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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블랙텐트 ③] 1%에게 던지는 "이게 말이야 뭐야?"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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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1호 김금영⁄ 2017.02.03 10:16:42

▲김재엽 작·연출이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을 선보이는 블랙텐트 앞에 섰다. 그는 블랙텐트의 '임시 공공극장'의 기능을 강조했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그래서 포기 각서를 받았습니까?” “아니, 그게 포기 각서가 아니고요. 포기를 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적은 거였습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일까?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받았지만 포기 각서는 아니란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술은 먹었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망언이 떠오른다. 언어 개그를 펼치는 건가? 고차원의 언어유희라 못 알아들은 걸까?


이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상황은 현실에서 실제로 불거졌다. 2015년 10월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박근형 연출에게 지원신청 철회를 강요한 데 이어 포기 각서까지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도종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예술위 직원 두 명은 박근형 연출을 찾아가 지원포기 의사 및 포기각서까지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직원 두 명은 알아들을 수 없는 저 말, 즉 "이건 포기하겠다는 말을 적은 거지만 포기 각서는 아니다"만 반복했다.


작·연출 김재엽 "가장 정치적인 게 연극"


박 연출은 앞서 2013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연극 ‘개구리’를 국립극단 극장에서 올렸다. “어떻게 공공기관에서 나라를 풍자하는 공연을 올릴 수 있냐”와 “예술이 현 시대를 표현하는 자유는 중요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그런 가운데 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지원 대상 사업에서 탈락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미 박근형 연출은 예술위로부터 여러 차례 지원을 받았다. 탈락이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2017년 현재,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확인됐고 관련해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구속됐다. 그런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 많다.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은 예술 검열 사태와 관련해 국정감사, 인터뷰 등에서 쏟아져 나온 말에 주목하는 공연이다.(사진=김명집/드림플레이)

그들은 어쩌다가 말을 하긴 한다. 그런데 입만 열면 외계어를 하는 듯하다.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박명진 예술위 위원장은 2015년 9월 문화예술계 검열과 관련해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작품엔 지원을 철회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말과, “예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된다”는 야당 의원들의 말에 모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 무슨 코미디인가. 지원을 하긴 하되, 또 철회도 하겠단다.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네, 네”를 잘하지만, 블랙리스트-검열 이야기만 나오면 금세 또 입을 다문다.


이 모든 상황이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에 담겼다. 이 공연은 지난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항하는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의 개막작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올해엔 1월 31일~2월 3일 블랙텐트를 찾았다. 공연은 앞서 길게 나열된 상황들을 요목조목 알기 쉽게 짚어준다.


김재엽 작·연출이 특히 주목한 건 언어다. 그것도 소위 엘리트, 기득권을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언론, 국회의원, 위원장 등의 언어다. 실제 국정 감사 및 인터뷰에서 나온 말들이 공연에 나오고,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의 기사를 원문 그대로 스크랩한 영상도 무대에 띄워진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박대출·도종환·한선교·유은혜 의원 등의 실명도 직접 거론하고 분장까지 비슷하게 해 등장한다.


“어처구니없는 말들의 향연이었죠. 2015년 검열 사건이 불거졌고, 박근형 연출의 창작산실 탈락, 국립국악원의 박근형 연출 배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팝업씨어터 공연 ‘이 아이’에 대한 주최 측의 방해, 그리고 드디어 드러난 블랙리스트의 실체까지. 이 가운데 정말 기가 막힌 말들이 많았어요. 명확히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두루뭉수리 이 말에도 저 말에도 ‘동의한다’고 말을 반복만 하는 건 기본이고, 굉장히 자신들은 편향된 정치적 태도를 가졌으면서도 ‘연극은 정치적이어선 안 된다’고 했죠. 저는 말의 어폐를 느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검열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언어가 없거든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수 없는 거예요.”


