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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옛날엔 '몇 평'이 공간의 기준…디지털 시대 기준은?

이배경 작가가 펼친 ‘공간 & 시간, 상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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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7호 김금영⁄ 2017.08.03 17:05:49

▲이배경, '큐브 인 큐브 - 제로 그래비티 스페이스'.(사진=아트사이드 갤러리)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과거엔 평수가 얼마가 되는지가 공간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또 넓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 공간이 어느 장소에 위치하는지도 공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 단체 카톡방이 있다. 이 카톡방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의 크기는 어떻게 가늠할 것이며, 또 위치는 어디라고 판단할 것인가?


디지털 시대에 모호해진 공간의 개념을 끌어오는 ‘공간 & 시간, 상념’전이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8월 20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지난 10여 년 동안 미디어를 이용해 시간, 공간, 몸을 주제로 한 작업을 이어 왔다. 그리고 이번엔 ‘공간과 시간, 감각의 확장’을 개념으로 신작을 들고 왔다.


▲1층 전시 공간을 AR(증강현실)용 스마트폰으로 살펴보면 흰 육면체가 떠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 공간은 특별하게 구성됐다. 일단 1층 윈도우 공간엔 ‘큐브 인 큐브 - 제로 그래비티 스페이스’가 설치됐다. 3D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미디어 영상 작업이다. 50인치 모니터에 무중력 공간이 24시간 계속 펼쳐진다. 윈도우를 지나 지상 1층에 들어서면 빈 공간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빈 공간이 아니다. 전시장 1층에 구비된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용 스마트폰으로 그 공간을 비추면 흰색 육면체가 무중력 공간에서 부유하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공간 안에 또 하나의 공간을 창출한 셈.


지하 1층에서는 시야가 갑자기 확대된다. 끝없이 무한대로 펼쳐진 것 같은 공간이 전시장 벽면 위 영상에 등장한다. 그리고 1층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이용해 봤던 육면체가 여기에서는 큰 크기로 등장한다. 이 육면체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서로 부딪히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부유한다. 그리고 바람 소리가 계속 전시장에 들리면서 ‘지금 내가 어떤 공간에 있는지’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배경, '제로 그래비티 스페이스'.(사진=아트사이드 갤러리)

이배경 작가는 미디어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을 작업에 접목시켰다. 기술을 어디까지 작품에 사용할 것인지가 그에게는 늘 고민이라고 한다. 작가는 “작업에 AR 기술을 끌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디어 작업을 할 때는 항상 힘든 지점이 있다. ‘위험한 장난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기술적인 신기함에만 매료될 위험이 있다. 작업을 만든 의도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지는 이미지가 너무 신기해 ‘이거 뭐야? 너무 재미있어!’ 하고 열광하고는 바로 관심이 식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작가 또한 이런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가 어렸을 때 TV가 처음 나와 너무 신기해 하루 종일 앞에 붙어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 내용 자체를 보기보다는 네모 상자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 부분만 집중해서 봤다고. 그러다보니 프로그램 내용은 머리에 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재미와 신기함 위주로 흘러갈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생경함의 재미 정도만 지키고, 최대한 화면을 단순화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화면은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고요하다.


미디어 아트라는 위험한 장난감


▲이배경, '제로 그래비티 스페이스'.(사진=아트사이드 갤러리)

전시장 전체에 깔린 은은한 바람 소리도 작가가 직접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었다. 전시장 네 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엇갈리게 소리가 나와 소리 또한 움직이는 것 같다. 고요한 그의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면서도 집중을 해치지 않는 정도다.


작가는 “기술 개발자와 미디어 아티스트의 차이는 기술의 사용 목적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 개발자는 기술의 본래 사용 목적을 따라간다. 즉 TV를 만든다면 그 TV가 잘 나오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미디어 아티스트는 기술의 본래 목적을 따라가지 않는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기술 개발자를 따라갈 수 없다. 대신 작가는 TV가 기술적으로 잘 나오지 않더라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방식이 맞닿는다면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시장에 TV를 설치하고 드라마가 아닌 다른 것을 틀어놓는다는 개념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화면을 단순화시키면서 작가가 하려 한 이야기는 공간, 시간, 그리고 상념에 관한 이야기다. 공간은 물리적인 속성에서 점점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의 발전이 더디었던 시대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재 모두를 경험한 작가에겐 이 변화가 더욱 체감됐다.


▲전시장 지하 1층에 이배경 작가의 미디어 아트가 설치된 모습.(사진=아트사이드 갤러리)

“저는 TV가 없을 때 태어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10대 아이들 누구나 스마트폰을 당연하다는 듯 들고 다니죠. 그리고 이 스마트폰에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 수많은 소통의 공간이 만들어졌어요. 과거 TV를 통해서는 특별히 다뤄지는 이야기들만 소통됐는데, 지금은 일분일초 흘러가는 시간 자체가 가상의 공간에서 소통 거리가 돼요.”


이런 가상 공간이 생김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많이 다양해졌다. 물리적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은 직접 어떤 장소에서 만나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선호한다. 반면 가상 공간이 더 익숙한 세대는 스마트폰 속 가상의 공간을 통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과거 공간에 물리적인 차가운 속성이 강했다면, 현재의 공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면서 소통의 장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며 “이 변해가는 공간, 그리고 거기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관한 상념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같이 생각을 공유해보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작품 속 끝없이 펼쳐진 공간에서 부유하는 육면체들이 꼭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 같다. 힘든 세상 속 거칠어지는 사람들에게 ‘각져 있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각진 사람들이 배회하는 느낌이랄까. 또는 각자의 가상공간을 구축한 모습 같기도 하다. 물리적인 땅, 공간은 사지 못할지라도 디지털 가상 공간에서는 누구든 SNS,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의 공간끼리 서로 안 부딪히려고 여기저기 부유하지만, 그 가운데 충돌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이 충돌로 인해 또 새로운 관계가 생기고 나름의 소통이 여러 공간에서 계속 이어진다.


▲이배경 작가.(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작가는 “미술의 기초를 공부할 때 정육면체는 필수적으로 그린다. 그 점도 있었고, 공간의 개념이 사각의 형태로 이야기될 때가 많았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기에 정육면체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한 번쯤 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변화하면서 수많은 과정을 겪어 왔는데, 이 이야기를 그냥 쌓아두는 게 아니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이건 앞으로 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이기도 하다.


“이전에 ‘이게 현실이 되겠어?’ 하는 게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세상이에요. 2009년 개봉 영화 ‘써로게이트’를 비롯해 많은 공상과학 영화가 로봇 아바타 이야기를 다뤘죠. 제 아들이 제 나이 정도 됐을 땐 이 또한 실제로 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해요. 또 그때는 공간, 시간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죠. 그 변화의 흐름을 계속 놓치지 않고 지켜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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