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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 성지순례 ③] 덕후 프로젝트 “몰입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마”

“덕후, 발로 차지 마라. 한 번이라도 덕질해본 적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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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1호 김금영⁄ 2017.04.14 15:27:54

전시부터 카페, 페어 등 다양한 키덜트(kidult, 아이를 뜻하는 kid와 성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 성지들을 찾아가 그곳의 특징을 짚어보는 ‘키덜트 성지순례’ 세 번째 장소는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 전시 현장이다.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전에서 고성배의 '더쿠 메이커' 공간에 전시된 잡지 '더쿠(The Kooh)'에 써 있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지금이야 ‘키덜트’가 산업 분야에서도 각광 받는 위치다. 하지만 앞서 핍박이 있었다. 어렸을 때 만화책을 몰래 숨어서 보다가 들켰을 때 이어지던 부모님의 등짝 스매싱은 어른이 되면 더 했다. “언제 철들래?” 잔소리와 함께 한심하다는 시선이 얼굴을 찌른다. 하지만 이제 “장난감, 만화, 과자를 좋아한다”며 자신이 키덜트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예 대놓고 키덜트 관련 대형 페어가 열리기도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당당해진 사람들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이런 키덜트들에게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하는 방법을 한 수 제대로 가르쳐주겠다는 현장이 있다.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전이다.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키덜트는 ‘장난감 덕후’ ‘만화 덕후’ 식으로 덕후의 작은 카테고리 안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전이 열리는 전시장 일부.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다.(사진=김금영 기자)

덕후 또한 핍박을 겪어 왔다. 전시를 기획한 김채하 큐레이터는 “덕후라는 말은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됐다. 본래 오타쿠는 폐쇄적이고 중심에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의미가 컸다. 그런데 이 오타쿠라는 용어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의미 변형이 이뤄졌다. 발음상 귀엽게 오덕후로, 여기서 더 짧아져 덕후로 바뀌었고, ‘학위 없는 전문가’ ‘좋아하는 분야에 열정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 등 첫 의미와는 다르게 능력자, 몰입이 강한 사람이라는 뜻도 내포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도 했다. ‘덕질(덕후 행동)’을 중심으로 덕후의 습성 10가지를 연구하는 고성배 씨는 “과거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프로그램에 ‘오덕후’를 넘어섰다며 ‘십덕후’ 콘셉트의 출연자가 등장한 적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그 출연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좋아했는데, 그 모습이 당시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돼 아예 십덕후라는 용어 자체가 욕처럼 쓰이기도 했다”며 “하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만이 덕후의 전부가 아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이 점에서 모든 사람이 덕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덕후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박미나는 자신이 10년 동안 수집한 핸드폰 액세서리의 기록을 전시 중이다.(사진=김금영 기자)

김채하 큐레이터 또한 “전시는 덕후에 대해 부정적인 형태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점차 취향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몰입하며 가지게 되는 기질이나 자세, 행동양식의 의미를 조명하고자 했다”며 “덕후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동시대 사회문화적 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엔 11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각 작가의 좋아하는 분야 및 즐기는 방법은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김성재, 박미나 작가는 덕후의 가장 기본 소질인 ‘수집’을 선보인다. 김성재가 수집한 것은 다양한 캐릭터 피규어다. 유명 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군데군데 눈에 띈다. 이 피규어가 나란히 정렬돼 관람객을 반긴다. 키덜트가 특히 좋아할 공간이다. 김성재는 “수집 활동은 취미이자 창작의 시작”이라며 “피규어는 내 작업 전 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자 창작을 이어나가도록 자극을 주는 존재”라고 고백한다. 결국 그가 수집해 온 다량의 피규어들은 캐릭터 디자인 스케치부터 입체화까지 작품 구상에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며, 작가의 창작 과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김성재는 자신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존재인 피규어들을 한데 모아 선보인다.(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박미나는 핸드폰 액세서리를 수집했다. 과거 핸드폰 모델에서는 특히 액세서리가 중요 포인트였다. 당시 유행했던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소재로 핸드폰 액세서리가 많이 개발됐다. 나중엔  핸드폰 시장의 확산으로 교통카드와 USB 등도 액세서리로 등장하게 됐다. 작가는 이 수집 행위를 통해 과거 시대의 추억 또한 수집하고, 여기서 사람들이 손쉽게 소비하는 대중적 문화의 키워드를 읽는다.


