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2026.01.22 10:09:56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5000포인트를 넘어섰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1분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92.21포인트, 1.88% 오른 5002.14에 거래됐다. 지수는 77.13포인트 오른 4987.06으로 출발한 뒤 곧바로 5000선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 27일 4000포인트를 넘어선 지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1000포인트를 끌어올린 것이다. 같은 시각 코스닥 지수도 13.21포인트, 1.39% 상승한 964.50을 기록했다.
코스피가 5000포인트 고지에 오른 것은 한국 주식시장 역사상 처음이다. 1956년 증권거래소법 제정을 바탕으로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되고 첫 거래가 시작된 지 약 70년 만에 도달한 기록이다. 코스피 지수는 1980년 1월 100에서 출발해 1989년 3월 처음 1000선을 돌파했고, 2007년 7월에야 2000 시대를 열었다. 이후 코로나19 직후 개인 투자자들의 대거 유입으로 3000선을 넘어섰고, 2000에서 3000까지 13년 5개월이 걸렸던 지수는 지난해 10월 4000선을 돌파한 데 이어 다시 3개월 만에 5000포인트에 도달했다.
코스피 5000포인트 돌파는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 환경,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상장사 실적 개선, 그리고 만성적인 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려는 정책 기조가 맞물린 결과로 평가된다. 정부가 주식을 가계 자산 증식의 핵심 수단으로 삼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면서 시장의 체질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국내 상장사의 합산 영업이익 컨센서스를 약 465조 원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65%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글로벌 AI 투자 열풍 속에서 반도체 업종의 이익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실적 기대는 지수 상승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스피 5000 시대를 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종목으로 꼽힌다. 외국인과 기관이 동반으로 반도체와 자동차 중심의 순매수를 이어가며 전일 코스피는 상승 마감했다. 1년 전 5만 원대에 머물던 삼성전자 주가는 15만 원을 넘어섰다. SK하이닉스 주가도 1년 새 약 240% 급등하며 장중 78만 원에 근접했다. 현대차 역시 로봇 모멘텀이 지속되며 지난 5일간 33% 넘게 오른 데 이어 이날도 3% 이상 상승하며 강세를 이어갔다.
지정학정 위기와 K-식품 안기에 힘입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효성중공업, 삼양식품 등 주당 가격이 100만 원을 넘는 새로운 ‘황제주’도 잇따라 등장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이날 지수 5000 포인트 달성의 직접적인 계기는 글로벌 불확실성 완화였다. 글로벌 증시를 압박해온 그린란드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투자 심리가 빠르게 회복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력 사용 배제와 관세 위협 철회 의사를 밝히자 미국 증시가 일제히 상승했고, 그 흐름이 국내 시장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불확실성이 걷히자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 경신 흐름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수가 단기간 급등했음에도 기업 실적 개선 속도가 지수 상승 속도를 앞지르고 있어 밸류에이션 부담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에 대해 “밸류업 정책이 뒷받침하는 실적 장세”라고 평가하며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로 제시했다.
제도 변화의 효과도 뚜렷하다. 민주당은 지난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처리했고,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인하도 추진했다. 상장사의 자사주 의무 소각을 담은 추가 상법 개정안도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이후 유상증자와 주식형 채권 발행은 크게 줄었고, 자사주 소각은 빠르게 늘어났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순공급은 마이너스 3조6000억 원을 기록했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주식 공급보다 소각된 자사주 규모가 더 컸다는 뜻이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과거 국내 증시는 자금 조달이 우위인 공급 중심 시장이었지만, 이제는 주주환원을 위한 소각 규모가 더 커지는 구조적 변화가 시작됐다”며 “국내 증시가 ‘희석의 시대’를 지나 ‘환원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다만, 해외 투자은행들은 최근 한국 경제가 반도체와 AI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테크 부문과 부진한 비(非)테크 부문으로 나뉜 ‘K자형 회복’ 국면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씨티와 골드만삭스는 “테크 수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비테크 부문은 관세 충격과 글로벌 수요 둔화로 부진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소비자 가전, 전기차 섹터는 만성적인 과잉 공급 문제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골드만삭스는 특히 “이번 테크 호황은 물량 확대보다는 가격 상승에 기인한 측면이 크고, 관련 기업들이 국내보다 해외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국내 경제로의 낙수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IB들은 반도체 사이클의 강도가 예상보다 크고 지속 기간도 길어질 가능성이 높아, 이같은 반도체 수출 호조와 에너지 가격 안정이 경상수지 개선에 기여하면서 세수와 가계 구매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