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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죽고 나서 값 오른 화가가 환생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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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4호 김연수⁄ 2017.02.24 15:10:29

▲덴마크의 갤러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무명의 지젤.(스틸제공=머리꽃)


좁디좁은 한국 미술계지만 그 안에는 실체 없는 뒷이야기들이 무성하다. 한 사례로, 미술 시장에서 꽤 자리를 잡은 한 중견화가가 있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끝난 지 이미 오래됐고, 딱히 새로운 주제의 작품을 내놓을 것도 없이 늘 그리던 것을 그려도 그럭저럭 평균 이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의 작품이 어느날 부턴가 시장에서 가격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 술을 너무 즐겨 간에 무리가 오고 안색이 안 좋아지니,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 돌았던 것. 이런 말이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작가는 그날로 술을 딱 끊었다고 한다. 또 하나 떠도는 소문 중에는 억대로 팔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꽤 된 작가의 그림이 계속 발견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인이 된 작가의 유족들이 아예 위작화가를 고용해 작품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나름 앞뒤도 있는 이야기다. 

미술계 이야기?

미술계의 뒷모습이 바탕에 있는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덴마크에서 10년 동안 동양화를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온 ‘아티스트’ 인숙(지젤)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전시회를 열기 위해 갤러리를 찾지만, 확답을 얻지 못하고 덴마크에서 자신의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의 자녀를 교습하는 자리 밖에 구하지 못한다. 그 한 편에는 자신이 좋은 작품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있다고 믿고 있는 상업 갤러리의 젊은 대표 재범이 있다. 재범은 지젤 작품의 가능성을 보고 의욕적으로 전시회를 열고 차근차근 좋은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지젤의 심장이 멎는다. 요절한 작가가 되어 버린 지젤의 작품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재범과 갤러리 관계자들은 ‘더욱 위대한 아티스트 만들기’ 작전에 돌입한다. 하지만, 사망 선고를 받은 지젤이 다시 살아나고, 지젤의 작품을 둘러싼 갈등들이 시작된다. 

▲한국에 돌아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지젤은 유명 화가 박중식에게 직언을 한다.(스틸제공=머리꽃)


어떤 분야든지 작은 사회 안에서의 뒷이야기는 존재한다. 하지만 미술계의 이런 소문들에 조금이라도 더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는 그 이면에 ‘돈’과 ‘죽음’라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자극적인 소재가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는 예술의 가치를 신봉하는 예술가와 그것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두 주인공의 금전적인 성공 앞에서의 태도 가 큰 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그 주변에는 돈과 죽음 앞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재범의 동료, 컬렉터, 언론, 성공한 예술인 그리고 시민들이 존재한다. 블랙 코미디 성격의 이 영화 안에서 핵심 인물인 재범과 지젤은 진지한 반면에 주인공들의 감정에 절대로 이입되지 않고 툭툭 뱉어버리는 주변 인물들의 대사는 너무도 현실적이라 우스우면서도 촌철살인으로 다가온다. 

감독이자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경원의 입봉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이미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서울독립 영화제에서 예매율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아직도 보통의 삶에서 멀게만 느껴지는 미술계, 특히 미술 시장의 이야기가 이토록 주목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전, 그런 괴리를 고려하고도 미술계를 소재로서 채택한 이유가 궁금해져 감독과 제작진을 만났다. 다음은 김경원 감독(이하 ‘김’)과 백승환 프로듀서(이하 ‘백’)와의 인터뷰다. 

▲지젤과 재범의 만남 장면.(스틸제공=머리꽃)

Q. 재밌게 잘 봤다. 재미도 있었지만 미술 기자라서 그런지 객관적으로 마냥 즐기기보다는 의도치 않게 몰입했다. 무엇보다 미술계 이야기를 다룬 계기가 궁금하다. 미술과 어떤 연관이라도 있나?


김: 재밌게 봤다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전문적으로 미술계에 있는 사람들을 아는 정도고, 미술 관련 소식은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실질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미술계 쪽에 집중했던 이유는 ‘가치 판단’을 유형의 것으로 만들어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이 응축돼 있는 것이 흥미롭게 보였다. 


