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또 하나의 대형 창작 뮤지컬이 탄생했다.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성공시킨 왕용범 연출이 이번엔 새로운 작품으로 ‘벤허’를 올렸다.
뮤지컬 ‘벤허’는 루 월러스가 1880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서기 26년, 명망 높은 유대의 귀족 벤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벤허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메셀라가 로마의 장교가 돼 돌아온다. 메셀라는 벤허에게 유대의 폭도 소탕을 도와달라고 하지만, 벤허가 이를 거절하면서 이들 사이에 균열이 간다. 이 가운데 벤허의 여동생 티르자가 총독의 행군을 구경하다 실수로 기왓장을 총독 머리에 떨어뜨리고, 메셀라는 벤허 가문에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반역죄를 씌운다. 벤허의 여동생과 어머니는 감옥에 갔다가 병에 걸리고, 벤허는 로마 군함의 노를 젓는 노예가 된다. 그러다 벤허는 사령관 퀸터스의 목숨을 구하면서 자유의 신분을 얻어 로마의 귀족이 되고, 메셀라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운다.
‘벤허’가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기대감과 동시에 우려를 낳았다. 탄탄한 원작이 기대와 우려 모두를 낳았다. 탄탄한 원작을 영화, 드라마, 공연 등 다양한 형태로 보고 싶은 욕구는 기대감을 낳았다. 하지만 자칫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특히나 ‘벤허’ 원작 소설은 매우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터.
이 가운데 뮤지컬 ‘벤허’는 우려를 많이 덜어낸 모습이다. 무대 위의 공간적 제약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영리하게 풀어냈다. 이를 가장 잘 풀어낸 지점이 해상 전투 장면. 무대 위에 대형 세트가 들어선 동시에 바다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홀로그램 영상이 함께 펼쳐져 관객이 보다 공간을 넓고 장대하게 느낄 수 있는 효과를 줬다. 영상은 공연 막바지 예수가 채찍을 맞으면서 골고다 언덕으로 걸어가는 장면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이 장면에서는 화려한 세트를 내세우기보다는 아득하게 보이는 영상으로 아련함을 준다.
총 6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화려한 세트가 돋보이는 건 전차 경주 장면이다. ‘벤허’의 뮤지컬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가장 궁금증을 자아낸 부분이 해상 전투 장면과 더불어 바로 이 장면이다. 원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자 벤허와 메셀라의 갈등이 폭발하는 극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무대 위에 잠시 암전이 이어진 뒤 거대한 여덟 마리 말이 무대에 등장한다. 실제 크기를 방불케 하는 말과 전차 위에 배우들이 자리를 잡고, 무대는 회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퀴에는 불꽃이 인다. 배우들은 그대로 서 있지만 무대 위에는 역동감이 넘친다.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는 처음엔 복수로 흘러가지만, 나중엔 용서와 깨달음으로 향해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이 만만치는 않다. 단순 증오와 복수심으로 이야기가 치닫지 않게 하기 위해 뮤지컬에서는 왜 메셀라가 벤허를 배신하게 됐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름의 설득력을 높인다. 벤허와 메셀라가 서로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며 목소리를 높인다면, 벤허를 사랑하는 에스더와 어머니 미리암은 부드러움으로 극을 감싸 안으며 강약의 조화를 이룬다. 또 어둡고 무겁게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 속 유대의 로마총독인 빌라도 캐릭터를 일명 ‘분위기 메이커’로 강화시키면서 한숨 쉬어갈 수 있는 템포를 마련했다. 여러 면모로 신경 쓴 부분이 돋보인다.
한 해 수많은 창작 공연이 올라가지만 이중 제대로 자리를 잡아 꾸준히 재연을 선보이는 게 굉장히 어려운 현실이다. 이 가운데 뮤지컬 ‘벤허’는 공연계에 첫 신호탄을 쏴 올렸다. 재연의 가능성을 ‘벤허’가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공연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10월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