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안녕, 팝(Hi, POP).” 관객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안녕, 팝 - 거리로 나온 미술, 팝아트’전(이하 ‘팝아트’전)이 M컨템포퍼리에서 개막했다. 전시 현장에 들어가면 더 친근하고 익숙한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우는 여인’을 비롯해 앤디 워홀의 ‘꽃’, 로버트 인디애나의 ‘클래식 러브’ 등 평소 미술관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익숙한, 매우 유명한 이미지들이 전시됐다.
‘팝아트’전은 미국 팝아트 대표작가 5인(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업을 조명하는 자리다. 각국에 개인 소장된 작품 중 엄선된 160여 점이 전시장에 한데 모여 미국 팝아트 운동 부흥의 시기로 관람객을 이끌어간다.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조류 중 하나로 꼽히는 팝아트는 1950년대 중반 영국에서 태동한 뒤 1960년대 미국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영국 미술 평론가 로렌스 앨러웨이가 팝아트(Pop art)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리처드 해밀턴이 팝아트 선구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기존의 추상표현주의가 추상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작품 형식을 추구했다면, 팝아트의 성격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대중적(popular)인 특성을 지녔다. 리처드 해밀턴은 팝아트에 대해 ‘일시적이고, 값싸고, 대량 생산적이고, 상업적인’ 미술 양식으로 이야기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만화, 영화, 잡지 형식이 팝아트의 표현 수단으로 활용됐고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등의 모습을 담으며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토록 마냥 친근하게 느껴질 것 같은 팝아트지만 접근하자면 또 마냥 쉬운 것도 아니다. 1950년대 영국에서 소비주의를 풍자하기 위한 활동으로 시작된 팝아트는 1960년대엔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의 차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전시 공동기획사 코메디아팅의 마리아 돌로레스 듀란 우카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의 아티스트들은 20세기 후반 생동하는 뉴욕에서 예술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연, 미국 팝 아트의 위대한 주인공”이라며 “이들을 통해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예술이 최상위 미술이 되기까지의 발자취를 살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론을 파고들어가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팝아트’전은 팝아트의 대표 작가 5인을 통해 팝아트의 이야기를 따라가되,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듯 작품을 볼 필요는 없음을 이야기한다.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이 “내 그림과 영화를 보면 거기에 내가 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고 말했듯 바로 앞에 있는 작품을 마주하고 오롯이 느껴볼 것을 권하는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M컨템포러리라는 전시 공간도 주목된다. 전시장은 르 메르디앙 호텔 1층 로비까지 이어지는 곳에 마련돼 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우현정 큐레이터는 “일반 화이트큐브 전시장이 아닌 호텔 미술관에서 이번 전시가 열리는 데도 하나의 의의가 있다. 팝아트는 전시가 미술관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기존 통념을 깨고 길거리로 나오며 예술의 일상화를 이야기했다. 우리 삶 곳곳에 예술이 산재할 수 있다는, 보다 가까운 예술을 지향한 것”이라며 “‘팝아트’전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공간에 팝아트 작품들을 설치하며 그 정신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일상이 바로 예술이다
전시 부제 ‘거리로 나온 미술’도 여기서 비롯됐다. 우현정 큐레이터는 “부제에 대한 모티브는 키스 해링 작업에서 얻었다. 키스 해링의 작업실은 플랫폼, 그리고 캔버스는 긴 간판이었다. 관념에 치우치지 않은 그의 작업은 ‘예술이 일상에 가까이 존재하는가’를 항상 염두에 뒀고, 여기에 가치를 뒀다”고 말했다.
예술의 일상화를 실천하고자 5인의 아티스트 작품을 감상하는 전시장 외 체험 공간 ‘프린트 팩토리’가 마련돼 앤디 워홀이 즐겨 사용했던 실크스크린 기법을 실제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전시 관람객 대상, 소정의 금액으로 참가 가능하며 참가자들은 실크스크린으로 자신이 찍은 팝아트 이미지가 담긴 에코백을 가져갈 수 있다.
이렇듯 전시는 예술을 일상 가까이에 끌어들이는 취지에 중점을 둔 가운데 작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 세계에 대해서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해 눈길을 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인디애나. 모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할 유명인이고 각각 유명한 작품들이 있다. 예컨대 앤디 워홀은 꽃과 마릴린 먼로, 캠벨 수프 통조림,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소녀, 로버트 인디애나는 글씨 ‘LOVE’를 담은 작업이 유명하다.
이 작업들이 너무 유명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작품들이 있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공간에 들어서면 ‘LOVE’뿐 아니라 다양한 글자와 숫자를 활용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우현정 큐레이터는 “로버트 인디애나는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이 의뢰한 크리스마스 카드에 ‘LOVE’가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작가 작업 세계의 전부가 아니다. 미국 중부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부모의 이혼으로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닌 작가의 삶은 작품의 근간이 됐다”며 “‘먹다’ ‘사랑’ ‘죽다’ ‘틀리다’ 등 대단한 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단어들을 통해 그는 세상에 사랑과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 했다. 이 의미를 담은 다양한 작업들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키스 해링은 희망이 가득한 ‘럭키 스트라이크’ 작업이 유명하다. 이 가운데 전시는 그가 병에 걸린 뒤 인생의 마지막 몇 해 동안 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기 위해 헌신한 작업들도 소개한다. ‘럭키 스트라이크’와는 다소 상반된 섬뜩한 위트가 발휘된 작업들이다. 이밖에 앤디 워홀의 작업실을 재현한 듯한 전시 공간과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 형태로 꾸려진 키스 해링의 전시 공간 등 각 작가마다의 특성을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의 유명 작업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이들의 작업 세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고른 작품 구성을 취한 전시는 “앤디 워홀은 꽃” “로버트 인디애나는 LOVE” 식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계기이기도 하다. ‘거리로 나온 미술’ 정신을 통해 새롭게 팝아트와 “안녕, 팝”이라며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길 권한다. 전시는 M컨템포러리에서 2018년 4월 1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