송민정, 이권, 이현진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을 보이는 분야를 바탕으로 서브컬처를 재해석한다. 송민정의 화면은 매우 화려하다.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생성되는 티저 형식을 취했기 때문. 특히 SNS 문화가 형성되면서 SNS를 기반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고 사라지는 유행 문화의 양상을 엿본다.


▲이현진은 자신이 몰입했던 여러 만화의 유명한 장면들을 출판 만화의 컷 구성과 같은 연출로 꾸려서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이권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스타워즈’를 작업으로 끌어 왔다. 스타워즈 1~7편까지 등장했던 여러 캐릭터들 중 원한 및 적대 관계에 있었거나 애증 관계 등 영화에서는 절대 함께 있을 수 없었던 캐릭터들을 한 자리에 모아 ‘평화의 시대’를 구현했다. 이들이 함께 밴드를 결성해 파티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 연출돼 원작 팬들에게도 웃음을 자아낸다.


이현진도 여러 화면을 모았다. 자신이 몰입했던 여러 만화의 유명한 장면들을 출판 만화의 컷 구성과 같은 연출 방식을 활용해 시각화했다. 만화 속 기존 캐릭터와 자신의 캐릭터가 함께 생성하는 이야기를 중첩시키는 식으로, 새로운 콘텐츠 형성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또한 지금은 사양길인 출판 만화에 대한 일종의 헌정의 의미도 부여했다.


▲영화 '스타워즈' 속 원한 관계의 캐릭터들이 어울려 만드는 '평화의 시대'를 구축한 이권의 작품.(사진=김금영 기자)

김이박과 진기종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취미 활동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김이박은 식물과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기르는 식물이 병들었을 때 도움을 주며 정서적 유대를 형성해가는 ‘이사하는 정원’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간의 프로젝트를 선보일 뿐 아니라, 식물에 대한 자신만의 정보가 담긴 아카이빙, 식물을 치유해주는 식물요양소 등의 작품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식물을 좋아하고 아끼는 ‘식물 덕후’의 모습이 드러난다.


진기종의 취미는 ‘플라이 피싱’이다. 동물의 깃털과 같은 자연의 재료로 직접 만든 가짜 바늘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전시장에 아예 이 플라이 피싱 연구소를 재현했다. 가짜 바늘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 과정을 알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이 취미 활동을 통해 작가는 작업에 대한 영감도 얻는다. 가짜 바늘이 진짜 물고기를 잡는 것처럼, 실제의 모방을 통해 진본을 얻어내는 행위에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작업들의 개념과 연결시킨다.


전시장에서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파고드는 모습이 매우 당당하다. 이를 통해 “당신 또한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몰입할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를 건넨다. 이 당당함과 몰입의 권리에 대해 한 수 배워볼 만하다. 전시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실 2, 프로젝트 갤러리2에서 7월 9일까지.


[덕후 4인의 작업 이야기]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제대로 즐길 권리와 나름의 방법을 찾은 4인. 전시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① ‘더쿠 메이커’ 고성배
“덕질에 대한 시각의 전환”


▲덕질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시도하는 잡지 '더쿠'를 발간해 온 고성배.(사진=김금영 기자)

“열 권을 모으면 십덕후가 됩니다.” 고성배가 선보이고 있는 잡지 ‘더쿠(The Kooh)’에 대한 설명이다. 고성배는 덕후의 습성 10가지를 연구하는 잡지를 출간해 왔다. 각 잡지는 ‘중이병’ ‘공상’ ‘은폐엄폐’ ‘집착’ ‘혼자 놀기’ ‘제작’ ‘만화’ ‘수집’ ‘배회’ 등의 주제를 다뤘다. 현재 8권까지 출간된 상태다.


이번 전시는 기존 잡지에 소개된 덕후의 습성 10가지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먼저 전시장 입구에는 자신이 어떤 타입의 덕후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여러 질문을 배치했다. ‘덕후 자가진단’ 공간이다. 이 질문의 답을 따라가다 보면 A부터 D까지 타입이 나온다. A는 수집덕후, B는 공상덕후, C는 배회덕후, D는 홀로덕후로 각각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나는 눈을 뜨며 꿈을 꾸오” “땅 보고 다닌 자 동전을 얻으리”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슬로건을 가졌다. 본 기자는 A타입, 고성배 씨는 C타입 덕후가 나왔다.


