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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사진미술관 10년 만에 개관! 첫 특별전에 꽂힌 ‘광적인 시선’

사진 매체 특화 분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 한국 사진예술사의 예술•사료적 가치 높은 소장 작품과 자료 2만여 점 확보… 한국 대표 사진 특화 미술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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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안용호⁄ 2025.05.28 19:17:04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5월 29일 서울시립미술관은 신규 분관으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을 서울 도봉구 창동에 개관한다. 21,000평에 지상 4층 지하 2층으로 구성되었고, 우리나라 공립미술관 중 최초의 사진 매체 특화 미술관이다. 개관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한정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관장은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운영 방향과 함께 미술관의 근간인 소장품에 대한 수집에 집중했습니다. 1920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 사진의 걸작과 자료 2만여 점을 수집해 수장고에 보관 중인데요. 우리 공간이 매체 특화 미술관으로서 독창적 성격을 가지면서 사진의 영향력과 예술적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시간 문화 생산자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국내외 아티스트, 사진 예술가와 애호가, 그리고 대중이 이곳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한정희 관장.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건축과 공간도 주목할 만 하다. 일반공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오스트리아의 아드릭 아키텍투어와 한국의 일구구공도시건축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건물 외관은 직선과 유려하고 역동적인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검은색과 회색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사진이 빛과 시간을 포착하는 방식을 건축적으로 구현한다. 건물을 살짝 회전시켜 한쪽을 들어 올린 듯한 독특한 형태의 출입구를 지나면, 높이 10m의 로비가 관람객을 맞는다.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 전시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개관 전시는 ‘광(光)적인 시선’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두 편의 개관특별전으로 시작된다. 먼저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은 지난 10여 년간 수집한 소장품 중 한국예술 사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작가들, 정해창•임석제•이형록•조현두•박영숙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다.

3층에서 열리는 전시는 정해창 작가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작가가 직접 인화한 프린트로 본인의 낙관을 찍은 작품도 보인다. 한국 사진 계에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작가는 1929년, 한국인 최초로 개인 사진전을 열어 사진을 근대적 예술 제도 속에 위치시킨 선구자이다. 초기 정물 사진에서 서구 회화의 구도를 변용했고, 목각 인형을 활용한 구성사진으로 서사적 의미를 확장하는 등 예술적 실험을 하기도 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4권의 스크랩북을 소장하고 있으며 작가의 아코디언 형태로 만들어진 작가의 증명 사진첩과 이미지 영상도 전시된다.

이형록, <시장의 아침>,1957, 26.6*35.8cm 
이형록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가 <강변>.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이형록 작가는 한국전쟁 전후 도시의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리얼리즘 사진으로 담아내며, 1950년대부터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구두상 노점, 거리의 장면들은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는 감수성을 드러낸다. 또한 작가는 싸롱아루스 활동을 통해 건설 현장의 철골 구조, 기하학적 형태와 명암 대비를 강조하는 조형적 실험을 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적 시선도 있지만 아이들을 촬영한 사진도 많다. 한쪽 면에는 디지털 프린트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임석제 작가는 해방 이후 한국 최초의 예술사진 개인전을 열어 한국 사진 계에 리얼리즘 사진의 흐름을 여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노동자의 삶과 시대 현실을 응시하는 그의 사진은 시대의 진실을 드러내는 예술 사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카메라 앞에서 노동자는 피사체가 아닌 시대의 주체로 등장한다.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날 수 있는 조현두 작가의 전시 공간도 이색적이다. 작가는 한국 모더니즘 추상 사진의 선구자로 사진을 재현의 도구가 아닌 조형적 실험의 장으로 확장했다. 그는 일상의 사물과 자연 풍경을 출발점으로 삼아 형태와 질감,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그의 사진은 사진을 회화적, 조각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보여준다.

 

박영숙 작가의 작품들.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박영숙 작가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사진에 담아온 사진가이다. 여성의 주체적 시선을 통해 한국 사진 계에 젠더 담론을 선도해 왔다. 그녀의 작업이 초기부터 명확히 여성주의의 성격을 띠었던 건 아니다. 그녀는 60, 70년대 이후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서 명확히 페미니즘을 자각한다. 80년대에는 김혜순 시인과 같이 연작하며 ‘마녀’라는 작업이 나오기도 한다.

3층 전시실 중앙에는 5인 작가의 작품과 스토리를 담은 영상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된다.

아래 2층 전시실에서는 두 번째 전시 ‘스토리지 스토리’가 펼쳐진다. 이 전시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담았는데, 여섯 명의 동시대 작가들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미술관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탐구한다. 원성원, 서동신, 오주영, 정멜멜, 정지현, 주용성 작가는 미술관을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보존의 장소’, ‘생성의 장소’, ‘기억의 장소’로 재정의하며, 공간과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경험과 함께 동시대 사진의 의미를 건축적 맥락 속에서 확장해 보는 기회를 보여준다.

