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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작가 공모 - 조각 ② 장용선] 가장 작은 나=거대한 우주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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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3호 김연수⁄ 2017.02.17 18:22:09

▲장용선 작가와 작품, ‘Darkmatter1408(다크매터)’. 스테인레스 스틸, 412 x 168 x 90cm. 2014.


그 조형물들은 허공에 커다랗고 유려한 곡선을 시원스럽게 그렸다. 멀리서 보면 그물처럼, 여성스런 망사천처럼 사방에서 오는 모든 빛을 통과시키며 가볍게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묵직한 중량이 느껴지는 거대한 금속 덩어리다. 

만들기로 탐구하기

조각가 장용선은 일정한 크기로 절단한 금속 파이프와 트위스티드 스테인레스 스틸(twisted stainless steel)이 작품의 기본 재료라고 말했다. 그가 사용하는 트위스티드 스테인레스 스틸은 파이프를 제조할 때 생기는 잉여물이라 일반적으로는 잘 유통되지 않는다. 파이프 생산 공장으로 찾아가 재료를 구하고, 석고로 만든 틀 위에 여러 가지 용접방법으로 작은 파이프 조각을 일일이 이어붙이고 며칠씩 표면을 연마해 작품을 완성한다.

“사실 용접하는 시간보다 석고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아르곤 용접을 하면 이런 오로라 빛이 나오죠.” 작품의 탄생 과정을 설명하는 작가의 모습은 각각의 단계가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호기심에서 비롯한 탐구와 연구로 비춰진다.

▲장용선, ‘Particle(파티클)’ 시리즈. (사진=장용선 작가 제공)


생명의 파편들

‘나는 무엇인가’. 장용선의 작업은 여느 예술가처럼,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라면 평생 같이 가는 그 진부하고도 어려운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자연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원인들에 집중했다. ‘낙엽이 움직이는 것은 바람 때문이고 바람은 공기의 압력 차이 때문이고…’ 추적의 과정은 작가 본인의 인간으로서 탄생과 죽음뿐만 아니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 즉 전 우주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결됐다. 

작가가 작품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Particle(파티클, 미립자)’ ‘Darkmetter(다크매터, 암흑물질)’ 등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고 알려진 요소들을 가리키는 과학용어다. 그는 우주의 별이 사멸을 맞이하며 폭발을 일으킬 때 엄청난 빛을 발산하는 ‘초신성(supernova)’, 우주의 생성 원인으로 현재 가장 적합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우주 대폭발(Big Bang)’을 이야기했다. 탄생이라고도 죽음이라고도 정의할 수 없는 폭발의 순간에 생겨난 우주를 이루는 가장 작은 요소들, 즉 미립자와 암흑물질에 대해 그는 ‘생명의 파편’이라고 표현한다. 물리적인 인간의 인체와 그 외부의 세계가 결국 이런 폭발로부터 탄생한 최소 단위의 요소들로 이뤄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개별의 인간 역시 우주에 연속돼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장용선, ‘Particle(파티클) SN 481119’. 스테인레스 스틸, 75 x 75 x 75cm. 2012.


존재를 형성하는 기본 요소의 생김새

이런 탐구의 시작 쯤, 작가는 철강공장 지역을 지나다 적재돼있던 금속 파이프 더미를 발견한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노을의 붉은 빛이 투과되고 있던 파이프 더미의 모습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파이프의 둥근 단면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현미경으로 본 세포 집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세포 집단들은 그의 작품에서 커다랗게 ‘파티클’과 ‘암흑물질’이라는 두 가지 분류로 구분될 수 있는 형태를 구성한다.

이 두 형태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파티클이 구(球) 같은 덩어리라면, 암흑물질은 그 덩어리가 뚫린 형태다. 다시 말해, 파티클이 닫힌 형태라면, 암흑 물질은 열린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철학에서 우주를 형성하는 기본 개념으로 회자되는 △양(positive)과 △음(negative),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확신할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어 추측하거나 신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들의 형상화이기도 하다. 

