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81) 인도네시아 上] ‘광대한 느긋함’에서 大國 포텐셜 읽혀

면적·인구 大國…지역 따라 인종 달라

  •  

cnbnews 제609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10.17 09:03:02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출발 → 상하이 환승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착)


항공 요금 절약이 관건 


중국 동방항공으로 인천공항을 떠난다. 자카르타로 가기 위하여 상하이에서 환승해야 하는 불편한 길이지만 참아야 한다. 해외 여행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공 요금 절약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저렴한 지역으로 여행 시 항공 요금은 전체 여행 경비의 3분의 2, 물가가 비싼 지역으로 여행한다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중국의 경제력 성장으로 자국 인구의 해외 여행이 늘어나면서 중국 항공기 요금도 이제는 상당히 올라 환승의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상하이 출발 시간이 하염없이 지연된 끝에 동방항공기는 예정보다 두 시간 늦어 자정이 훨씬 지나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했다. 예약해 놓은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푼다. 그래도 몇 달 만에 일상을 벗어나 온전히 나만의 여행을 떠나온 후 맞이하는 첫 밤. 언제 와도 따뜻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사는 땅은 달콤하다. 

 

 

2일차. (자카르타 ↔ 반둥 왕복)


가자마자 되돌아와야 했던 사연


오전에 공항 터미널 앞에서 반둥(Bandung)행 버스에 오른다. 과거 네덜란드 식민 통치자들이 아꼈던 반둥은 자바의 파리(Parijs von Java) 또는 꽃이 많다고 해서 코타 켐방(Kota Kembang)이라고도 불렀다. 남위 7도의 열대 지방. 그러나 해발 78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어 날씨는 쾌적하다. 


대학과 음식, 콜로니얼(식민풍) 건축물로 유명한 반둥은 인구 270만 명으로 인도네시아 3대 도시 중 하나다. 지독한 교통 체증으로 버스는 예정했던 시간의 두 배가 걸려 6시간만에 반둥에 도착한다. 여유로와야 했을 반둥 당일 일정이 매우 짧아져서 반둥 탐방은 초고속 주마간산으로 해야 했다. 오늘 안으로 자카르타로 돌아가 내일 새벽 마카사르 행 항공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AA회의, 비동맹 운동의 발상지


급한 대로 시내 중심 아시아-아프리카 거리(Jalan Asia-Afrika)부터 찾는다. 도시 중심부를 동서로 지나는 아시아-아프리카 거리에는 열대 기후에 유럽 양식을 접목시킨 18-19세기 콜로니얼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다. 1955년 AA회의(반둥회의,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Konferensi Asia Afrika)의 개최지로 유명한 게둥 메르데카(Gedung Merdeka)도 그중 하나다. 과거 식민지 시절, 돈 많은 유럽인들의 클럽 하우스로 1895년 건축한 이곳이 하필이면 반식민, 반제국 비동맹 운동을 잉태한 곳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면서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반둥회의는 이후 1961년 결성된 비동맹 운동(non-aligned movement)의 촉발제가 되었다. 그 현장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6시간 걸린 불편한 버스 여행의 수고를 보상해 주고도 남는 느낌이다. 도시 중심부를 대충 훑어보고 자카르타 행 버스에 오른다. 

 

 

3일차. (자카르타 → 마카사르)


24시간 분주한 공항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마카사르 행 항공기 출발은 새벽 5시. 숙소를 찾아 들어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그냥 공항 터미널 부근에서 머물기로 한다. 새벽 2시건, 3시건, 4시건 가리지 않고 24시간 항공기들이 드나드는 자카르타 공항에는 나처럼 새벽 첫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척 많고 따라서 기다릴 곳도, 먹을 곳도 충분히 많다. 자카르타를 새벽 5시에 출발한 항공기는 두 시간 15분을 날아 마카사르(Makasar)에 닿는다. 우중 판당(Ujung Pandang)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자카르타, 수라바야, 반둥, 메단에 이어 인도네시아 5번째 도시이다. 수백, 수천 개의 섬들이 떠있는 바다 한가운데 인구 160만 명의 대도시가 우뚝 서있다. 예로부터 동과 서, 남과 북의 문물과 사람들이 교류하고 섞이고, 또 때로는 각축했던 곳이다.