▲'덕후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질문이 벽에 붙여졌다. 진단에 따라 A부터 D타입의 덕후까지 종류가 나눠진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장에서 나온 타입별로 덕질을 즐겨볼 수 있도록 내용이 구성됐다. 한 예로 A타입이 나온 본 기자는 오컬트 자료가 모아진 ‘중이병’부터 시작해 공상을 하며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고, 좀비를 피해 준비하는 물품 등의 순서가 이어져 웃음이 터졌다.


고성배는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쓸모가 있느냐, 없냐에 따라 가치를 나눈다. 그래서 돈이 되지 않으면 ‘왜 그걸 해야 해?’라는 식으로 볼썽사납게 바라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한 사람을 덕후로 지칭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또한 누구나 자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덕질 분야’가 있음을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성배, '더쿠 메이커'의 만화 부분.(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또한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키덜트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확실한 사람들이다. 키덜트 또한 덕후에서 파생된, 덕후에 속한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고도 짚었다. 이어 “좋아하는 것을 하는 행위가 쓸데없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만드니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쓸모없는 일에 돈을 많이 쓰더라”며 “그리고 키덜트는 이제 산업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받으며 성공한 사례가 됐다. 기존 정해진 자본주의 잠식구조의 기준을 뒤엎고, 쓸데없지만 좋아하는 것에 당당한, 그리고 여기에서 수익까지 창출하는 ‘성공한 덕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성배는 ‘더쿠 메이커’에 오늘도 한창이다.


② ‘킬빌의 재해석’ 신창용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영감의 원천”


▲신창용은 자신이 쿠엔틴 타란티노와 코엔형제 영화의 덕후라고 밝혔다.(사진=김금영 기자)

신창용은 본인을 쿠엔틴 타란티노와 코엔 형제 덕후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영화, 음악 등을 소재로 작업을 이어 왔다. 본래 있는 영화의 유명 장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화면에 담는다. 이를 그는 ‘덕화’라고 칭한다.


신창용는 “덕화는 덕후가 그린 그림”이라며 “2005년 데뷔 때 이소룡을 그렸고, 이후 꾸준히 덕화를 그렸다. 단색화가 열풍일 때 나는 덕화를 그렸다. 지난해엔 ‘덕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며 “특히 타란티노의 영화를 20년 넘게 보고 그려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과 코엔 형제의 ‘파고’의 특정 장면을 포착한 그림을 선보인다”고 소개했다.


▲신창용, '킬빌(Kill Bill) 1'. 캔버스에 아크릴, 70 x 117cm. 2017.

전시장 한 켠에 노란색 벽이 눈에 띈다. 여기에 빨간색을 바탕으로 한 ‘킬빌’의 배우 우마 서먼의 유명한 장면이 더욱 돋보인다. 칼을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수련 도중 우마 서먼의 칼 위에 스승이 올라간 장면도 있다. 그림 옆에는 관련 영화의 유명 장면 영상도 함께 전시돼 영화와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신창용은 자신이 처음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덕후 문화가 국내에 없었다고 한다. 신창용은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몰두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중에 덕후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친구들이 그에게 덕후라는 명칭을 붙여줬다고 한다.


작가 또한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한다는 의미에서 덕후라고 불리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아직 무식한 덕후이지만 나름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해 왔다. 보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꾸준히 이어온 덕질의 결과물이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전시 소감을 밝혔다.


③ ‘지우맨 에피소드’ 장지우
“특촬물 속 주인공으로 직접 등장”


▲'지우맨 에피소드'로 특촬물(특수촬영물)에 대한 재해석을 선보이는 장지우.(사진=김금영 기자)

후레시맨과 파워레인저를 기억하는가? 지금 보면 유치해 보이는 특수 효과가 어렸을 땐 왜 이리 멋있어 보였었는지. 지금 보면 어설프지만 역시 특촬물(특수촬영물)을 볼 때의 감성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때 정의를 꿈꿨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장지우는 이 특촬물을 전시에서 선보인다. 특촬물은 일본의 서버컬처 중 하나로, 마니아들 사이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해 왔다. 한국에서도 후레시맨, 파워레인저, 우뢰매 열풍을 일으켰다. 장지우는 “서브컬처를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어렸을 때 일본 문화 영향을 받은 세대가 성장해 이 관심을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라며 “나 또한 관심 있는 주제라 직접 작업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우맨 에피소드'의 한 장면. 영웅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단순한 서사 구조 아래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연출된다.(사진=김금영 기자)