▲장용선, ‘Darkmatter(다크매터)’. 철, 189 x 240 x 264cm. 2010.


유기적 변화

장용선은 조형 작업, 즉 물성과 만들기가 가지는 성취감에 매료됐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오래 익힌 기술의 범주에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오래 한 듯했다. 그리고 매일 보는 드라마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철학과 미술의 근간이 되는 ‘정체성’에서 그가 표현하는 주제가 비롯됐다는 것(진부함)에 대한 답도 오랜 시간 구해 온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 그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미술 전공을 하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기술들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이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가 현재 내린 결론은 예술가의 작업이 프로로 여겨질 수 있는 조건은 ‘메시지(의식)의 여부’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즉 예술가 스스로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인지하고 작품 혹은 태도에 반영이 되어있는지의 문제라는 것. 더불어 그것이 어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양질의 음악을 들으면 음표를 읽을 줄 몰라도 감성이 전달되는 것처럼 미술 작품 역시 감성의 전달에서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주제라는 것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한 전달이 아닌 감동은 어디서 오는 건지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고. 

작가의 이런 고민들은 작품의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최종 결과물에는 제거되지만 작업 과정의 기틀이 되는 석고 틀의 형태의 변화가 대표적인 예다. 초기 작업의 석고틀의 형태는 그가 자연과 우주 현상에 가지는 호기심이 수학적 방법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구(球) 형태는 이미 나와 있는 기성품을 복제했어도 됐지만, 그는 대수학 작도법을 대입하며 직조(주조를 하지 않고 원재료로 직접 만드는 것)를 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은 더 어려운 방법을 선택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의 작품들은 마치 컴퓨터 3D 그래픽 툴에서 디자인 된 듯 깔끔하고 완벽한 인상을 준다. 

반면, 최근에 진행하는 작업이라고 그가 보여 준 석고틀은 조금 더 유기적이고 자유로운 선들이 보이는 형상이다. 평면의 지도에서 흘러내리는 석고를 지속적으로 올려쌓아 마치 땅이 융기한 것 같다. 이 석고틀을 바탕으로 만든 최종 조형물은 공중에 설치되는데 설치된 곳의 바닥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특정한 의미를 가진 지역의 지도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겪으며, 작가는 이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 것 같았다. 그가 다루는 재료-물질 역시 그의 행위에 조응하는 또 다른 개체의 자연물로서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장용선, Darkmatter(다크매터) 1401, 스테인레스 스틸, 231 x 150 x 83cm. 2014.


“칠흑 같은 천궁에서 발광하는 별은 내가 꾸는 꿈속에서 반짝이는 별빛과 통한다. 그렇게 나는 밤과, 어둠과, 하늘과 교신하면서 스스로가 우주에 연속된 것임을 안다.” 

장용선이 최근 재정리한 작품들의 주제는 ‘Luminescent in Darkness(루미네센트 인 다크니스)’ 즉 ‘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빛’이다. 탄생의 순간이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 탄생의 근원이다. 작가는 지난 날 어두운 반지하의 작업실에서 용접을 할 때 생기는 강렬한 불빛에 생긴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며 우주와 자신이 연결된 서사를 떠올렸다고 한다.

금속의 재료들과 공구들로 채워진 작업실 곳곳에는 잘 말려진 강아지풀 더미들로 만들어진 작업들이 있었다. 3년째 연구하고 있는 작업들이라고 했다. 금속의 물성에만 천착할 것 같았던 그의 성향에 대한 짐작이 자연의 모든 현상과 개체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작업 과정을 알고 난 뒤엔 섣부른 것이었다는 걸 느꼈다. 빛에서 태어난 파티클은 인간을 형성하고, 강아지풀을 형성한다. 그의 작업 공간에서 강아지풀과 인간은 하나의 세포이자 우주다. 

▲장용선, ‘Darkmatter(다크매터)1203’. 스테인레스 스틸, 274 x 203 x 58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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