 

마카사르는 인도네시아의 5번째 도시로서 바다 한가운데 인구 160만의 대도시가 우뚝 서있다. 예로부터 동과 서, 남과 북의 교류처였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드디어 술라웨시에 발을 딛다


예약해 놓은 숙소에 여장을 풀어 놓고 도시 탐방에 나선다. 숙소는 공항 터미널에 붙은 이비스(Ibis). 내일도 새벽 첫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에게는 최상의 선택이다. 항구 지역부터 찾는다. 남술라웨시 지역에서는 단연 가장 큰 항구로서 향신료 무역(spice trade)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여러 세력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16세기 서양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인도네시아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으로 떠올랐다. 

 

인도네시아 남술라웨시 마카사르의 차이나타운. 세계 어디를 가나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화교의 파워를 그 규모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1511년 포르투갈인들을 시작으로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 등 유럽인들은 물론 중국, 아랍, 인도, 샴, 말레이인 등이 찾아 들었다. 2차대전 중인 1942년 초에는 1000여 명의 네덜란드 동인도군이 방어했으나 일본에게 쉽게 무너져 점령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창 때의 분주한 모습을 잃고 쇠락했지만 그래도 거대한 크레인 여러 대가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고, 낡았지만 창고 등 부대 시설이 상당한 규모로 자리 잡고 있어서 역사 깊은 항구의 정취를 풍긴다. 차이나 타운의 규모 또한 적지 않음에 놀란다.

 

남술라웨시 마카사르의 로테르담 요새. 과거 네덜란드 식민지의 유산이지만 이제는 온전히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해 콘서트 준비가 한창이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빛바랜 항구 도시 마카사르


오늘 마카사르의 날씨는 무척 덥다. 오후 해는 정신을 앗아갈 정도로 뜨겁다. 그래도 수천 년 이런 날씨에 살아온 이곳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은 로테르담 요새(Fort Rotterdam)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유산이지만 이제는 온전히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오늘 저녁 열릴 콘서트 준비가 한창이다. 과거 고와(Gowa) 왕국 궁궐터인 해안 평지에 석축을 쌓아 건설한 요새 안에는 하얗게 치장한 단아한 건물이 여러 채 서 있으니 한눈에 보아도 네덜란드 요새임을 알 수 있다. 


도시는 아름다운 술라웨시 바다를 끼고 있지만 항구 시설이 압도해 버리니 도시 분위기가 우중충해서 아쉽다. 로테르담 요새 가까운 곳에 조성된 마리나가 그나마 삭막한 항구 도시에서 몇 안 되는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도시에 볼 것이라고는 이것이 전부인 듯하다. 


지리적으로는 남중국해 중심쯤 되는 곳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어느 곳보다 오지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술라웨시 남쪽 관문을 지나 북행 중인 나에게는 의미있는 방문지이다.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지나는 화물 트럭들이 아직은 이 도시가 역동하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4일차 (마카사르 → 테르나테) 


항공 여객운송 산업의 강자 인도네시아


새벽 4시 20분, 항공기로 테르나테를 향해 마카사르를 떠난다. 변방의 작은 공항이지만 벌써 여러 편의 항공기들이 각지로 출발했다. 민간항공 산업이 발달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많은 항공기들이 전국을 그물망으로 연결하며 사실상 하루 24시간 운행하지만 항공기마다 만석이다. 거대한 인구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다. 


마카사르를 떠난 항공기는 한 시간 40분을 날아 테르나테에 닿는다. 동술라웨시,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의 중심 중 하나이다. 시간대는 한 시간 동쪽으로 이동하여 한국 시간과 같아졌고, 위도도 어느 새 북반구로 바뀌어 있다. 인종적으로 파푸아 지역과 같아졌음을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확인한다. 한때는 세계가 주목했던 향신료 무역의 본거지였지만 지금은 아득한 변방이다.

 

테르나테의 수상 모스크. 인도네시아 동부의 중심 도시 테르나테에 오면 시간대가 한국과 같아지니 얼마나 넓은 나라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예사롭지 않은 경관


작은 섬 북쪽 해안을 억지로 메워 건설한 활주로에서 작은 바다 건너편 삼각뿔 봉우리를 이고 있는 섬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젊은 화산섬 테르나테가 어떤 모습일지 예고해 준다. 섬 가운데에는 가말라마(Gamalama) 화산(1715m)이 우뚝 서있어서 화산섬의 독특한 모습을 연출한다. 지구상에서 화산과 지진 활동이 가장 왕성한 불의 고리(Ring of Fire, 또는 Circum Pacific Belt)에 놓여 있음을 입증하듯 1980년 이후에만 해도 1980, 1983, 1994년, 그리고 최근 2011년까지 화산이 폭발하여 일주일 동안 항공 교통이 멈추기도 했다. 