서동신 작가 전시 공간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먼저 서동신 작가의 공간은 건축 과정에서 오갔던 공산품 카탈로그 이미지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 입고된 물품을 직접 촬영한 사진을 재료로, 기존 맥락에서 분리하고 재조합 함으로써 프레임을 해체하거나 복수의 이미지를 병치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고정된 의미 구조를 흔든다.

원성원 작가 전시공간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원성원 작가는 공간이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단계별로 촬영하고, 작업에 쓰였던 나무, 돌, 물, 철 등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상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미술관 왼쪽의 모양(shape)을 구현하기 위한 불룩 튀어나온 언덕을 조경과 작품이 하나 되는 장면으로 구성했다.

정지현 작가 전시 공간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어두운 공간에서 만나는 정지현 작가의 작품은 바깥쪽은 3D 이미지 패널이 돌아가고, 안쪽은 실크 스크린 작업대 레이어가 보인다. 작가는 미술관 터 파기를 하는 과정부터 촬영해 몇만 장을 촬영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일반적 사진의 형태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실험한다. 실크스크린의 작은 레이어마다 다른 형태의 색을 입혀 반짝거리거나 뭉쳐 있거나 음영에 담겨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건축 시공의 시간성과 중첩 구조를 시각화한다. 또한 3D프린터로 만든 모형은 마치 하나의 사진 조각, 필름 조각처럼 보이게 구성해 기록의 공간적 체험을 가능케 한다.

주용성 작가 전시공간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주용성 작가는 미술관이 위치한 창동이라는 장소가 지닌 역사적 층위와 지역 정체성에 주목했다. 작가는 구술, 문헌을 토대로 사라진 장소의 흔적을 수집하고 사진으로 재구성해 도시개발로 지워진 기억과 시간을 복원하는 장소 기반적 실천을 수행한다. 창동은 과거 북한산성을 쌓기 위해 물자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거주하던 녹천 대감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알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재개발로 아파트가 올라선 자리 옆에서 몇몇 노인들이 아직도 녹천 대감 치성제를 지낸다는 것이다. 주용성 작가의 작업은 ‘창동’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북한산성과의 연관성, 주민의 개인적 기억을 교차시켜, 장소가 단지 행정적 단위가 아닌 서사와 사람이 중첩된 공감임을 드러낸다.

정멜멜 작가 전시 공간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정멜멜 작가는 미술관 소장 자료의 디지털 전환 과정과 이미지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한다. 작가는 수장고 속 사진을 복사 촬영하고, 이를 디지털 환경에서 해체•복원•변형함으로써 원본 이미지의 물성을 지운다.

오주영 작가 전시공간 전경.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오주영 작가의 전시 공간은 가상의 디지털 보존 복원실이다. 미술관이 수집한 2만 점의 소장품들이 있는데 이것을 수장고에 넣기 위해서는 디지털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지 과잉 시대에 사진 그리고 혹은 이미지라 불리는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할 수 있는가를 작가는 고민했다.

박수진 학예사는 “ AI에 이미지들을 학습시켜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장품 이미지 한 장에 이렇게 AI에 학습을 시켜 ‘이때의 감정 기분 날씨 같은 것들을 복원해 줘’라고 학습하면 한 장의 사진으로 이렇게 영상을 만들어요”라며 건립 기록 작업을 하면서 AI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해 처음에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영상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덧붙였다.

 

또한 오른쪽에는 거대한 책장에 전시된 소장품 이미지 2천 장 중 마음에 드는 3장을 골라 선반에 올려놓으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 AI가 감상평을 내려주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로비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개관특별전 주요 작품 이미지. 사진=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한편, 개관특별전과 함께 전시연계 프로그램이 5월부터 7월까지 주말 및 공휴일에 진행된다. ‘스토리지 스토리지’는 5월 참여작가 정지현과 기술 협업으로 함께한 박상민 작가(31일)의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6월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한 윤근주(6일)의 건축 이야기, 7월은 참여작가 서종신, 정멜멜, 오주영, 김나영 디자이너(19일)의 작품과 공간의 해석, 참여작가 원성원과 권지연 조경가(26일)의 조경작업 등 참여 작가와 협업한 이들의 작업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대화 형식의 프로그램과 함께 작가 주용성과 아마추어서울의 시민참여 워크숍(6~8월)을 선보일 예정이다.
6월은 구본창(7일), 김지혜, 김소희(14일), 노기훈, 박지수(21일), 황예진, 이진실과 같은 동시대 연구자와 작가가 ‘광재 光彩: 시작의 순간들’의 정해창, 이형록, 조현두, 임석제, 박영숙에 관한 이야기를 토크 형식으로 풀어낸다.

앞으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사진 중심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전시와 프로그램을 연중 실행하고, 한 세기를 뛰어넘는 한국 사진사의 체계화와 미래지향적 사진 예술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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