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6호 김금영⁄ 2020.10.21 09:35:06
롯데뮤지엄의 하반기 대규모 기획전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이 개막했다. 롯데뮤지엄은 전시 개막에 앞서 몇 달 전부터 이 전시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롯데뮤지엄도 잠시 휴관 및 재정비 기간을 가지며 전시 개막에 먹구름이 끼는가 싶었지만, 사태가 다소 진정되면서 바스키아의 작품도 국내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됐다.
2018년 롯데월드타워에 개관한 롯데뮤지엄은 쇼핑몰 내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댄 플래빈, 알렉스 카츠, 케니 샤프 등 해외 거장 작가들의 대규모 전시를 기획해 미술인의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엔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캐릭터 스누피의 탄생 70주년 기념 특별전을 선보여 미술인과 일반 관람객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이번엔 바스키아가 그 맥락을 이어간다. 1980년대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바스키아는 만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약 8년의 짧은 기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어린아이와 같은 자유분방한 화법을 구현하는 동시에 이질적이고 거친 이미지가 혼재된 독특한 작품 세계로 오늘날에도 주목받으며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배우이자 화가로서 활동 중인 하정우 또한 “바스키아의 화풍을 좋아한다”며 “그의 작품에 영감을 받고 그림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롯데뮤지엄 측은 “바스키아는 자유와 사회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로 점철된 다양한 작품을 통해 20세기 시각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며 “이번 전시는 ‘거리’, ‘영웅’, ‘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회화, 조각, 드로잉, 세라믹, 사진까지 총 1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 공간 콘셉트 또한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바스키아와 닮았다. 바스키아는 소호와 이스트 빌리지, 뉴욕 곳곳에 무질서하게 휘갈겨 쓴 듯한 그래피티를 남기며 거리의 낙서화가이자 ‘검은 피카소’로 불렸다. 전시 도입부는 이런 바스키아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뉴욕 거리에서 시작된 바스키아의 SAMO©(세이모) 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하는 ‘거리’ 파트다.
바스키아는 친구 알 디아즈와 함께 세이모를 결성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저항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래피티 활동에 주력했다. 세이모 또한 ‘흔해 빠진 낡은 것(SAMe Old shit)’이라는 뜻을 담았다. ‘거리’ 파트에선 일반적인 전시 공간인 갤러리, 미술관이 아닌 자유로운 뉴욕 거리에 남겨진 바스키아의 그래피티를 기록한 사진 작품 및 초기 회화 작업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파트에선 일반적인 전시장의 정갈한 흰 벽 대신 거친 시멘트벽을 연상케 하는 연출이 돋보인다. 벽에 그림을 감상하듯 걸어가는 사람을 그린 낙서, 그리고 열면 바로 어디론가 이어질 것 같은 문도 벽에 그대로 드러내 전시장이 아닌 뉴욕의 한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롯데뮤지엄 측은 “새로운 예술가를 발견하려는 신생 갤러리들은 바스키아의 독보적인 행보에 주목했다. 바스키아는 뉴욕을 넘어 전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전시를 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며 “‘거리’ 파트는 그의 예술이 태동한 근원을 함께 돌아본다”고 밝혔다.
바스키아의 ‘거리’부터 시작해 ‘영웅’ ‘예술’ 이야기까지
이어 ‘영웅’과 ‘예술’ 파트가 기다린다. 바스키아가 창조한 영웅의 다양한 도상과 초상화를 통해 삶과 죽음, 폭력과 공포, 빛과 어두움이 투영된 시대상과 인간 내면의 원초적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특히 바스키아의 작품 속 공존하는 천진난만함과 섬뜩함을 감상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가 그린 낙서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영웅’ 파트에선 바스키아가 어린 시절 보고 자랐던 코믹북과 TV애니메이션 속 슈퍼맨과 배트맨을 비롯해 의인화된 토끼, 돼지, 펭귄 등이 작품 속 영원한 영웅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단지 이를 밝고 순진무구하게 표현하지 않고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았다. 예컨대 인간과 소가 함께 걸어가는 ‘더 필드 넥스트 투 디 아더 로드’(1981)에선 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인간과 풍성한 모습의 소를 극적으로 대비시켜 동물의 죽음을 통해 형성돼온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비판한다.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라 단지 아티스트일 뿐”이라고 강조했던 바스키아의 초상화도 볼 수 있다.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초상화 제작 방식에서 탈피해 직관적으로 포착한 대상의 특징과 다양한 단어, 이미지들을 조합해 제작된 초상화들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마네의 ‘올랭피아’와 같은 서양미술사의 유명 초상화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등 바스키아의 색다른 초상화가 전시된다.
