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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갈색과 흑색 물감에서 생명과 죽음을 읽다

갤러리퍼플, 김성윤 개인전 ‘지구, 뼈,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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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3호 김금영⁄ 2017.09.15 10:30:32

▲김성윤, ‘무제(Untitled)’. 리넨에 오일, 135 x 180.5cm. 2017.(사진=갤러리퍼플)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화면 위에 놓인 윌리엄스버그 물감. 작가들에게 익숙한 도구다. 하지만 물감 광고는 아니다. 이 윌리엄스버그 물감 튜브 자체가 작가의 화면 위에서 작품이 됐다.


갤러리퍼플이 김성윤 작가의 개인전 ‘지구(Earth), 뼈(Bone), 색(Colour)’을 10월 21일까지 연다. 지구와 뼈, 색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걸까? 그리고 이것을 이야기하는 데 왜 물감이 등장했을까?


▲김성윤, ‘화이트, 화이트, 화이트(White, White, White)’. 리넨에 오일, 193.9 x 390.9 cm. 2017.(사진=갤러리퍼플)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회화작가들은 자신만의 기법으로 작품세계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김성윤 작가는 시선을 반대로 돌렸다. 그는 현대의 이미지나 형태를 빌어 사실적으로 그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 반복되는 과정 속 발견되는 양상과 패턴에서 미술사와 철학을 읽고, 이를 작가화 시킨다. 즉, 익숙하고 친근한 이미지에서 시작해 김성윤 작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회화 재료를 제작하는 고급 브랜드의 광고 이미지, 색상차트 등 상품화된 이미지를 차용했다. 또 이 과정에서 작가가 중요시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색’이다. 그리고 이 색이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중심이다.


▲김성윤, ‘무제(Untitled)’. 리넨에 오일, 116.8 x 91cm. 2017.(사진=갤러리퍼플)

작가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주로 사용하는 물감을 쉬민케에서 윌리엄스버그로 바꾼 것이었다”며 “매끈하고 점성이 강한 쉬민케의 물감과는 달리 윌리엄스버그는 거친 질감이 특징”이라고 짚었다.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데 쓰이는 물감은 단연 작가만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매체다.


그리고 작가에게 윌리엄스버그의 ‘이탈리안-프렌치 얼스 피그먼트’(갈색) 계열의 색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거친 질감과 함께 표현된 이 색은 안료의 원재료가 흙이라는 사실을 작가에게 촉감으로 일깨워줬다. 그래서 팔레트에서 얼스 피그먼트 계열의 물감을 떠내 캔버스에 바를 때마다 작가는 오랜 기간 서양회화에서 나타난, 흙으로 이뤄졌을 수많은 신체와 얼굴, 더 나아가서는 생명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모든 안료는 숱한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김성윤, ‘무제(Untitled)’. 리넨에 오일, 72.7 x 53cm. 2017.(사진=갤러리퍼플)

또한 아이보리 블랙(흑색) 계열의 색이 주는 이미지도 있었다. 작가는 앞서 얼스 피그먼트 계열의 색에서 생명의 생동감을 느꼈다면, 아이보리 블랙에는 반대로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게 드리워졌음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는 “동물(주로 소)의 뼈를 태워 만들어지는 아이보리 블랙의 푸석한 질감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깃들어져 있는 걸 느꼈다”며 “결국 화면에 칠해진 모든 안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숱한 의미들로 가득 차 있는 셈”이라고 짚었다.


이렇듯 작가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물감에서 색을 봤고, 또 그 색이 지닌 질감에서 색의 탄생 과정을 느꼈으며, 이 과정이 지닌 상징까지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결국 전시명은 뼈(죽음)로 새로운 생명과 이야기를 만들고, 이 이야기들을 다채로운 색으로 품은 지구(세상)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안료는 꽤나 복잡한 물질이다. 그것은 자연 상태의 물질인 동시에 상품이며, 그 자체로 어떤 형상과 이미지, 기억을 내재하고 있으며 언제나 또 다른 단계를 상상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윤, ‘무제(Untitled)’. 리넨에 오일, 40.9 x 31.8cm. 2017.(사진=갤러리퍼플)

빨강, 노랑, 파랑이 어우러진 앵무새도 눈길을 끈다. 작가의 화면 속 앵무새는 얼핏 보면 흔한 앵무새인 것 같지만, 그 안은 작가의 기억을 품었다. 작가는 “색은 감상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내게 있어 모더니즘은 색을 숭배하는 오래 전 신화 속 공간과도 같다. 특히 빨강, 노랑, 파랑은 그런 영광을 애도하는 색으로 느껴진다”며 “이 점에서 금강앵무는 그 신화 속 어딘가에 거주하는 상상 속 새처럼 느껴졌다. 놀랍게도 금강앵무는 빨강, 노랑, 파랑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갤러리퍼플 측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주재료로 사용되는 물질들과 그것으로 이뤄졌을 많은 이미지들을 떠올린다”며 “화면 가득 칠해진 물감은 색을 알려주는 정보와도 같지만, 한편으로는 감상자에 따라 서로 다른 회화적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작가의 화면이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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