"검열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극은 실제 나온 발언들을 재연하고, 재연 뒤 이 발언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다.(사진=김명집/드림플레이)

극은 실제를 재연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질문을 던진다. 장면 재연 뒤 배우들은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몰입이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하이라이트는 자발적으로 검열을 자백하는 장면. 무대 위에서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 역은 “(박근형 연출의 작품이) 만약에 국고 지원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작품이었다면 검열할 필요가 없잖아요?”라고 말하고 박명진 예술위 위원장은 “그렇죠”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에 대해 무대 위 배우들은 “검열이 이뤄진 것을 스스로 자백한 것과 다름없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가 언어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거예요. 보좌관들의 수첩이 그렇게 많은 것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거나…. 대본을 쓰기 위해 국회TV도 다시 보고, 사이트에서 그간의 일들이 공적으로 기록된 자료들을 모두 봤는데, 발언들이 상식적이지 않았어요. 이 공연을 올리면서 ‘혹시 주변의 압력을 받지는 않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직접적으로 받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들이 한, 정말 있는 그대로의 언어를 올렸으니까요.”


정권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언론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드러난다. 극은 박근형 연출의 ‘개구리’에 대한 중앙일보, 문화일보 기사를 보여준다. 중앙일보는 ‘박정희·박근혜 풍자냐 비하냐…국립극단 연극 논란’으로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냈고, 문화일보는 ‘예술 표현의 자유’에 더 중점을 뒀다.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기사가 마치 온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판단해 버리는 세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편향된 시선을 지닌 언론과 정권이 힘을 합쳐 결탁하면 여론몰이는 한순간이다. 그 폭탄 같은 위험성을 현 사회는 갖고 있다.


“저는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는 시대에, 연극이 제2의 언론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정치적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연극이야말로 태생적으로 제의적 행위이자, 정치적 행동입니다.”


▲‘검열언어의 정치학' 중 한 장면. 실제 언론 기사를 스크린에 띄워 '말이 말인지'에 대한 의문을 우발한다.(사진=김명집/드림플레이)

김 연출은 연극 행위가 처음 발생하게 된 배경을 꼽으며, 기원전 500년 전 그리스 시대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가 들어서기 위해 필요한 5가지 공공 장소를 꼽았는데, 거기에 극장도 있었다. 고대 시대 때는 정치 지도자가 도시 국가의 제사장 역할을 하는 등 정치와 종교가 같이 가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 기능이 가장 활발히 이뤄진 곳이 극장이었다는 것. 또 이 극장에서 이뤄지는 연극은 공동체의 문제를 같이 논의하기 위한 목적의식이 분명했다고.


“어떤 시대에도 연극이 동시대 모습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게 허용됐어요. 관객과 직접 만나서 소통하고, 현 시대의 모습을 통찰할 수 있는 게 연극의 역할이었죠. 그런데 기원전 500년 전에는 가능했던 작품이 현재는 안 되는, 더 후퇴한 비참한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김 연출은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이 단지 예술인의 검열 사태에 대해서만 꼬집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도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으로서의 권리다. 관련해 김 연출은 박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인터뷰에서 박 위원장은 “공공기금에 의탁하는 예술가가 상당수다. 지원금 깎이면 아예 사업을 접는 경우하다. 지원금 시장이라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스스로 자립할 의사가 없는 이들에게 퍼주기식 지원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원금을 받지 못한 예술인이 단순히 돈 문제로 목소리를 높인 걸까요? 기사에서 박 위원장은 ‘욕먹을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하는데, 논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건 단순 예술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 모두의 문제예요. 국민을 대표해 나라를 꾸려간다는 사람들이 편향된 시선만을 강요하고 검열한다면 우리의 자유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또 착각하는 게 ‘나랏돈으로 나라 욕하는 공연을 만들면 안 된다’는 논리로 권력과 권한을 착각하고 있어요. 그들의 직책은 국민들이 부여해준 권한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권력으로 여겨 마치 국고를 사유화하는 듯한 잘못된 태도, 획일적인 시선을 강요하는 태도는 올바르지 못합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의 목소리,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일어선 겁니다.”


