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뉴월의 프로젝트 공간인 오뉴월 이주헌이 ‘과학과 예술’을 중심으로 한 수잔 엔커, 그리고 휴 렌이의 전시를 마련했다.
수잔 엔커는 바이오 아트의 선구적 예술가이자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 순수미술과 학과장이다. 상하이 SVA 디렉터인 휴 렌이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해 왔다. 같은 공간에 열리는 두 작가의 개인전은 개별적이면서도 동시에 과학과 예술 사이의 다학제적 시각연구라는 중심축을 공유해 눈길을 끈다.
먼저 수잔 엔커의 개인전은 ‘생태계 블루스: 흐트러진 지구를 수선하기’가 주제다. 수잔 엔커가 이어 온 바이오 아트란 생물학과 예술의 결합, 즉 자연과 과학기술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창의적인 생산 활동을 뜻한다. 수잔 엔커가 운영하는 SVA의 바이오 아트 실험실에서는 시각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현미경, 각종 해골 및 생물 표본, 해부학 실습 도구, 식물 표본실, 수족관 등 최신 생물학 관련 도구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창조한다. 이를 통해 발전된 생물학 기술이 어떻게 사회, 윤리,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
예술가로서 수잔 엔커는 디지털 조각, 설치, 대형 사진, LED 조명을 통해 키운 식물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예술과 생물학의 융합을 시도한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무지개 직기 한국’ 은 자연물과 인공물을 200개 가량의 펫트리 접시(실험용 유리 접시)에 색깔 별로 올려놓은 작품이다. 자연물과 인공물이 지닌 물질 자체의 색을 실험용 유리 접시에 제시함으로써, 디지털 시대 RGB 삼색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물질이 가진 색에 대한 지적이고 감각적인 의구심을 유발한다. 특히 이번 한국 전시에서는 한국 전통 식료품을 이용해 한국적 물체와 색에 대한 본질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재욱 큐레이터는 “펫트리 접시는 단순한 유리 접시지만 과학의 수많은 혁신적 발명이 이 작은 유리 접시를 통해 나왔다는 점에서, 이 물체가 인류의 역사에서 의미하는 바는 크다”며 “이 유리 접시는 유기적 감각과 물질을 연구의 대상으로서 전환하고, 지적 질서를 도출시켜 논리적 창조의 발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3D 프린트로 제작된 원형 입체물 ‘원격 감지’, 작가가 플로리다 키의 열대 리서치 연구소를 여행하면서 유리 탱크 안의 산호 표본을 촬영한 영상 작품 ‘유전 종자 은행’ 등도 선보인다.
휴 렌이는 ‘프로텍션 에러’라는 주제 아래 과학과 예술의 다학제적 접근에서 발견되는 공통적 실행구조는 물론, 예술가와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의 유사성에도 주목한다. 전시 타이틀인 ‘프로젝션 에러’는 윈도우 환경에서 시스템 착오나 사용자가 금지된 영역에 접근했을 때 흔히 발생되는 오류 코드에서 차용됐다. 송고은 큐레이터는 “오늘날 과학 기술의 진보가 인류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공고한 명제 아래 구축한 접근 불가능의 영역과 그에 따른 사회적 오류에 관한 질문들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생물학적 기술 분야와 시각언어의 이음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대표적으로 ‘셀tm 헤븐(Cells Heaven, 2017)’은 일상과 가장 밀접한 생물학 기술 중 하나인 백신을 둘러싼 여러 논쟁들에 대한 예술적 재해석을 담았다. 백신은 한 의학 저널이 진행한 ‘가장 큰 의학적 중대사건’ 중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많은 인류의 생명을 살린 주요 과학기술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최근 여러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면서 각종 이권과 특정 정치적 배경과 관계한 것으로 보는 시각들도 생겼다.
작가는 백신의 보급에 사용되는 동일한 유리병에 바이러스 이미지를 드로잉하는 간결한 제스처를 통해 과학과 예술이 현상을 증명하기 위해 시도하는 실재와 가상 사이의 공통적 실행 구조를 비교한다. 또한, 최근 거론되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사이에 벌어지는 사회적 모순들을 알리는 대안적 미디어로의 역할에 대해 오늘날 과학자와 예술가 모두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역설한다.
스페이스 오뉴월 측은 “이번 전시는 미래 사회에 예술이 갖는 또 다른 사회적 역할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오뉴월 이주헌에서 6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