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스페이스 풀(디렉터 이성희)은 8월 13일까지 기획전 ‘무용수들’을 연다.
전시는 일상 속 수많은 몸짓들 중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 대해서 짚는다. 이 몸짓은 시위(줄리안뢰더), 폭동과 진압(이고르 그루비치), 난민들의 탈출행렬(할릴알틴데레) 등 정치적 사건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거나, 군대의 체조나 기 수련 혹은 선거유세 같은 매뉴얼화 된 동작(서평주, 옥인 콜렉티브, 안정주) 혹은 히스테리적 경련과 같은 병리적 제스처(요아킴코에스터) 등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갖는 ‘내용’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예술가들은 이들의 몸짓이 가진 형식적 차원에 주목함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지평을 발굴한다. 몸짓의 내용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형식 그 자체에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는 것.
예술가들은 몸짓이 가진 원래의 목적을 ‘괄호침으로써’ 오히려 몸짓의 미학적, 정치적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가들이 영상과 사진 매체를 통해 포착한 이 몸짓들은 매우 복합적인 층위를 가진다. 미리 프로그램화돼 있는 상투적 움직임기도 한 동시에 돌발적인 동작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이 과정을 위해 사진과 영상을 사용한다. 아트 스페이스 풀 측은 “19세기에 에드워드 머이브릿지과 쥘 에티엔마레이가크 로노포토그래피(연속사진)를 발명하고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 이래, 영상매체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움직임을 가시적으로 포착하려는 시도였다”며 “특히 인간 신체의 운동은 그 중요한 타깃이었다. 그러나 영상매체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운동을 있는 그대로 포착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영상매체에 의해 포착된 인간의 신체적 움직임은 어딘가 기묘하고 환상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짚었다.
이어 “영상매체는 결국 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운동의 환영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 전시가 보여주고자 하는 ‘순수 수단으로서의 몸짓의 가시화’도 이 문제와 연결된다. 영상매체 그 자체가 운동을 기계적으로 분해하고 재결합함으로써 이미 움직임을 그 목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점에서 ‘무용수들’은 단순히 ‘순수 몸짓의 가시화’를 탐구하는 전시가 아니라 ‘영상매체가 순수 몸짓의 가시화를 위해 하는 일’을 탐구하는 전시라고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아트 스페이스 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