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8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2.07.29 09:50:22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16년 시작된 ‘대청호미술관 공모 선정전’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미술관이 위치한 대청호라는 장소성을 염두에 두고 ‘환경과 생태’에 관한 주제로 진행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물을 전면에 내세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고하는 동시에 “대청호의 공간과 흔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김도영, 협업계약(김자혜, 육효진), 김희수는 대청호(자연)에서 수집된 빛과 이미지, 소리, 그리고 사물 등을 통해 인간의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서부터 세계 속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 이르는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더 갤러리’ 이번 회에서는 ‘2022 대청호미술관 공모 선정전’ 참여 작가 중 김도영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 전시 ‘선한 X를 기원하며(Pray for a Good X)’(2022)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작가가 채집한 오브제를 사용한 설치, 맞춤 제작된 수조, 대청호를 수중 촬영한 영상 등이다. 김도영 작가는 매우 구체적인 사회 문제들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다뤄왔다. 그동안 질문을 많이 받았겠지만, 그와 같은 작업이 어떤 계기, 이유에서 시작되었는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계기를 찾기 힘들다. 그냥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작업이 계속 확장 중이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삶의 문제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진 않는 것 같다. 미술가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노출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노숙자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업을 약 10년 정도 진행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영상인 것 같아 점점 더 미디어 매체를 활용하고 있다. 특정한 사회적 이슈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는 작업을 하진 않지만, 그저 밖에서 관찰하고 촬영하는 정도로 끝내진 않는다. 일정 수준 이상 그 환경 안에 들어가 수행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쪽방촌에 직접 들어가 살기도 했다. 미술 작업이 아니라 사회봉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동료 작가와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쪽방촌과 관련된 작업 - ‘Sleepers’(2016) - 을 하면서 미술을 통해서는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의 이야기를 노출하고 환기하는 메신저 역할이라 결론을 내렸다.
물과 관련된 작업을 시작한 지는 3~4년 정도 되었다. 나는 물(자연)을 다룰 때도 환경 그 자체보다는 환경이 변했을 때 제일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깨끗한 물을 먹기 어려워진 이유에 환경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난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어떻게 시작, 전개되었는가?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은 작년부터 환경과 물을 주제로 공모전을 진행해왔다. 워낙 물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진행해온 작업과 대청호를 염두에 둔 신작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상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얻는 편이다. 예를 들어 ‘사물들, 형태로의 회귀’(2022)는 양치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작업실은 축사와 공장들이 있는 지역에 위치한다. 작업실에서는 지하수를 사용한다. 한 2년 전까지만 해도 식수로는 사용하지 못했어도 생활용수로는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도저히 양치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다. 내가 머무는 장소의 물이 이를 닦을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각기 다른 환경과 장소에서 채집한 물들을 작은 수조에 담은 뒤 거기에 구강청결제를 섞어 내가 당시에 느꼈던 감정들이 상징적 의미를 갖게 해보았다. 지금은 곰팡이가 피었는데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런 변화가 흥미롭다.
- ‘구멍 잔류물’(2022) 안의 물은 대청호에서 가져온 것인가? 물이 담긴 구조물이 커서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겠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오브제들이 들어가 있다.
2020년 6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예술인연합 AAA(김도영, 송성진, 이창운, 이창진)’로 GS칼텍스 예울마루 창작스튜디오에 머물 때부터 계획했던 작업이다. 여수의 창작스튜디오는 물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환경이어서 물에 대한 작업이 증폭되는 계기가 되었다.
‘구멍 잔류물’의 경우 구조물 안에 증류수나 깨끗한 물을 넣어 채집한 오브제(쓰레기)들을 대비시키는 방식도 생각했으나 굳이 깨끗한 물을 넣는 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대청호 물을 그대로 넣었다. 약 2200리터 정도 들어갔다. 그 안에는 세제 통, 카메라, 고철 덩어리와 같은 다양한 물건이 들어있는데 그중 일부는 실제로 마그네틱 피싱 장비를 이용해 주운 것이다. 환경운동 차원에서 많이 하는 마그네틱 피싱을 오브제를 채집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활용했다고 보면 된다. ‘물과 풀을 둘러싼 것들’(2022)에 놓인 골프공도 물에서 건진 것이다. 파주 쪽에 있는 시립 묘지 옆에 큰 골프장이 있는데 골프장 근처 하천에 골프공이 많이 버려져 있다.