특촬물의 기본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악에 맞서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영웅이 주인공이다. 장지우는 ‘지우맨: 비 더 히어로(Be the Hero)’ 프로젝트에서 직접 영웅으로 변신하며 모든 등장인물을 스스로 연기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악당의 존재가 웃음을 자아낸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공룡 인형, 그리고 비둘기가 악의 축으로 등장한다. 장지우는 “영웅으로 변신해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서사 구조 속 지우맨의 영웅 성장 서사를 그린다. 괴수를 제작할 때는 동물을 인격화하는 게 일반적인데, 현실에서 가장 자주 마주할 수 있는 비둘기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괴수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또 특촬물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가도 등장한다. 장지우가 노래의 가사에 들어갈 문장을 대표적으로 몇 가지 선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작곡, 작사 과정을 거쳤다. 영웅으로 변신할 때 입는 의상은 여우를 기본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장지우는 “그간 특촬물 영웅을 살펴봤는데 여우를 바탕으로 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여우를 기본 콘셉트로 잡았다. 여기에 전문가의 도움과 조언을 받았고, 전문가들이 의상을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이전 특촬물처럼 장지우의 영상도 에피소드 형태로 이어진다. 영상을 보면 지우맨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활약, 좌절, 성장까지 모든 연대기를 느낄 수 있다. 유명 영화 ‘터미네이터’의 콘셉트가 생각나는 지점도 있다. 장지우는 “앞으로도 에피소드는 이어질 예정”이라며 아직 ‘지우맨’이 끝나지 않았음을 밝혔다.


④ ‘덕후의 기원을 찾다’ 조문기
“나는 덕후가 아니에요”


▲조문기는 '초자연현상 마니아 류혹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다른 작가들이 ‘덕후’라고 불리는 걸 반가워하는 반면 조문기는 “나는 덕후가 아니다”는 말로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조문기는 인터넷 유머 중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다”라는 말을 보고 재미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남들이 볼 때는 똑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각기 다른 숨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것. 그래서 그의 말 또한 자신은 덕후가 아니지만, 또 덕후이기도 하다는 말과 연결된다.


조문기는 이번 전시 의뢰를 받고 아예 몰입할 주제를 정했다. 그가 생각한 덕후는 어떤 한 분야에 아주 몰입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기(氣) 체험이라든지, 사이비 종교 등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는 덕후의 모습이 발견했다고 한다. 남들은 손가락질 할지라도, 이들은 그들이 믿고 싶은 것을 맹목적으로 믿을 뿐이었다. 결국 덕후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사회에 있어 왔다는 것. 조문기는 “덕질도 맹신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조문기, '초자연현상 마니아 류혹성'. 컬러, 스테레오 단채널영상, 12분 28초. 2017.(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한 ‘초자연현상 마니아 류혹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실제로UFO의 존재를 믿는 강의에도 찾아 갔었고, 비과학적 맹신의 현장 곳곳을 방문했다. 조문기는 “독특한 현장이 많았다. 몸은 하드웨어이고, 우리의 정신인 소프트웨어는 우주의 외계인이 갖고 있다며, 그래서 외계인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어떤 모임에서는 피라미드 구조 안에 우유를 넣으면 피라미드의 에너지를 받아 우유가 멸균이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 말들을 바탕으로 전시장에 다큐멘터리 및 설치물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한때 열풍의 주인공이 됐었던 '수맥의 흐름을 찾는 기구'도 등장하고, 외딴 곳에 찾아가 알 수 없는 정체의 음식을 요리하는 작가의 모습도 보인다. 이 모습을 보고 “저 사람 왜 저러나”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이 고정관념에서 나올 수 있음을 작가는 경계한다. 사람들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사회 안에서 나름 정해 놓았고, 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고정관념이 덕후에도 적용돼 덕후 자체에서도 ‘고정된 덕후’ 이미지가 형성된 것은 아닌지, 이에 대한 고찰도 느껴진다.


조문기는 “기존 평면 작업을 할 때 인간 사이의 갈등과 맹신에 대해 다뤄 왔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사람들의 심리가 주제였다”며 “이번에 덕후를 주제로 관심 있는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고, 기존 사람들이 지닌 심리과 연결되는 지점을 느껴 흥미로웠다. 앞으로도 이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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