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소장 오성환)는 대한제국 선포의 역사적 현장인 덕수궁을 배경으로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 빛·소리·풍경’전을 연다. 전시는 덕수궁 내 중화전 앞 행각, 함녕전 등 7개의 장소에 강애란, 권민호, 김진희, 양방언, 오재우, 이진준, 임수식, 장민승, 정연두 등 한국 작가 9명의 9점 작품을 9월 1일~11월 26일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2012년 덕수궁에서 선보인 ‘덕수궁 프로젝트’의 계보를 잇는 궁궐 프로젝트다. 참여 작가들이 덕수궁 내 공간 곳곳을 탐구하며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신작을 구상, 제작, 설치하는 장소 특정적 현대미술 전시다. 올해로 120주년이 되는 대한제국 선포(1897년)를 기념하며, 대한제국시기를 모티브로 덕수궁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조형적인 접근을 시도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직후 선조가 머물며 왕궁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밝히며 강한 주권 의지를 표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참여 작가들은 수 개월간 덕수궁을 출입하며 이곳에 내재된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공간의 특성을 받아들여 본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전시 동선은 관람객들의 입장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덕수궁 대한문으로 입장해 처음 만나게 되는 중화전 앞 행각에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계·폐회식 음악감독 양방언과 미술가, 가구 디자이너이며 황신혜 밴드로도 활약했던 장민승의 공동작품 ‘온돌야화(溫突夜話)’가 소개된다. 장민승은 더 이상 실존하지 않아 기록물로만 확인할 수 있는 한국 근대시기의 건물 및 생활상들을 재발굴해 아날로그 슬라이드 필름으로 풀어냈다. 이에 양방언의 곡을 더해 시각과 청각을 감각적으로 두드리는 풍경을 선사한다.
이어서 석조전 본관과 별관을 잇는 계단과 복도에는 김진희, 정연두의 작품이 설치된다. 김진희는 전자제품들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 재가공해 내부에 숨어있던 색, 기능 등을 바깥으로 도출시킨다. MP3 스피커, 라디오부품들을 새로운 형체로 재탄생시킨 ‘딥 다운–부용’을 통해 다사다난 했던 덕수궁의 역사를 이미지화함과 동시에 청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게끔 한다.
정연두의 ‘프리즘 효과’는 대한제국 시기의 고종황제와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시각을 네 개의 시선으로 분류해 사진으로 구현한 설치 작품이다. 네 면이 막힌 대형 가벽 위에 두 사람을 바라본 사적인 시선, 치욕의 시선, 공적인 시선, 외국 열강이 바라본 타인의 시선을 담은 사진이 설치된다.
석조전을 지나 걸으면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이층 건물인 석어당의 대청마루에서 권민호의 대형 드로잉 ‘시작점의 풍경’을 만난다. 석어당의 정면 외관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표현해 낸 이 작품에는 대한제국 시기와 현대의 덕수궁 주변의 모습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들어가 있다.
한때 고종황제의 알현실로 사용됐던 덕홍전에는 강애란, 임수식의 작품이 설치된다. 2008년부터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라이트 북 작업을 진행해온 강애란은 조선왕조실록, 고종황제가 즐겨 읽던 서적 및 외교문서 그리고 황실 문화, 예술 등에 대한 자료를 재현해 황제의 서고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을 완성했다. 임수식은 ‘덕홍전에 책가도가 있었다면 어떤 책들이 그려져 있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병풍 형식의 책가도 ‘책가도389’를 제작했다.
고종황제의 침전이며 승하하신 장소이기도 한 함녕전에는 이진준의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 불면증 & 불꽃놀이’가 프로젝션된다. 구한말 일제의 강압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고종황제의 심경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표현한 영상 작품이다.
전시의 종착점이며 그동안 일반인에게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함녕전 앞 행각에는 오재우의 VR 작품 ‘몽중몽(夢中夢)’이 소개된다. 작가는 덕수궁이 고종황제가 원대한 꿈을 품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던 시발점이라 봤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덕수궁은 여러 꿈들이 모이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명명해 관객들이 행각 내부에 누워서 영상화된 꿈의 이미지를 VR로 체험하게 한다.
한편, 9월부터 11월 사이에는 참여 작가를 개별적으로 초청하여 큐레이터와 아티스트의 일대일 토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전시와 연계하여 3개의 특별 강연과 1개의 영상 스크리닝, 1개의 공연도 열릴 예정이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