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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리 작가의 ‘무생물이 움직이는 장면’ 속 아이러니

챕터투서 ‘여정, 시간, 기록’ 키워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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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8.11.05 11:44:08

최혜리, ‘토끼의 뿔(Rabbit Horn)’. 79.5 x 58cm. 2018.(사진=챕터투)

챕터투는 최혜리 작가의 ‘무세에부츠도오에(Eccentricities of Inanimation)’전을 12월 8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연다.

 

작가는 2016년 삼성리움미술관이 기획한 ‘아트스펙트럼 2016’에서 다차원과 복합적 개념이 정밀하게 전개된 일련의 복합 미디어 작품들을 통해 전통 회화의 확장성에 대한 실험적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챕터투 전시에서는 그간 작가로서의 사유의 깊이가 어떤 추동력을 갖고 발전돼 왔는지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무세에부츠도오에’는 무생물동화(無生物動畫)를 일본어로 독음한 것이며 이를 다시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무생물이 움직이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제목은, 작가가 교토에서의 순례여행 중 다양한 경로로 취득한 데이터 회화/조각들, 구시대 그래픽 문화의 디지털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제작된 회화들, 고서화점에서 취득한 문서들을 망라한다.

 

작가의 전작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전시/작품 제목은 중층의 정보를 함축한다. 일반적인 국문법 규칙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제목들은 단어의 희소성과 결합 방식에 의해 해독 가능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하다. 이는 이번 전시와 그간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해 왔던 방식을 엿보게 한다. 희미한 단서를 풍기되 선언적이지 않은 제목은, 작가에 의해 설계된 수만 가지의 다차원적 경우의 행로를 따라 관람자 각자의 심상과 경험적 지식에 따라 주관적 해석의 실타래가 풀어지게끔 이끈다.

 

최혜리, ‘세 얼굴의 푸른 박새(Tri-faced Blue Tit)’. 52 x 42cm. 2018.(사진=챕터투)

‘여정, 시간, 기록’ 이 세 가지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적 요소들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비중 있게 보이는 작가의 수집물, 교토 여행 때 시내의 한 고서화점에서 구입한 무명화가의 목판화들과 인쇄물의 존재는 여정의 결과물이자 전시의 다층적 구조의 큰 축이다. 챕터투 측은 “작가에 의해 월리엄 모리스(1834~1896)에 필적하는 섬세한 공정의 결과물로 추앙된 무명작가의 판화는 기법적인 면에서 ‘토끼의 뿔’(2018) 등 작가의 회화 작품과 궤를 같이 한다”며 “동양화의 형식적 요소를 공유하며 세필로 극도로 정교하게 묘사된 작품들은 인공미와 함께 플랫한 표면의 질감을 지니며 판화 및 인쇄물과의 태생적 괴리를 상쇄한다”고 밝혔다.

 

작가에 의해 설정된 시각적 픽션 ‘무세에부츠도오에: 무생물이 움직이는 장면’에서 기록자이자 수집가는 작가 자신이다. 마치 영화의 스토리가 감독에 의해 보이는 부분과 감춰지는 부분이 결정되고 기승전결이 설계되듯이, 작가는 철저히 제 3자적 입장을 취하며 기술(記述)의 방식을 설계한다. 챕터투 측은 “토끼, 새, 병아리 등 등장하는 이미지가 가진 전통 회화적 강박적 구상성이 작품 각각의 함의를 구속하기보다는 확장의 출발점이 되는 점이 흥미롭다. 즉, 작지만 든든한 토대가 돼, 아득하기만 한 감상의 여정에서 매순간 다시 돌아와 재차 시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은 마치 워프(Warp)를 통해 다차원 또는 과거와 미래로 순차성을 거스르는 이벤트를 행하는 듯한 이미지들을 통해 각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챕터투 측은 “좌우에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파란 박새의 머리는 슬로모션 형상으로 표시되며 묘사된 시점에 정확한 다차원적 좌표 위치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내포한다. 이는 묘사된 사물들이 통상적인 물리 법칙에서 열외로 인정돼야 하며 동시에 통사적인 서사 구조로는 해석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며 “특히 ‘토끼와 뿔’에서 배경이 되는 화초는, 이와 관련된 불교 우화를 모르는 관람자에게도 범상한 일상적 현상이 아님을 은유하게끔 하는 장치로 활용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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