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매년 연말이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 제각각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해 따뜻한 감동을 전한 이 영화는 10여 년이 지나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공연계에 이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 있다. 뮤지컬 ‘아이 러브 유’가 연말 사람들에게 유쾌한 사랑을 전하고 있다.
‘아이 러브 유’는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전개 방식이 다르다.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온 관객들은 처음엔 고개를 다소 갸우뚱할 수 있다. ‘아이 러브 유’에서는 한 쌍의 남녀 주인공이 극을 끌어가지 않는다. ‘사랑’을 주제로 한 19개의 에피소드가 ‘러브 액츄얼리’처럼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모여 다양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만나게 해준다. 그래서 각 에피소드 등장인물이 모두 주인공이 된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배우자를 떠나보낸 중년 부부의 이야기까지 전반적으로 전 세대를 아우른다. 많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만큼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공감 코드를 두루 건드린다.
무대를 채우는 건 4명의 남녀 배우. 모두가 멀티 역할로 분해 쉴 새 없이 바쁘게 무대를 채운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 커플의 설렘과 소개팅을 하러 가는 남녀의 준비 과정, 소개팅 자리에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각자의 솔직한 속마음, 결혼을 하려다가 헤어짐을 맞은 커플, 결혼 뒤 부부생활 등 남녀가 만나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 펼쳐진다.
공연을 여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간결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정신이 없을 것도 같다. 옴니버스식 구성은 다양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하나의 이야기에 진득하게 집중할 수 없어 자칫하면 흐름이 끊길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 러브 유’에서는 각 에피소드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의 용도로 개그 코드가 쓰인다.
‘러브 액츄얼리’가 전반적으로 감동에 코드를 뒀다면 ‘아이 러브 유’는 웃음에 집중했다. 극적 재미를 위해 일부 캐릭터나 상황이 과장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영화를 보는 남녀 커플이 등장한 에피소드에서는 여자가 보자고 제안한 슬픈 영화를 처음엔 지루해 하다가 나중엔 눈물샘이 폭발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참는 남자의 모습이 나온다. 남자의 내면 이야기가 펼쳐질 때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 채 이리 펄쩍 저리 펄쩍 뛰며 눈물을 참으려는 남자의 애절함(?)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가하면 결혼할 줄 알았던 아들이 연인과의 헤어짐을 알리자 이를 괘씸(?)하게 여기면서도 최대한 쿨한 척 하는 부모의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우리는 너희의 선택을 존중한다”면서도 뒤로는 아들과 예비 며느리였던 여자 친구를 타박하는 상반된 모습이 무대에 펼쳐진다. 각 에피소드마다 웃음 코드가 만연해 사람들이 지루할 틈 없이 바로 에피소드에 몰입하게끔 돕는다.
요즘 세대가 이해할 만한 이야기도 섞었다. 소개팅 후 연락이 없는 남자에게서 문자가 온 순간 느껴지는 환희를 재미있게 표현했다. 마치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듯 기뻐하며 소감을 말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에 사람들은 웃음이 터진다.
이야기가 아무리 많다 해도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상황과 캐릭터에 대한 친절한 소개 없이 에피소드가 시작되더라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듯 공연을 볼 필요가 없다. “맞아”라며 공감하기도 하고 “네가 예전에 저랬어” “나도 저렇게 느낀 적 있는데”라며 서로의 눈을 맞추며 미소 짓는 커플의 모습이 공연장에서 흔히 발견된다.
또 19개의 에피소드들은 각각 독립적이지만 이 가운데 연결되는 몇몇 에피소드가 있다. 가령 1막 4장에서 괜찮은 남자가 없다던 한 여자가 1막 9장에서 소개팅 애프터에 성공해 싱글에서 탈출한 뒤 1막 11장에서 마침내 결혼을 한다거나, 남자니까 이런 건 못 한다고 말하던 남자가(1막 4장) 결혼한 뒤엔 180도 바뀐 모습으로 친구를 놀라게(2막 2장)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2막 3장에서 육아와 일상에 지쳐 “역시 영원한 건 없다”며 “우리 사이가 지겨울 때도 된 것일까” 자문하지만 2막 6자에서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하며, 2막 7장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놓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옴니버스(각각의 독립된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와 피카레스크식(같은 인물이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를 꾸려가는 연작 형태) 구성이 혼합된 방식을 적절히 활용한다.
배우들의 열연을 영상과 음악이 더욱 빛나게 한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화면에는 한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다음 에피소드를 축약한 제목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또 이 영상의 제목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할 수 있다. 또 두 명의 연주자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 연주가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사랑의 멜로디에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그리고 관객들의 웃음이 이뤄내는 하모니가 연말 공연장에 따뜻함을 더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마음껏 사랑하라”고. 공연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2018년 3월 1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