작품 속 텍스트들도 눈길을 끈다. 텍스트 또한 바스키아의 작품을 상징하는 주요 요소다. 그런데 이 주요 요소를 다루는 바스키아의 방식은 다소 거칠다. 작품 속 단어 아래 밑줄을 치거나 단어에 선을 그어 지워버렸다.
왜 공들여 쓰고 지워버렸나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살짝 그어진 줄 아래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들을 더욱 읽고 싶도록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처럼 바스키아의 제작 방식이자 구성요소인 텍스트와 드로잉, 콜라주와 제록스 기법이 혼합된 작품들을 통해 함축적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이미지들이 생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또 앤디 워홀과 함께한 대형 작품을 전시해 서로 다른 두 거장이 교류하며 새롭게 발전시켜나간 예술세계도 감상할 수 있다. 욕심 많은 자본가, 해골과 독성 물질, 심장마비 등의 주제가 담긴 ‘하트 어택’(1984)은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부와 명예를 원했던 이면성을 고찰한 바스키아와 워홀의 협업 작품이다. 롯데뮤지엄 측은 “20세기 후반 예술의 흐름을 완성한 두 거장의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융합됐는지 보여준다”고 밝혔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대형 작품부터 자그마한 소품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장을 채우며 바스키아의 예술적 삶을 따라간다. “미술이 엘리트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싫어했다”고 바스키아를 기억하는 마돈나의 말처럼, 어떤 특정한 방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예술의 혼을 발산한 바스키아의 매력을 이번 전시에서 느낄 수 있다. 전시는 롯데뮤지엄에서 내년 2월 7일까지 열린다.
롯데는 이번 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다. 예술을 활용한 롯데의 문화 마케팅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전시를 여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관련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상품 개발 및 이벤트를 전개해온 것.
지난 스누피 전시 당시에도 롯데 GRS 엔제리너스는 스누피 캐릭터를 활용한 겨울 시즌 한정판 MD 3종을 선보였고, 롯데칠성음료는 ‘데일리C 아트워터 스누피 에디션’을 선보였다. 데일리C 아트워터는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미술관 밖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롯데뮤지엄과 디자인 협업을 진행하는 제품이다.
이번엔 바스키아가 주인공이다. 엔제리너스, 롯데제과 아이스크림 나뚜루, 몽쉘과 협업해 바스키아 전시와 관련, 예술과 제품을 접목한 아트 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엔제리너스는 바스키아의 작품을 활용한 아트 컬래버레이션 MD 상품으로 머그컵, 텀블러, 에코백, 볼펜 등을 한정 수량으로 마련했다. 나뚜루는 시그니처 제품인 녹차 파인트, 스트로베리 파인트와 이번 컬래버레이션을 위해 새롭게 선보인 럼 진저 레이즌 각각의 제품에 바스키아 작품 이미지를 입혔다.
롯데제과의 제품도 바스키아의 작품을 입었다. 몽쉘 브랜드 중 ‘몽쉘 오리지널(크림)’, ‘몽쉘 카카오’ 제품 케이스와 내포지에만 한정적으로 작품 이미지를 넣었다. 이밖에 실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11월 30일까지 구매 인증 이벤트를 전개한다. 롯데제과 측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미술관 밖에서도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쉽게 접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