테르나테 섬은 북말루쿠(Maluku Utara)의 중심이자 과거 테르나테 술탄국의 수도로서 서울시 면적의 약 6분의 1(111 ㎢)이고 인구는 20만 명이다. 서양인들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존재했던 술탄국은 당시 말루쿠 지역은 물론 인도네시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부유했으나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연이어 들어오는 유럽 열강들을 더 이상은 감당해낼 수 없었다. 말루쿠 지역은 일찌깜치 이슬람을 받아들였지만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인들을 따라 기독교가 들어와 아슬아슬한 공존을 이어간다. 이런 까닭에 1998~2000년 사이에는 암본 등 남말루쿠 지역과 마찬가지로 처절한 종교 갈등을 겪기도 했다.


향신료 무역의 본거지


19세기 이후 향신료 무역이 쇠퇴했지만 네덜란드는 주변 유럽 열강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테르나테 경영에 공을 들였다. 바로 그 흔적을 발견하러 나선다. 해자와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오란제 요새(Fort Oranje)는 1609년에 건립했고 1619년 동인도회사가 바타비아(Batavia, 오늘날 자카르타)로 옮겨갈 때까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지정한 수도였다. 

 

테르나테의 오란제 요새는 ‘오렌지’로 상징되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유산임을 알게 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훗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파산으로 잠시 영국 손에 넘어가기도 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잠시 일본으로 주인이 바뀌었던 이 섬의 사연만큼이나 풍상을 겪었지만 오늘날 온전히 남아 현재 인도네시아 군대의 막사와 훈련장쯤으로 쓰이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방향을 틀어 항구 지역으로 향한다. 항구와 마리나, 해변 공원을 지난다. 도시 중심부 현대식 쇼핑몰에는 멀티플렉스 상영관까지 있을 정도로 번잡하다. 인도네시아의 오지까지도 글로벌 자본주의 소비경제 체제에 편입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페리 터미널까지 천천히 걸어서 간다. 해안에 바짝 붙여서 건축한 이슬람 사원은 멀리서 보면 마치 쌍동이 미나렛이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도시에서는 가장 압도적인 풍경이다. 항구에는 술라웨시 도서 지역과 외지를 연결하는 페리가 드나든다.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던 테르나테와 인근 수백, 수천 개의 섬을 연결해주는 페리 터미널. 사진 = 김현주 교수

즐거운 강제 휴식


해질 무렵이 되자 시원해진 해변 공원에서 나도 무작정 시간을 보낸다. 모처럼 찾아온 완벽한 해방감에 젖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외지 손님에게 보여 주려는 것인지 내 앞에서 곡예사의 솜씨로 다이빙을 하며 바다에 뛰어든다. 바닷물은 더할 나위 없이 맑다. 그 즈음 멀리 작은 만 건너 맞은 편 산 위에 선명하게 무지개가 떠올라 걸린다. 소박하고 고즈넉한 항구 도시의 저녁 한 때를 즐긴다.


사실 지금 여행 중인 인도네시아 동북부 술라웨시와 말루쿠 지역은 진짜 오지 중의 오지이다. 한국에서 온다면 자카르타까지 7시간, 그곳에서 환승하여 또다시 4~5시간 걸린다.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외국인 관광객이 오기도 어렵고 올 이유도 별로 없는 곳인 만큼 이곳 사람들은 나에게 큰 호기심을 보인다. 


바쁘고 분주하게 이동을 거듭하던 나의 평소 여행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여행이 펼쳐진다. 일부러 쉬려고 온 것까지는 아니지만 뾰족히 즐길 것도, 볼 것도 없으니 최선은 무작정 휴식하는 것뿐이다. 도시라고 해봤자 가장 느린 속도로 걸어도 반나절이면 샅샅이 훑을 수 있을 만큼 작다. 이후는 모두 나의 완벽한 자유시간이다.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