‘구멍 잔류물’에서 물과 물건들을 담은 구조물은 아프리카의 흙탕물 웅덩이 같은 물웅덩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란 물탱크, 아프리카나 난민촌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물 운반용 용기 등에서 착안했다. 관람객이 마치 수족관을 관람하듯이 볼 수 있도록 원형 수조로 제작했고, 온/습도 센서를 활용해 오브제들을 작동시키거나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작품의 의도를 전달하고자 했다. 나는 영상 작품에 적합한 음악을 직접 작곡해서 넣는데 이 작품에서는 수중 촬영할 때의 물소리와 호흡소리를 같이 넣어 현장감을 살렸다.
- 일부 작품에 등장하는 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유물 같은 게 보인다.
박테리아가 부유물처럼 변한 것인데 처음에는 입자가 크지 않았다. 내가 채집했던 오염된 물이 겨울에 얼었다가 녹으면서 미생물, 박테리아가 생긴 거다. 생각보다 물이 많이 오염되었던 것 같다. 물의 상태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한다. 반대로 ‘물과 풀을 둘러싼 것들’(2022)의 경우 처음 수조에 담았을 때는 많이 탁하고 오염되었었는데, 지금은 많이 맑아졌다.
- 영상 작업인 ‘사라지는 수평선’(2022)에 관한 설명을 부탁한다. 물속에 직접 들어가 촬영하는데 위험하진 않은가?
‘사라지는 수평선’은 대청호, 여러 지역의 호수와 계곡, 하천의 물속과 밖에서 찍은 2채널 영상이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다양한 이유로 물의 온도나 수위, 수질이 달라지는 현상을 확인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오염된 물, 가뭄과 같은 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물속을 유영하거나 물이 빠진 대청호를 서성이는 행위 등은 물을 찾아 수 킬로미터를 걷는 아프리카나 동남아 빈민촌 사람들의 현실에서 영감을 얻었다. 물(수평선)이 사라지고 있는데 어디에 가면 깨끗한 물,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을 수 있을지를 말하고 싶었다.
내가 직접 촬영하기 때문에 안전장치를 하고 진행한다. 수중용 낚시 카메라를 사용해보기도 했는데 촬영된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촬영하는 물은 내 허리보다 조금 높거나 깊어도 2m를 왔다 갔다 하는 정도다. 깊이 들어가는 것이 작업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수심이 낮은 곳에서도 작업에 적합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 ‘물과 풀을 둘러싼 것들’(2022)은 다양한 오브제들과 물이 담긴 수조, 비디오 영상 등이 결합된 설치 작품이다.
다양한 지역의 오염된 물과 그곳에서 발견된 오브제들을 통해 오염된 물과 함께 사는 우리의 현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머무르는 주변 지역 혹은 오염되었다고 이야기되는 지역의 물을 찾아다니며 작업했다. 전시된 수조 중에는 채집한 폐유리로 제작된 것도 있다. 수족관이라는 설정으로 오염된 환경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방식이라 생각해 수조를 활용했다. 3개의 영상 중 하나는 낙동강 수원지를 찍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 영상은 현상을 직관적으로 전달/설명하기에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태백 황지연못을 낙동강 수원지로 알고 있지만, 함백산 쪽으로 더 올라가면 진짜 수원지가 있다. 그곳에 가서 찍었다.
- 이번 전시 ‘선한 X를 기원하며’ 이전부터 물과 관련한 작업을 해왔고, 그중에는 수영을 활용한 ‘swimming’(2021)도 있다.
나에게 물 혹은 바다는 사회의 상징과 같다. 그렇게 설정하고 작업하고 있다. 수영 작업은 사회 구조 안에 속하려 하지만 튕겨 나가기를 반복하는 개인의 표류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시사적 요소와 관련해 개인적인 경험(자기 인식), 사회와의 상호작용, 불안정한 지위 등을 떠올리며 생존 가능성의 희박함과 소외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swimming’은 바다를 사회로 설정하고 그러한 상황들을 주제로 수영이란 행위를 통해 현대인의 생존, 욕망과 좌절을 표현하려 했던 작업이다. 더불어 작가이자 현대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재생산하려 시도했다. 현재는 난민과 같은,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로 주제적인 확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