백: 감독과 나는 오랜 친구 사이다. 감독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집에 묵었던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모닝커피를 마시는 습관처럼 명화집을 보고 있었다. 명화집이 깨끗한 새 책이 아니라, 손때가 많이 묻고 낡아 있었다.


Q. 미술계의 이야길 다루면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제작 의도는?

 

김: 주인공 인숙(지젤)은 어렸을 적 미술 선생님께 받은 칭찬을 기억한다. 우리 세대는 유년 시절에 피아노, 미술 학원을 하나씩은 다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스스로 예술가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인숙의 마음에 우리의 모습에 비춰보면, 예술가든 일반직장인이든 사회 안에서의 과정을 겪으며 좌절하고 벽에 부딪히고, 꿈을 가지고 있다가도 한계에 다다른 모습과 다르지 않다. 


Q. 미술계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다른 사회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사회, 그리고 그 안의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말인 것 같다. 인숙의 성격이 일반적이진 않다. 정작 예술가들이 보기에도 저런 성격은 소위 ‘또라이’라고 볼 것 같다. 이것은 일부러 예술가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제시한 것인가?


김: 스테레오 타입으로서 제시한 것은 맞지만, 편견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는 앞으로 그가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복선 같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관찰하거나 참고하지 않았다. 


Q. 개인적으로 경매 장면과 ‘아티스트 만들기’를 기획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백미라고 생각한다. 가장 추천할 장면을 꼽자면? 


백: 나도 그 장면(기획 장면)이 가장 재밌었다. 시나리오의 초고가 그대로 반영됐다. 블랙 코미디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장면을 연기한 문종원 배우도 제일 좋았다고 하는 부분이다. 


김: 시나리오를 쓸 때 제일 술술 써진 부분이기도 하다.


Q. 대사나 인물 설정에 있어 눈에 띄는 은유들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재범의 눈’은 은유하는 바가 큰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까?


김: 재범은 자신이 진짜 작품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 인물이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눈에 대한 감각이 월등하다고 믿는 것이다. 모티브가 있다면 페터회의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비롯됐다. 처음 한글 제목만 봤을 땐 소설에 등장하는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읽었다. 보는 눈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아닌 걸 알았다. 하지만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제목은 극 중 지젤의 작품 제목으로도 쓰인다. 재범의 안경은 ‘자기 합리화의 도구’ 같은 것이다. 극 후반으로 갈수록 안경을 벗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Q. 재범이 인숙을 설득하며 하는 얘기가 인상적이다. 예술의 본질에 대해 인숙에게 절규하듯 얘기하는데, 현실에서 갈등하며 작업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그저 흘려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김: 캐릭터가 만들어 낸 이야기다. 스스로 궤변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인숙에게 던질 수 있는 모든 말을 던지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예술의 본질’까지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몰입이 되기 전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그렇기에 영화 전반에 냉소가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한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이기도 하다. 어쩌면 재범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예술의 본질이라기보다 산업 사회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백: 그런 거리감이 냉소적인 유머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미술계를 바라보는 시민의 반응이나 컬렉터가 지나가는 말처럼 하는 “요즘 누가 예술가병 걸린 사람처럼 그래?” 같은 대사가 그렇다.


Q. 엔딩에 대한 논란이 조금 있을 것 같다. 극 후반으로 갈수록 예상치 못한 일들이 속도감 있게 터져 나오다가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난 결말을 맞이한다. 엔딩에 관한 의도가 있나?


김: 우선 엔딩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 담고 있진 않다. 또한, 영상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관람이 끝난 후 극장을 나서는 관객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Q. 엔딩에서 보인 것과 같은 예술가(혹은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힘들기에 더 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꿈같은 이야기다.


