역 근처, 어렸을 때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만 덩그러니 있던 동네에 어느 날부터 포클레인과 트럭 소리, 나무를 잘라내는 기계 소리들이 끊이지 않았다. 트럭이 잔뜩 싣고 온 라바콘과 컨테이너 박스가 영역 표시를 하며 세워지면, 신축 건물들이 뚝딱 뚝딱 잘도 세워지곤 했다. 

그의 작은 드로잉들 안에서 라바콘과 자판기, 두 팔 벌리고 다가오는 기형적인 포클레인, 땅 위를 걷고 있는 어떤 동물들과 그 위를 요란스레 지나가는 비행기 혹은 전투기의 모습 등은 모두 잠재돼 있는 인간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영상 작업 '나무의 복수' 부분 이미지 모음. (이미지= 오현경)


2분 37초짜리 애니메이션 ‘나무의 복수’는 자신이 키우던 토끼가 죽어 묻은 자리가 어느 날 보니, 건물 신축을 위해 죄다 파헤쳐져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미루나무의 신과 토끼를 선물로 받은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다. 나무 신이 자신의 쌍둥이 나무와 오랫동안 지켜봤던 농부, 그리고 여자아이의 토끼가 돈에 눈이 먼 개발업자인 양복 남자에 의해 죽음에 이르자 여자 아이와 함께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동화책으로도 만들어져 전시장에 설치되고 ‘땅따먹기 세트장’이라는 제목으로 팝업 동화책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이야기의 배경 공간, 나무껍질, 솔방을 등으로 만들어진 조형작업 ‘나무 呻(신)’ 등의 스핀 오프 작업으로 뻗어나간다. 

*스핀 오프: 원래는 회사의 분리를 의미하는 경제 용어지만, 최근 들어 기존의 영화, 드라마, 게임 따위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하는 문화 용어로도 쓰인다. 

▲오현경, '나무 呻'. 말린 식물, 해바라기씨앗, 노끈, 철사, 27 × 19 × 25cm. 2016.


“또 쿵. 쿵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1차적으로는 자연을 존중하지 않은 인간의 폭력성, 개발중심주의 사고에 눈이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 등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결국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 축적의 결과물인 모든 것들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한 순간에 타 개체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존재가 없어져 버리는 잔인함과 충격은 작가의 글 작업에서 극대화 된다.

‘불길한 왜에에엥 하는 톱밥 날리는 소리가 조용한 뒷산에 울려 퍼지던 어느 저녁.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무서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내 머리 위에선 보라색 하늘, 주황색 구름이 떠 있는 창문이 있었고, 유리가 약간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굵고 단단한 기둥을 넘어뜨리는 데에는 내 숙제 한 페이지 하고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느라 평소보다도 더 느리게 문제를 풀었다. 또 쿵. 쿵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비단 벌목 당하는 나무만의 일이 아니었다.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벽지, 오래된 집 같은 것들 역시 그에겐 다르지 않은 의미였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원했고, 바꾸거나 새로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오현경은 그렇게 고정된 습관 혹은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점점 강해졌지만, 막상 현실에선 회의적인 태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그런 생각이 다시 강해지게 된 것은 어떤 아주머니가 “여고생부터 다니던 떡볶이 집이 없어졌다”고 너무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는 반대로 용기를 얻게 됐다고 한다. 분야가 달라서 그렇지 사람들은 저마다 존중하는 시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작가는 여태까지 그래온 것처럼 ‘잃어버린 것’과 ‘변하는 것’의 경계에서 주제나 소재에 한정돼 생각하지 않고 그 세계를 펼쳐나갈 듯싶다. 

▲오현경, '컨테이너 박스를 만드는 컨테이너 박스 공장'. 두꺼운 종이, 모형 각목, 아크릴 관, 실, 아크릴 봉, 30 × 15 × 17cm. 2015.


▲정현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학과장.(사진=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정현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학과장 - 추천의 글

오현경은 드로잉, 애니메이션, 설치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도시 개발에 의하여 파헤쳐진 자연과 무너지는 공동체의 기억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러한 물음은 문명과 자연, 물질과 정신, 시각적인 것과 의미하는 것들이 맺는 관계로 이어진다. 작가는 자신이 현재까지 살고 있는 도시 주변부에 위치한 마을의 변화 과정의 경험을 토대로 발전이라는 환상이 지워버린 신화적 상상력을 작업으로 펼쳐내고 있다. 본인의 삶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가장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지역, 국가 더 나아가 세계와의 접점까지 예술가로서의 사고를 넓혀가는 오현경을 기꺼이 추천한다. 


▲오현경 작가.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