51% 국민이 민망, 49% 국민이 좌절한 사회에서


▲언어는 이 공연에서 가장 중요하다. 상식적이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언어가 펼쳐지는 사회, 그리고 그런 언어로 자유로움을 침해하려는 의도 등을 파헤친다.(사진=김명집/드림플레이)

김 연출은 자신 또한 편향된 시선만을 보여주는 것을 지양한다고 말했다. 극 제목에 ‘두 개의 국민’이 들어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51%, 문재인 49% 투표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국민이 부여해준 권한을 권력이라 착각한 이들이, 51%의 국민만 이끌고 가려다가 현 사태를 맞으면서 51%의 국민은 민망해지게, 49%의 소외받은 국민은 좌절하게 됐다고. 그래서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게 이 공연의 이야기다.


“저는 진보적인 가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보수의 가치도 항상 함께 이야기돼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죠. 한쪽으로 쏠려 그것이 권력 구조를 형성하지 않도록 늘 견제가 필요해요. 그것이 상실된 시대라면 되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죠.”


김 연출은 인터뷰 말미에 두 가지를 강조했다. 일단 공공기관의 올바른 기능, 그리고 집회 문화다. 베를린에 연구 목적으로 가 있을 당시 그는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인종 차별의 역사를 비판하는 데모 포스터가 공공극장 이곳저곳에 붙여져 있었고, 그 극장의 예술감독이 직접 시위 현장에서 문화 정책에 관한 비판 연설을 했다. 또 시위가 끝나고 사람들은 밤에 클럽에 모여서 난민들이 만든 공연을 보고 함께 파티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참 이상해요. 외국 작품을 들여올 때는 굉장히 진보적인 작품을 소개하면서도, 한국 공공극장에서는 우리 이야기를 못하게 해요. 공공극장이 현 사회의 이야기를 정당하게 할 수 있는 기능, 그것이 중요합니다. 또 현재 우리는 집회가 끝나면 갈 곳이 없어요. 과거엔 경찰과 싸우는 등 폭력적인 모습도 있었죠. 그런데 지난해 변화된 촛불 집회 문화를 통해 느꼈듯,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이 집회에 친근함을 느끼게 되길 바라요. ‘집회 가면 큰일 나는 거 아냐?’가 아니라 집회에서 일어나는 공연, 전시 등을 즐기고 또 여기에 자신도 참여해 하고 싶은 소리를 마음껏 할 수 있게요.”


▲본 공연 시작에 앞서 김재엽 연출이 공연 소개에 나섰다. 그는 "현 시국에 관해 모두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생각을 담은 신작도 준비 중이다. 5월 두산아트센터에 올릴 ‘생각은 자유’, 11월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공연할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다. 베를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풀어내는 작품이다.


더 많은 시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토크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은 검열각하에 참여했을 때 공연이 끝나고 자유롭게 관객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극에서도 언급되는 도종환 의원이 실제 토크 프로그램에 참석하기도 했고, 부패한 정권에 쓴 소리를 마다않아온 방송인 김제동도 참석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김 연출은 “서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미래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며 앞으로도 토크 프로그램을 활발히 열 계획을 밝혔다.


검열백서도 준비 중이다. 검열 사태와 관련해 네 차례에 걸쳐 공개 포럼 및 세미나를 열었는데, 추후에도 토론회를 열면서 이 사건들의 내용을 기록하려 한다. 기록의 목적은 사실을 명확히 남겨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 연출은 “조사팀, 연구팀, 편집팀 등으로 약 50여 명이 백서 작업에 참여 중이다. 내년 초 발간이 목표”라고 말했다.


극 말미에 공연과 관련해 비하인드 스토리 영상이 나왔다. 박 연출의 ‘개구리’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포함해 김 연출의 인터뷰가 나온다. 검열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김 연출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래서 너 다음 작품 올릴 수 있겠니?”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영상은 끝을 맺는다. 그리고 김 연출의 공연이 블랙텐트에서 올라갔다.


“현 시국 문제가 당장 해결된다 하더라도 블랙텐트가 바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블랙텐트에 ‘임시 공공극장’이라는 팻말이 붙은 건 이유가 있어요. 사회가 외면하고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아하는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올리는 장을 만든 거죠. 계속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논쟁하지 않으면 또 흔들릴 수 있어요. 그래서 형태는 달라질 지라도, 단순히 시의적인 것에 끝나지 않고 이후의 비전을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을 꾸준히 함께 이야기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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