김: 꿈같은 이야기니까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관객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에 앞서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인숙의 선택 역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싶다. 우주에 다녀 온 사람들이 오히려 신의 존재를 믿게 된다고 들었다. 다른 세상의 경험이 순수한 내면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미술계의 허위의식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술계와 상관없는 감독이 그 사회 바깥의 시선으로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표현한 세계는 그래서 더욱 날카롭고 적나라하고 우습게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영화는 우리의 삶에서 각자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 스스로 합리화 하며 쌓아 놓은 삶의 논리가, 특히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김 감독은 데뷔작이고 창작자의 입장으로 아무래도 예술가인 인숙에게 자신의 마음이 많이 투영된 것 같다고 한다. 반면 백 피디는 예술가를 매니지먼트 하는 재범에게 마음이 많이 간다고. 재범과 인숙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임에도 이상하게 감정이 이입될 주변 인물들이 많은 이 영화는 짧은 시간에도 많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이와 더불어 영화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관련한 짤막한 정보들을 보태본다. 개봉은 3월 9일.

▲지젤이 사망한 후 지젤 작품의 경매에 참여한 재범.(스틸제공=머리꽃)


▲지젤이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스틸제공=머리꽃)


여성 예술가의 생애
 
페미니즘 미술의 시작 격으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의 작품들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번째 시기 ‘괴물’에선 유년기 시절 아버지로부터의 성폭행, 이혼, 낙태 등의 트라우마가 일그러진 남성의 형상, 또는 상처 입은 여인의 형상 등으로 나타나며 감정 전달의 절정을 이룬다. 신경쇠약 등에 시달리던 그는 후반 시기에 정신적으로 안정된 듯 여전히 사회가 정한 여성상에 대한 비판의식은 유지하면서도 원색의 따뜻한 색감과 둥근 곡선이 강조된 조형작품 ‘나나’ 시리즈를 남겼다. 이 밖에도 근대 이후 여성 예술가들의 알려진 개인사에는 일반 시민들의 권리가 향상됐음에도 여전히 남성 예술가들에 종속돼 있거나 학대를 당한 경험이 많다. 그들의 개인사가 알려지고 회자되는 이유는 작품의 이해와 공감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런 사회 환경을 자신의 여성성 또는 기억을 드러냄으로써 인지 혹은 지적하고자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지젤의 작품은 이런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 포인트다. 

만다라

불화의 일종으로서 우주의 진리를 도형화 해 그린 그림이다. 불경이 쓰인 산스크리트어로 ‘만달(Maṇḍal)’은 본질이라는 뜻이며, ‘라(la)’는 ‘소유’와 ‘변한다’는 의미가 있다. 김 감독은 이 영화에선 변한다는 의미를 채용했다고 전한다. ‘변화하는 본질’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지젤의 작품 제목이 두 개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눈에 대한 감각’이고, 다른 하나가 ‘만다라’다.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감독이 숨겨놓은 은유로 짐작된다.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

예술가가 처음 붓을 잡기로 결심했을 때는 아무도 자신이 고흐와 같은 삶을 살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대한 작품을 남겨도 죽으면 무슨 소용일까.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질 수 있었던 피카소라는 인물이 있었음에도 죽은 뒤에나 그림 값이 올랐다는 고흐의 생은 한 예술가의 시작점부터 떠안고 가는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미술 시장의 확정되지 않은 이런 법칙은 ‘죽은 척’이라는 발칙한 아이디어로 연결되나 보다. 마크 트웨인의 단편 소설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는 영화처럼 화가의 죽음과 작품 가격 상승이 소재다. 영화는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작가 지젤이 만들어 낸 우연한 상황이 갈등의 계기가 되지만, 마크 트웨인의 소설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본격적인 사기극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존재한 화가 밀레와 그의 작품 ‘만종’을 등장시켜 더 흥미를 자극하는 이 소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이번 영화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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