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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일월오봉도' 앞에 초라한 손수레 할머니가 그려진 사연은?

헬레나 파라다 김, 독일 글라드백시 시립 미술관서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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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9.01.28 11:27:24

전시 개막 행사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헬레나 파라다 김(왼쪽) 작가.(사진=초이앤라거 갤러리)

독일의 베를린에서 거주하고 작업하고 있는 헬레나 파라다 김 작가의 개인전이 3월 22일까지 독일 글라드백시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는 한국인 어머니와 스페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독일에서 자랐다. 파독 간호사인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컸다. 그는 어머니의 오래된 앨범에서 발견한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자매들의 사진을 본 것을 계기로 한국 문화와 미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적인 소재들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기 시작했다.

 

헬레나 파라다 김, ‘간호사들과 학 무리(Nurses and cranes)’. 리넨에 오일, 180 x 250cm. 2017. Courtesy the artist and CHOI&LAGER Gallery Cologne/Seoul

특히 한국의 전통 의상 한복은 작가가 즐겨 다루는 소재로 주로 한복을 입은 개인이나 무리의 초상화, 또는 한복 자체를 정물화로 그리듯 캔버스에 담았다. 이때 작가는 초상화의 초점을 얼굴에 맞추기 보다는 그 인물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의복의 내면성과 감각적인 옷감의 재질을 강조한다.

작가의 그림의 소재가 되는 한복은 주로 작가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입었던 것이다. 작가는 한복의 주인인 인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살아왔던 세월과 역사를 담고 있는 의복의 서정성과 서사성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더 큰 초점을 둔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복 초상화를 시리즈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는 작은 공간에 선보인다. 한복 초상 시리즈 중 ‘죽은 남자’는 한복을 입고 무기력하게 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는 한 남성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유명한 그림인 ‘투우사의 죽음’을 작가가 자신의 주제와 스타일로 재해석한 것이다.

 

헬레나 파라다 김, ‘죽은 남자(The Dead Man in blue)’. 리넨에 오일, 80 x 110cm. 2015. Courtesy the artist and CHOI&LAGER Gallery Cologne/Seoul

두 번째 전시 공간에서는 동양화와 동양의 아이코노그라피(ICONOGRAPHY), 또는 도상학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대형 작품들과 서사적인 구조의 그림들을 선보인다. 그 중 ‘간호사들과 학 무리’는 병풍 앞에 선 간호사들을 묘사했다. 이미지의 모티브가 된 것은 1970년대 다른 파독 간호사들과 함께 단체로 찍었던 어머니의 빛바랜 사진이다. 바다를 건너 훨훨 날아가는 학들은 타국에서 고향 땅을 그리워하는 간호사들의 향수를 나타낸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병풍 그림은 서울 창덕궁에 있는 김은호의 유명 벽화로 학, 산, 강, 소나무 등이 그려내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현대적인 소재와 대조를 이루는 동시에 신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태양과 달’ 작품도 한국 전통 회화 역사가 모티브다. 병풍에서 보이는 태양, 달과 다섯 개 봉우리는 장수, 영원, 내구성과 번영의 모든 상징적 요소를 나타낸다. 이 그림은 조선 시대 왕좌를 장식한 병풍에 그려진 그림으로 영원한 왕권과 그 위엄을 상징했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이 배경 앞에서 촌스러운 옷을 입고 손수레에 한 가득 강냉이를 실어 나르며 장사를 하는 한 노인의 지극히 서민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헬레나 파라다 김, ‘태양과 달(The sun and the moon)’. 리넨에 오일, 200 x 300c. 2018. Courtesy the artist and CHOI&LAGER Gallery Cologne/Seoul

이번 전시는 자연을 그린 대형 그림들도 선보인다. 특히 전시장의 가장 큰 벽면에는 캔버스 3 개에 걸쳐 연못에 떠 있는 연꽃들이 묘사된 작품이 걸렸다. 붉은 빛으로 배경을 채색한 뒤 그린 연꽃들은 신비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각 캔버스의 긴 세로 형식은 자연을 묘사한 동양의 풍경화 형식을 기반으로 한다.

한편 헬레나 파라다 김은 1982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자랐다. 2009년까지 뒤셀도르프의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영국 화가인 피터 도이그 교수 지도하에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현재는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작가는 독일 쾰른과 베를린, 스페인 마드리드, 노르웨이의 오슬로,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초이앤라거갤러리에서 열린 독일 작가 안드레아스 블랭크와의 2인전을 통해 국내에도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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